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손이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갑시다. 많이 피곤할 텐데, 잘 안 되겠지만 애써 잊어봅시다." 웨이손이 아내의 손을 당겨 팔에 끼웠다.
"고마워요, 여보. 노력할게요." 부인이 낮게 속삭였다.

아내가 해스켓과의 결혼을 부정했던 이유는 그의 아내였던 사실을 지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사람들이 자신을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판단할까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
 웨이손은 왜 갑자기 그녀의 동기를 분석하는지 스스로 점검하기 시작했다. 무슨 권리로 그녀에 대한 허상을만들어 판단을 가하는가? 아내는 자신의 첫 번째 결혼이불행했다고, 해스켓이 그녀의 철없는 환상을 짓밟았다고어렴풋이 말했었다. 해스켓이 전혀 해롭지 않은 사람일것 같다는 새로운 시각이 새삼 웨이손의 마음을 편치 않 게 했다. 남자라면 차라리 아내가 전 남편에게 학대받은 편이 반대의 경우보다 더 수용하기 편할 것 같았다.

아내를 보면 칼을 던지는 곡예사 같 았지만, 칼날은 무뎠고 그 칼들이 자신을 해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점차 습관도 그의 감수성에 보호막을 형성했 다. 웨이손이 조금씩 다른 착각을 하느라 그날 치 평안함을 쓰면 쓸수록 안락함에 대한 가치는 커지고 돈은 덜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는 해스켓과 배릭, 두 사람과조금씩 가까워졌고, 그 상황을 풍자하는 사소한 복수로위안을 얻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작가는 상류 사회의 허식을 조롱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더 어두운 의도가 있다. 이디스워튼은 집단의 압력이 사람들의 개별적 특성을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19세기 말에 여성들은 대체로 ‘사회적인 이중성과 잔인성,
그리고 탐욕에 가장 처참히 고통 받는 희생자‘ 였다.
런치클럽 멤버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좌우할 능력이스스로에게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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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0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9-09-20 15:48   좋아요 0 | URL
네..주말에 뒤집어보고 나오면 보내드릴께요.^^
 

그냥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구입했고 읽었다.
160쪽. 딱 떨어지는 편집(어디서 주워들으니 보통 책들의 페이지는 4배수라고..)네개의 이야기가 들었다.
위트란 이런거지.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작은 미소도 파안대소도 아닌 그 중간 쯤 적당한 크기의 유난스럽지 않지만 충분히 기분좋은 웃음을 짓게 한다.
스노비즘의 예시로 쓸만하지 않을까?
유한계급론도 떠오르고..반상의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때 돈주고 산 양반지위에 거드름부터 배운 사람들의 허영도 떠올려본다.
밑줄이 많이 그어지지 않는다. 잠시 멈춤이 잘 안되는 단점이 있다. 멈춰도 되는데 멈추고 싶지 않다. 마지막까지 한호흡으로 읽고 싶게 만든다.
주머니가 큰 가디건에 쑥 찔러넣고 공원벤치나 집앞 바닷가에 앉아 키득대며 읽기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시에 읽는 것도 가능하겠다.
이런걸 얻어 걸린다고 하나?
무심코 읽게 된 책이 자꾸 키득대게 한다.

징구 얘기 해볼까요?
전 생명의 집약이라고 봐요.^^




로라 글라이드가 잠시 불편한 듯 생각에 잠겨 있더니곧 힘주어 더듬더듬 말을 뱉었다. "작가님의 책을 읽을때는 규정하기보다 느끼죠."
 오즈릭 데인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뇌는어쩌다 문학적 정서가 가서 박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고는 두 개째 각설탕을 집어 들었다.

 앤슬리 부인이 시커먼 콜로세움에서 친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난 그날 밤 전혀 기다리지 않았으니까."
슬레이드 부인이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그래, 내가 졌다. 하지만 내가 널 못마땅해 하면 안 되겠지. 벌써 오래 전 일인걸, 결국,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은 나야. 난 25년 동안 그이를 가졌고, 네겐 그이가 쓰지도 않은 편지 한 통 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앤슬리 부인이 다시 침묵했다. 이윽고 테라스 문 쪽으 로 한 걸음 내딛더니 뒤를 돌아 친구를 마주했다.
 "나한텐 바바라가 있어." 그렇게 말하고는 슬레이드 부인을 앞질러 계단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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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가족이 있는 집에서의 행복에 대한 사적 추구라는 아메리 칸 드림과 도스토옙스키와 그를 매우 존경했던 베르댜예프의 개념 속 에서 정신적 집 없음 spiritual homelessness, 그리고 메시아적 방랑으로 구성되는 러시안 드림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따라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미국으로 간다" 라는 표현이 자살과 동의어라는 것,
신세계에 대해 매우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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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이름을 도대체 언제 불러보고 그만 두었을까 싶다. 그래도 가끔 무의식적으로 소련이라고 이야기 하면 이야기상대는 응? 어디? 라고 반문하곤 한다. 그상대가 젊고 어릴수록 ‘어디라고?‘하는 표정은 더 진하다.
러시아, 일상의 신화들.이라는 부제가 있지만 러시아를 읽으려면 소비에트 연방의 시기를 뺄 수 없다. 그건 마치 징검돌도 도약판도 없이 넓은 개울을 건너려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스베틀라나 보임. 소련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미국관광객 신분으로 고국을 찾아 연구한 비평물이다.
매우 광범위하고 전문적이기까지하다. 읽는 속도가 붙지 않는다. 개념을 바로 잡아두어야 할것들이 많다.
제목이 된 common place 와commonplace 같은 설정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하진 않다. 저자의 힘이 분명하게 있다. 한문장이 다음문장을 힘있게 끌고 온다.
겨우 절반을 읽었지만 읽는 동안은 얼마나 읽었는지 인지하지도 못했다.
책 속에 삽입된 그림에 대한 도상학적 분석을 읽는데 선명하지도 않고 흑백이어서 (분홍코끼리에대한 분석을 읽으며 너무나 궁금해서..어떤 분홍?) 굳이 찾아보고 이해한다. 그깟 고무나무가 뭐라고 그것조차 이야기가 되고 분석이 되는 상황이 놀랍다.
이렇게 징검돌을 놓듯 찾아보며 읽는 것이 수고롭기보다 뭔가 즐겁다.
아직 절반이 남았다.
아무것도 아닐 일상에 새겨져있는 그들의 신화를 들여다보는 것. 다른 언어로 번역되지 못하는 그들만의 공통의 장소를 찾는 것은 의외로 스펙타클하다. 전세계적 사건과 사조와 인물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역동적인 역사이자 신화다.


모든 인간성에 공통적인 것은 기본적인 감각의 반사작용인 "열의없는 정동" languid affect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파악하기 위해 자신을 감각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공감은 아름다운 것을 지각하기 위해 내딛는 한 걸음이다.

 그러나 코무날카의 사적인 한 귀퉁이에 있는 고무나무는 다른 이념적 뿌리를 갖고 있다. 그것은 상상의 부르주아 온실 속의 최후의 병약한 생존자 혹은 중산 계급 거주자들의 화초용 상자 속에 있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제라늄의 초라한 친척쯤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스탈린 시기에 제라늄은 제거되었고, 물리적으로도 박멸되었다.

스탠리 카벨은
"평범함의 초자연성‘uncanniness of the ordinary에 대해 이 둘은 철학적 논의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이를 요청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상 삶의 평범함monplaces 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듯 보이고 이 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수많은 문화적 오역들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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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한권 지인에게 선물하고 복수(?)당하는 차원에서 선물받은 시집이다.
한때는 문학동네 시인선을 따박따박 찾아 읽으며 책장 한줄이 색동저고리처럼 알록달록해 지는 것이 예쁘고 좋았었다.
표절이니 문학권력이니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문동의 책을 더는 읽지 않았다.
책장은 한쪽 팔만 있는 색동저고리의 꼴로 거기서 멈췄다.
선물받은 시집을 넘겨보며 이렇게 타협하는건가?
자신에게 몇번을 묻고 대답을 미룬다.

이은규.
봄과 꽃과 달력과 겨울. 그리고 짧은 여름과 가을.
몇개의 기대어 쓴 시들.
투명한 봄날의 눈부심 같은 시집이라고 생각했다.
전작이었을 ‘다정한 호칭‘을 필사하거나 인용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이 시집도 그렇지 않을까?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하지만 아는 맛인것 같아서 조금은 아쉬웠다.
나타샤를 만난건 뜻밖의 반가움이었고..

다음 시집에선 조금은 날카롭게 벼려진 표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몇몇 지점에서 발견한다.
문동에서 나오지만 않으면 찾아 읽고 싶은 시인이다.



- 오는 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중력이었다.

사과한알이 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 정도로 아팠다.최후.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 아니한다. *

가도 가도
봄이 계속 돌아왔다.

(*이상의 시 ‘최후‘에서)

모든 꽃은 
안 들리는 한 점 향기를
수없이 두드린 봄의 노동

대장장이가 쇠처럼 무른 것은 없다고 말할 때
우리는 노래한다, 꽃잎처럼 단단한 것도 없음을
오늘의 노동을 다하지 못한 시인에게
세상이 바뀔 거라는 소식 대신 날아든 소식

문득 도착한 곳
아직 들리지 않는 향기, 꽃이 없다.

(꽃소식입니까. 중에서)

눈은 푹푹 내리고 시인은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오지 않을 리 없다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고조곤히
눈 내리는 마을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 버리지 못하는

고요한 세계, 시인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 응앙응앙 울 것
눈 내리는 마을 스노볼이 놓여 있다.
책장 한편

(스노볼* 중에서
*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기대어 쓰다)

모든 봄은 지난봄을 간직한 채 피어오르고,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지 마라 

경고에 가깝거나
안내보다 먼 문장들에 머뭇거리지 않기 위해
이제 우리는 지난 사건을 발견하며 
그 사건으로부터 뒤돌아보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니 봄꽃을 줄게, 꽃봄을 다오  
저만치 기억이 오고 있다 선언하는 사이

(봄이 달력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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