우리에겐 각자의 그늘이 있지. 나는 그 그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때로는 그늘이 그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는 것도 같다.
 어른들은 눈치 못 챘겠지만 나도 종종 그렇다. 욕하고싶고 울고 싶고 죽고 싶고 내가 너무 초라하고 막막하고불행한데 이상한 것에 웃음을 멈출 수 없고 아무나 보고두근거린다. 아니, 아무나는 아니다.

내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 입장이 되고 싶지않은 거겠지. 나와 같은 일을 자기들은 겪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하면 다음 삶으로 넘어갈 길이 보일까. 기억을기억으로만 두고 감정을 제거할 수 있을까. 

 제야가 두려워하던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기를 질책하는 말, 엄마에게 그런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모든 게
선명해졌다.
신고할 거야.
제야가 말했다.
잡아가라고 할 거야.

 모든 게 거짓말 같은데 시각적 기억이, 몸에 남은 감각이 너무 또렷했다. 후려치듯 떠올랐고 실제로 맞은 것처럼 아팠다.

당숙은 제야를 강간한 게 아니라 여자를 강간한 것이다. 여자 중에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여자. 자기를 의심하지 않을 여자.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여자.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여자. 일을 벌인 후에도가까이서 통제할 수 있는 여자. 남들한테 얘기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여자. 그래서 또다시 강간할 수 있는여자……… 미성년자인 친척 여자. 제야는 그 조건을 충족시켰다. 제니도 마찬가지였다. 날이 밝아올수록 제야는또렷해졌다. 있었던 일과 들었던 말과 그 의미까지, 곱씹을수록, 제자리를 찾아갔다.
제야는 자기를 지키고 싶었다. 제니를 지키고 싶었다.
제야는 강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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