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불을 껐다 켰다 하면서 ‘이제 그만 돌아오지 않겠니?‘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제안에 가까웠다.
아빠는 전등불이 신호등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신호등의 빨간불이 멈추라는 ‘제안‘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몰리 역시 우리의 신호가 제안이라고 느껴질 경우에만 집으로 돌아왔다.
난 그런 몰리의 행동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몰리가 내게 복 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이처럼 엄마는 내가 사랑스러운 소녀가 되길 바랐지만, 나는
‘개다움‘을 숭배했다. 특히 몰리의 초자연적인 힘에 도취되어 있었다. 몰리는 아빠 부하의 차가 대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오는 것을 알아챘고, 엄마가 강아지용 캔사료를 냉장고에서 꺼내드는 순 간 바로 냄새를 감지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숨을까 하다가 이런 태도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았다. 제인 구달이 떠올랐다. 그녀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었다.
나는 일찍이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린 침팬지 연구를 읽고 어린시절부터 그녀를 내 영웅으로 삼았다. 제인 구달은 연구 대상을몰래 훔쳐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솔직하게 드러내고침팬지들이 그녀에게 익숙해질 때까지 겸허한 자세로 기다렸다.
그날 이후부터 나도 매일 똑같은 복장을 착용했다. 아빠의 낡은녹색 군용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빨간 스카프를 둘렀다. 나는 에뮤들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여기에는 나밖에 없어. 나는 절대 너희를 해치지 않아

 에뮤는 알을 낳기 전까지 성별을 구분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경이로운 존재를 감히 ‘이것‘이라고 칭할 수는 없었다. 성별은 알 수 없었지만, 아직 다 자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알 수 있었다. 
다른 성조처럼 목에 청록색 털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비를 떠난 지 몇 주 혹은 몇 달밖에 되지 않은형제들로 추정되었다(보통 아빠 에뮤가 푸르데데한 검은 알들을 직접 품어서 부화시키며, 거의 20마리가 되는 아기 에뮤들을 보살핀다). 이들도 나처럼 이제 막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한 셈이다.

가끔은 검은 머리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참을 응시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거대하고 기묘한 새의 시선에 온몸이 정화되는듯했다. 아무리 더러운 옷을 걸치고 머리는 들개처럼 헝클어졌어 도 나 자신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런 기분은 난생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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