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그림자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4
정우영 / 실천문학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그렇게 나는 실종되었다.
즐겁게, 광막한 당신 속을 떠다니는 중이다.

 어둠이 해일로 덮쳐오는 철거 지역 망루,
내장까지 게워낸 어떤 가장이 더운 피발라내 지구 바깥으로 흠씬 뿌려 날린다.
 밤이 깊을수록 더욱 일그러지는 눈눈눈,
 자책하는 국화들이 저 처참한 공허 속으로소복소복 날아간다, 희망이 될 것인가..

생각을 내일의 척후병으로 내보내지 마라.
좌절과 절망에 붙잡히고 만다.
차라리 내일에서 생각을 떼내버려라.
단언컨대 희망은 등 뒤에 있고

사라진 기억들이 나를 이끌어간다.
그러니 오늘 여기를 사는 나는,
어제의 나보다 얼마나 부질없는가.

그가 내 몸을 스쳐 지날 때
검불처럼 허허로워서 나는,
그가 날아가버릴까 봐 무심코
그의 겉옷과 살가죽을 꽉 붙잡는다.
그는 아프다는 시늉도 없이
콧노래 응얼거리며 은근슬쩍 빠져나간다.
건듯건듯 흔들리는 뒤꼭지가
부용산 오리길* 가파른 곡절을 넘어가는 
그의 슬픈 노래처럼 몹시 불안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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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돼지와 거미와 족제비 문어..열세마리의 동물.
사이 몽고메리의 유년부터 삶을 관통한 종이 다른 동물과 교감하기, 함께 살기에 대한 이야기다.
경이로운 교감의 기록 이라고 부제가 붙었다.
교감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그 개체에 대해 연구하고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이 몽고메리의 경우 그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숨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때때로 위험하기도 하겠지만 덜컥 겁을 먹고 숨거나 도망칠 경우가 더 위험하기도 하다.
인간 개체 외에도 함께 살고 있는 동물군들..곤충까지..
‘더불어‘ 쓰는 지구의 공간에서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는 건 축복일게다.
수명을 다하고 떠나간 동물 친구들을 그리워 하는 것 또한 소유가 아닌 서로를 최선을 다해 사랑한 이유 때문일게다.

떠나가면?
고양이 네마리의 집사인 나는 덜컥 겁이 난다.
고양이들에게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법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충분히 사랑한다면 상실감이 덜할까?
예쁜 삽화들을 따라 읽다가 울컥한다.

서로의 영역에 스며든 스승이자 친구인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반전은 없지만 담담히 읽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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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0-0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자연을 ‘약육강식이 작동되는 세계’로 이해하기 때문에 동물의 천척 관계를 당연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견원지간’이라는 사자성어는 동물의 적대적 관계를 바라보는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개와 고양이는 성격과 생활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같이 살다 보면 서로 싸우지 않고 가족처럼 잘 지내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요.

나타샤 2019-10-01 18:52   좋아요 0 | URL
그럼요..앵무새랑 잘 지내는 고양이도 있구요. 관계를 인간의 기준으로 규정지으면 안되는데..^^
 

골리앗 버드이터는
‘birdeater(새를 잡아먹는 자)라는 이름과 달리 새보다 곤충을 선호했다. 

거미에 대한 공포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이는 수많은심리 테스트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그러나 거미공포증은 그 자체로 워낙 쉽게 유발된다. 어린아이나 동물이 특정 대상을 두려워하게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무해한 꽃이라도 말이다. 그러나 사람과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식물보다는 거미와 뱀에 대한 공포를 더 빨리 습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거미는 더럽고 지저분한
‘벌레‘라는 인식이 강한데, 사실 타란툴라는 고양이 못지않게 깔끔하다. 먼지 한 톨 없이 꼼꼼하게 몸을 단장하고 송곳니를 빗살처럼 이용해서 다리털을 빗는다.

그러나 지금은 클라라벨 덕분에 평범한 우리 집 모퉁이마저도마법 같은 장소가 되었다. 새롭게 자각한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더 생명력이 넘쳤으며, 우리가 삶을 사랑하듯 자신의 삶을 사랑하 는 작은 생명체의 풍성한 영혼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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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기술, 지식만으로는 동물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몰리와 유대감을 쌓았던 것처럼 에뮤와도 유대감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마음뿐만 아니라 가슴 깊은 곳까지 열어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는우리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잖아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사랑하도록 말이에요.
비록 그것이 음식물 쓰레기일지라도.

보더콜리는 독립적이고, 서정적이며, 의지가 강하고, 영리하기로유명하다. 하워드도 예전부터 보더콜리를 기르고 싶어했다. 그런보더콜리에게도 단점이 하나 있으니, 양이나 소가 없으면 대신 곤충을 몰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스쿨버스를 몰려고 했던 적 도 있었다. 그래서 보더콜리에게는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우리 꿀꿀이 부처의 갈라진 발굽을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있노라 면 세상의 풍족함을 음미하고 즐기는 법이 절로 깨우쳐졌다. 피부에 내리쬐는 햇살의 따사로움과 아이들과 노는 즐거움도 배웠다.
거대한 몸만큼 드넓은 마음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 슬픔이 상대적 으로 작게 느껴졌다. 

‘정글의 여왕‘, 샘은 우리가 찾는 거미 종을 이렇게 표현했다. 골리앗 버드이터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타란툴라다. 몸집이 큰 암컷은 무게가 113그램까지 나간다. 머리는 살구 크기만큼 자라고, 다리를 펼치면 사람 얼굴을 충분히 감쌀 정도로 길다. 샘이 이번에찾아낸 골리앗 버드이터가 거미굴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긴 다리로 내 얼굴 전체를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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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등불을 껐다 켰다 하면서 ‘이제 그만 돌아오지 않겠니?‘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제안에 가까웠다.
아빠는 전등불이 신호등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신호등의 빨간불이 멈추라는 ‘제안‘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몰리 역시 우리의 신호가 제안이라고 느껴질 경우에만 집으로 돌아왔다.
난 그런 몰리의 행동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몰리가 내게 복 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이처럼 엄마는 내가 사랑스러운 소녀가 되길 바랐지만, 나는
‘개다움‘을 숭배했다. 특히 몰리의 초자연적인 힘에 도취되어 있었다. 몰리는 아빠 부하의 차가 대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오는 것을 알아챘고, 엄마가 강아지용 캔사료를 냉장고에서 꺼내드는 순 간 바로 냄새를 감지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숨을까 하다가 이런 태도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았다. 제인 구달이 떠올랐다. 그녀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었다.
나는 일찍이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린 침팬지 연구를 읽고 어린시절부터 그녀를 내 영웅으로 삼았다. 제인 구달은 연구 대상을몰래 훔쳐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솔직하게 드러내고침팬지들이 그녀에게 익숙해질 때까지 겸허한 자세로 기다렸다.
그날 이후부터 나도 매일 똑같은 복장을 착용했다. 아빠의 낡은녹색 군용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빨간 스카프를 둘렀다. 나는 에뮤들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여기에는 나밖에 없어. 나는 절대 너희를 해치지 않아

 에뮤는 알을 낳기 전까지 성별을 구분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경이로운 존재를 감히 ‘이것‘이라고 칭할 수는 없었다. 성별은 알 수 없었지만, 아직 다 자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알 수 있었다. 
다른 성조처럼 목에 청록색 털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비를 떠난 지 몇 주 혹은 몇 달밖에 되지 않은형제들로 추정되었다(보통 아빠 에뮤가 푸르데데한 검은 알들을 직접 품어서 부화시키며, 거의 20마리가 되는 아기 에뮤들을 보살핀다). 이들도 나처럼 이제 막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한 셈이다.

가끔은 검은 머리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참을 응시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거대하고 기묘한 새의 시선에 온몸이 정화되는듯했다. 아무리 더러운 옷을 걸치고 머리는 들개처럼 헝클어졌어 도 나 자신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런 기분은 난생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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