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인다...'
그림은 눈으로 봐야 하고, 음악은 귀로 들어야 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은 우리가 그것을 깨닫기 전 이미 오래 전에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았나 싶다. 예술은 오감 으로 느끼는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 느껴지는 이 제목이 이젠 식상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작가 노엘라는 바이올리니스트다. 이 책은 그녀에게 친숙한 몇가지 클래식 음악과 작곡가의 삶을 명작과 화가의 삶과 접목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 그녀 자신이 음악이나 그림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놓고 있다.

사실 음악과 그림의 접목은 내게도 익숙하다. 몇년 간  블로그를 써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과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비슷한 분위기의 명화들을 함께 접목시켜 포스팅 작업을 했었다. (이웃공개로 되어 있는 클래식 음악 카테고리에의 음악들은 모두 명화와 함께 올려져 있다. 물론 감상은 음악에 대한 내용으로 국한되어 있지만, 미술작품을 고르는 데 나름대로 자료를 찾고 생각을 많이 했다.) 평소 미술 작품에 관심은 있었지만, 음악에 맞는 명화를 찾기 위해 여러 그림들을 검색해 보면서 미술 작품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이런 연속된 작업을 통해 난 이미 그림을 듣고, 음악을 보는 법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중권님이 책에서 인용하신 '푼크툼(punctum)' - 예술작품의 개별적 해석'은 이런 것들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쓰여진 여러 가지 음악과 그림들도 사실 노엘라님의 푼크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음악과 그림의 접목이 너무나 식상하다는 데 있다. 푼크툼보다는 '스투디움(studium)'적 해석이 많았다는 데 있다.

음악이나 미술이나 시대에 따라 풍조가 달라지는데, 예술계의 그 풍조란 것은 음악과 미술이 따로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성향으로 달라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인상주의 미술사조가 퍼지면, 음악에서도 그런 풍조가 나타난다. 고전주의, 낭만주의..20세기 이후 신비주의나 예술과 상업과의 접목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 예시된 모든 음악과 미술작품은 마치 줄로 긋듯 풍조대로 딱딱 연결되어 있었다. 어떤 뜻하지 않은 새로운 감상이나 작품을 기대했던 내겐 적잖이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책을 넘겨보지 않아도 다음 작품과 음악은 대충 어떤 것이 나오겠거니 예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내 나름대로 전부터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했던 부분이라 특별히 더 식상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 전체가 지루했더란 이야긴 아니다. 알지 못했던 예술가의 삶이나, 작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부분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또 책 뒤에 첨부된 음악 시디를 듣는 일도 좋았다. 어쨌거나 미술과 음악 분야는 내게 있어서 그 자체로도 꽤 즐거운 부분이니깐...

그럼 가장 인상적인 미술 작품과 음악을 하나만 소개해 본다.

아래 그림은 너무나 유명한 뭉크의 <절규>이다.
핏빛으로 물들 하늘, 환각을 본 듯한 어지러운 세계, 공포에 질린 인간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책 제목 그대로 절규와 공포이다.   



이 책에서는 이 그림에 연상되는 음악으로 쇤베르트의 <달에 홀린 피아노>란 작품을 들고 있다. 이 곡은 뭉크의 <절규>만큼이나 충격적인 곡으로, 장조나 단조 같은 조성이 없는 무조음악으로 만들어졌다.
이 곡은 쇤베르트 특유의 12음 기법으로 만들어진 곡인데,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화성이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12음 기법의 곡들은 작곡가가 자신에게 떠오른 선율을 임의로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일단 모든 음을 나열하여 계산을 통해 각 음들의 길이와 높낮이를 조정해 가면서 모든 선율들이 화성을 이루지 못하게끔 배치하는 철저한 수학적 계산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 곡은 따뜻하고 감성적인 느낌보다는 차갑고 이성적이다. 마치 귀신이 나올 것같은 괴상스럽고 공포스런 분위기다. 이 곡은 벨기에 상징주의 시인 알베르 지로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라 한다. 

1. Mondestrunken

Den Wein, den man mit Augen trinkt,
Gießt Nachts der Mond in Wogen nieder,
Und eine Springflut überschwemmt
Den stillen Horizont.

Gelüste schauerlich und süß,
Durchschwimmen ohne Zahl die Fluten!
Den Wein, den man mit Augen trinkt,
Gießt Nachts der Mond in Wogen nieder.

Der Dichter, den die Andacht treibt,
Berauscht sich an dem heilgen Tranke,
Gen Himmel wendet er verzückt
Das Haupt und taumelnd saugt und schlürit er
Den Wein, den man mit Augen trinkt.


인간이 눈으로 마실 수 있는 술을,
넘치는 바닷물결 위에서 달은 폭음한다.
그리고 봄날의 조류가
지평선 위에 넘쳐 흐른다.

무섭고 달콤한 욕망은
수없이 물결을 가른다.
인간이 눈으로 마실 수 있는 술을,
넘치는 바닷물결 위에서 달은 폭음한다.

기도하려는 시인은 미친듯이 기뻐하며
그 신성한 양조주에 취해 있다.
그는 취한 채로 하늘을 향해
무릎을 어지럽게 비틀거리며
눈으로 마시는 술을 거침없이 들이킨다.

- 알베르 지로

리뷰를 쓰고 보니, 책 서평이 아니라 클래식 카테고리에 올려도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든다. 하지만 작가과 난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만약 내가 쇤베르크의 곡에 맞는 그림을 찾는다면, 뭉크의 <절규>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쇤베르크 자신의 자화상이 더 생각난다. 쇤베르크가 작곡가 이전에 화가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910년도에 <붉은 응시>란 이름으로 발표한 그의 자화상은 그의 음악만큼이나 공포스럽다.

 

또 만약 내가 뭉크의 <절규>란 그림에 맞는 음악을 찾는다면,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4번을 올릴지도 모르겠다. 

화창한 봄날씨에 듣고 보기엔 참으로 ㄷㄷㄷㄷ한 작품들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음울한 책들만 봐서 간만에 우아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읽어보리라 마음먹었었는데...물론 이 책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은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작품에 틀림없지만 내 리뷰는 또 괴기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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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세계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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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제목만 보고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그다지 유쾌한 책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체에 대한 것을 다룬 책이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들고다니는 책에 관심을 보이는 한 친구가 나보고 맨날 이상한 책만 읽는다고 뭐라 그런다..ㅎㅎ 내용을 들여다 보면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는데 제목이 범상치 않은 것들이 좀 있긴 했다. 또 우연히 그 친구 만날 때마다 그런 제목의 책을 들고 있었던 것 같다. (잘린머리에게 물어봐,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에서부터 이젠 아예 사체 실험 리포트다;;) 일단 시체나 죽음에 대해 특별히 꺼림직하게 생각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길 권한다.(물론 시체나 죽음에 대해 꺼림직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으나...) 또한 식후나 잠자기 직전에도 읽지 않길 권한다.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영혼은 빠져 나가고, 사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시체라는 나의 껍데기는 남을 것이다. 일부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후 시체를 의학계나 과학계를 위해 기증하기도 한다. 아마 다른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해서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부여해 주거나, 자신의 신체를 해부해서 의학계 발전을 위한다는 다소 우아하고 명예로운(?) 생각을 할지 모른다. 물론 그런 목적으로 시체를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체가 그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었다. 솔직히 우아하고 명예스럽다기보다는 생각하기에 따라 역겹고 놀라운 일들에 쓰이고 있었다. 

머리는 잘려져서 눈꺼풀을 뒤집거나 코를 세우는 것의 성형수술 연습용으로 쓰일 수 있고, 몸통은 잘려져 총탄 관통 실험에 응용될지도 모른다. 시체가 방치되어 부패실험에 이용될 수도 있고(이 부분은 범죄사건 해결에 이용된다), 비행기나 건물 아래로 떨어뜨리는 낙하실험에 이용될 수도 있다. 또 자동차 충돌실험, 폭발실험에도 시체가 이용된다. 피부는 화상환자에게 이식될 수도 있지만, 요즘에는 주름살 제거나 남성 성기 확대에 이용된단다. 말하자면 성형수술에 죽은자의 시체가 이용된다는 얘긴데, 그렇게까지 해서 자신의 몸을 뜯어고치고 싶을까?  우주왕복선에 토막난 시체를 탑승시키기도 했고, 파리의 한 연구소에서는 예수의 시신을 감쌌다는 토리노의 수의의 진의 여부를 가리는 실험에 시체를 이용했다고 한다. 요즘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예술작품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과거 중국에서의 시체를 약으로 먹었던 이야긴 정말 더 놀랍다. 죽은 사람을 꿀에 절여 약으로 만드는데, 더 놀라운 것은 죽을 사람이 죽기 전부터 약에 쓰이기 위해 꿀만 먹고 살며, 자신을 약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각종 병에 인간의 신체 부위가 약에 쓰이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작가는  절대 걸려야 하지 말아야 할 병이 간질이었다는 것을 소개한다. 간질 치료제로는 인간 두개골, 말린 인간 심장, 인간 미라를 뭉친 알약, 사내아이의 오줌, 쥐, 거위, 말똥, 검투사의 따뜻한 피 등이 사용되었단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영혼이 머리에 있느냐, 심장에 있느냐에 대한 논쟁으로 참수, 부활, 머리이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보통 서양에서는 뇌사를 인정하고 있지만, 심장이 뛴다면 다른 사람의 머리를 이식해서 살리는 방안을 연구 중이란다. 실제 원숭이 같은 동물실험을 하고 있었고, 머지 않은 미래에 인간의 뇌이식 문제가 대두될지도 모르겠다. 오~ 이부분은 흥미로우면서도 꽤 섬짓하다. 내 몸통에 다른사람의 머리라....하긴 안면이식이나 다른 장기의 이식도 가능한데, 뇌라고 꼭 불가능하기만 할까?

죽은자의 시체를 인간과 동일한 존엄성을 가진 어떤 것이라 생각하면, 모두가 불쾌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시체는 인간의 그 무엇도 아닌 이용해야 할 상품 같은 것이다. 인간 미래의 발전을 위해 인간의 껍데기인 시체를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효과적인 것은 없는 것이다. 환경문제를 고려해서, 시체를 퇴비화해서 농작물의 비료로 사용하자는 방안도 대두되고 있다. 작가는 덧붙여 말하기를, 죽은 이후에 이렇게나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죽음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글쎄... 이 책이 모든 이들에게 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다소 불경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도덕, 종교와의 갈등은 끝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인 내 생각은 시체의 응용 문제에 대해선 찬성이다. 다만 자신이 사후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장기기증 목적으로 사체를 기증한다고 할 때, 기증자나 기증자 가족은 그 사체가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이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다. 머리가 잘려져 성형수술에 이용될지, 비행기에서 공중낙하에 이용될지 알지 못한다. 
 

한참 후가 되겠지만, 내 자신의 시체기증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다만 내 가족이 그것에 대해 신경을쓰고 마음 아파 한다면, 내 주장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죽음은 그 자체로도 슬픈 것이다. 그 슬픔을 가족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중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통해 사후세계의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다지 유쾌한 소재는 아니었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다음 나의 독서는 좀 우아한 내용의 책을 골라 읽어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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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 2015-10-2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ㅎ ㅎ 전 늘 잠들기전에 읽어요 ㅠ 가끔 섬찟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박원순 세기의 재판이야기
박원순 지음 / 한겨레신문사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법정 영화를 보면,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반전의 반전을 일으키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물론 영화니까...'라는 생각을 하지만, 역사 전체를 통틀어 법정사건만 들여다 봐도 흥미진진한 것들이 많다. 현대 가치관으로는 말도 안되는 엉뚱한 죄목으로 희생당한 사람들도 많고, 예나 지금이나 정치 또는 어떤 커다란 외부압력에 이용당하고 짓밟힌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건들이 현대에 와서 재해석되고, 일부 사건의 경우 죄목이 복권되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 

이 책은 몇 가지 세기의 재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중에는 너무 유명해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았지만, 각각 재판 과정의 세세한 설명을 통해 과거의 역사와 현대 사회를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아 저건 말도 안돼(잔다르크 외), 저런 걸사람들이 믿는다니 정말 바보같다(중세 마녀 재판 외)라고 생각하지만, 현대 사회에도 솔직히 말도 안돼고 바보같은 일들은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 현대 정부의 말도 안돼는 짓거리들과 그걸 편견없이 믿어버리는 일부 우둔한 대중들을 보면, 과거 얼토당토 않은 수많은 사건들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신념이나 정의란 것이 '시대를 초월하여 통할까'..라는..현대의 정권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후대에 어떻게 평가될는지는 두고 볼일이지 않은가...라는... 물론 그 생각 마저 꽤 회의적이긴 하지만...국민의 눈을 속이고,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에만 급급한 이 정부에서 어떤 신념 같은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생각이다. 또 그런 정부의 휘둘림에 그대로 순응하는 국민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란 말은 잘못 해석되어 꽤 오랫동안 절대권력의 상징적인 의미로 기득권층이 이용해왔는데, 잘못된 관습과 법은 투쟁과 저항을 통해 고쳐나가야 한다.

이 책에 나온 인물들은 대부분 신지식, 신이대올로기를 지닌 눈뜬 지성들로 기존의 악습과 페단, 그리고 구체제에 반발하여 자신들의 신념으로 저항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투쟁은 결과적으로 목숨까지 내놓은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의 희생이 있음으로 인해, 현대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했고, 현대의 사회문제에 대해 시사해 주는 점도 많았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드레퓌스는 프랑스 육군장교로 군사정보를 독일에 전했다는 스파이 누명을 쓰고 투옥된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군부는 패전의 책임을 면할 만한 희생양이 필요했고, 유태계 장교였던 드레퓌스는 그것에 딱 적합한 인물이었다. 드레퓌스는 반역죄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고 악마의섬에 유배된다. 몇년 후 진짜 범인이 발견되었지만, 진범을 고발한 사람이 오히려 체포되고, 드레퓌스의 무죄는 묵살된다. 온 나라가 뒤레퓌스를 유죄로 몰고갈 즈음, 프랑스 작가 에밀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작품을 통해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게 된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이슈가 되었고, 반유태주의, 인종차별주의에서부터 양심적인 지성인과 수구적인 음모세력 사이에 갈등은 심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무죄가 입증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국가가 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시민을 희생양으로 어떻게 그들의 정권을 연장해 가는가를 보여 주었고, 양심적인 지식인과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자신의 결백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맞선 드레퓌스도 대단하지만, 드레퓌스의 신념을 믿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참과 정의를 외쳤던 에밀졸라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정치인 클레망소는 에밀졸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장 강력한 제왕에 반항하며 그에게 경배할 것을 거부할 만큼 강한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다수에 저항하고 오도된 대중에 홀로 맞선 사람은 매우 드물다.' 라고...잘못된 정부의 정책에 바른말로 맞설 수 있는 에밀졸라와 같은 깨인 지식인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았으면 좋겠는데... 현실이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왠지 불편해지는 이유는 과거 잘못된 역사의 잔존들이 현대 우리사회에서도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일꺼다.

 
P.S  책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는 말은 헨리 8세의 이혼에 반대하다 처형된 영국의 정치가 토머스 모어가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직전에 한 말이라고 한다. 조금 잔인(?)한 문구긴 하지만, 이 책 제목과 함께 이 책의 기억이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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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생존 게임 -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마르쿠스 베네만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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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때 즐겨보던 텔레비젼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동물의 왕국>이었다. 특이한 생김새, 특이한 습성 등 동물의 모습과 행동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을 사냥하거나 잡아먹는 장면이었다.(잔인하다 생각되는가? 하지만 먹고 먹히는 일들은 동물들이 살아가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그것이 번식과 함께 살아가는 전부일 수도 있다.) 사자가 영양을 습격하여 잡아 먹는 장면, 뱀이 개구리를 삼키는 장면, 하늘을 나는 매가 들쥐를 잡아채는 장면들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먹이를 노려보는 장면이나, 치타가 먹이를 쫓아 전속력으로 달리는 장면은 최고로 좋아한다. 겉으론 잔인해~징그러~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텔레비젼 앞으로 몸을 바싹바싹 땡겨앉으며 숨죽이고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먹고 먹히는 것이 동물들의 근본적인 행위라 했던가? 그것을 우린 소위 '본능'에 따르는 충실한 삶이라 생각하기에..어떤 한 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것을 보며, 잡아 먹는 동물이 나쁘다고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것이 과연 '본능'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란 의심이 들 정도로 계획적이고 치밀하며, 주도면밀한 살육을 보게된다. 덫을 놓고, 최면을 걸고, 속임수를 쓰고, 유혹을 하고.... 마치 나쁜 인간들이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 듯이, 동물들의 세계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된다. 한낱 하등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마져,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놀라운 방법들을 쓰고 있었다.

가장 재미있는 동물은 북방 족제비였다. 춤을 춰서 상대를 혼란시킨단다. 이리 뛰었다 저리 뛰었다, 회전했다가 뱅뱅돌다가, 풀위에 구르다가, 공중제비를 넘다가... 그 광경에 놀란 토끼들이 '저시키 미친거 아녀? 라며 잠시 멈칫하는 순간에 족제비는 토끼의 목덜미를 급습해서 잡아먹는단다. 작가는 족제비의 이런 춤은 지상 최고의 미친 개그라 표현한다.

아시아흑곰, 흔히 우리가 반달가슴곰이라 불리는 이들은 하는 짓도 귀엽다.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귀엽다는 것이지, 다른 동물을 살육하는 방법의 기발함에 놀라울 따름이다. 중국 서커스단처럼 눈언덕을 공처럼 말고 굴러내려가면, 곰이 눈덩어리로 변한단다. 사슴들은 갑작스런 눈사태에 놀란 사이 눈속에서 튀어나온 우리의 귀염둥이 반달곰은 사슴을 살육한다.
 

사막데스에더라는 독뱀은 모래 구덩이에 몸을 숨기고 꼬리만 살짝 밖으로 내민단다. 꼬리를 애벌래따위로 착각한 도마뱀을 급습해서 잡아먹는 것이다. 유럽 갑오징어는 피부에 빛을 반사하는 효과를 이용하여, 환각을 일으키는 패턴을 흐르게 한단다. 그 광경에 넋이 나간 꽃게는 갑오징어의 순식간에 먹이가 된다.

빵쪼가리로 잉어를 유인해서 잡아먹는 해오라기, 향기로 수나방을 유혹해서 잡아먹는 볼라스거미, 벌레나 쥐를 하나씩 잡아다 연쇄적으로 가시꼬치에 끼어서 먹이창고에 저장해두는 붉은등때까치, 잡아먹은 흰개미의 껍질을 다음 먹잇감을 위한 미끼로 활용하는 노린재, 개미의 뇌속에 기생해 개미를 좀비처럼 다루는 간충, 바다사자를 공중에 높이 던져 놀다가 잡아먹는 범고래, 200데시벨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청어떼를 패닉상태로 몰아넣어 공동작전으로 사냥을 하는 혹등고래...
 

다른 원숭이들을 떼로 급습해서 죽이는 침팬지, 새끼새를 잘근잘근 씹어먹는 청설모 등등은 나의 일반적인 상상을 초월할만큼 놀라웠다. 누가 다람쥐같은 애들은 도토리만 먹는다고 그랬어?..또 동물들 또한 인간을 이용하여 그들의 생계에 필요한 전략을 얻는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동물들의 생활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 이상으로 놀랍다. 그들의 행동과 패턴에는 생존이라는 것이 걸려있기에 어쩌면 더욱 치밀하고 계산적이 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새삼 동물의 놀라운 세계를 느끼게 됐다. 아~ 책 속에 설명된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이 하나도 없었는게 너무 아쉬웠다. 실제 모습을 보며 책을 읽으면 더 실감났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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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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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여자의 일생>을 읽은 것 같은 데 줄거리가 전혀 기억에 나지 않는다. '기 드 모파상' 너무나 유명한 이름이지만, 사실상 이 작품이 내겐 그를 알게 된 첫 작품이라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상당히 두꺼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책장을 넘기기가 불쾌해졌고, 작품의 결말을 다 읽고서는 '어~~ 이렇게 끝나면 안돼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이 나쁜시키가 이렇게 잘나가는 꼴을 두고 봐야한다는 것에 울화가 치밀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은 욕을 쏟아냈는지 모른다.

아름다운 남자는 무슨 얼어죽을~ ! 제목만 보곤(벨아미에서 오는 어감도 부드럽고..) 얼핏 따뜻하고 서정적인 사랑이야기 같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쾌락과 불륜에 관한 이야기며, 뒤루아라는 한 남자의 물불 안가리는 권력과 야욕, 그리고 신분상승의 쟁취극이었다. '벨아미'는 잘생긴 뒤루아에게 그를 추종하는 여자들이 붙여 준 별명과 같은 것이다. 그는 그의 외모를 이용해 높은 지위와 부를 가진 여자들을 사로잡고, 그녀들을 발판으로 신분상승과 부를 꾀한다.

처음부터 뒤루아가 그렇게 못되먹은 인간은 아니었다. 천성이 그리 선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도덕성, 인간성을 모두 내팽겨친 채 권력과 부에 눈이 먼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안쓰러울 정도로 굉장히 궁색했다. 뒤루아는 파리에 상경해서 거의 굶다시피한 생활을 할 즈음 우연히 군대동기이자 신문사에 다니는 포레스티에를 만나게 되는데, 포레스티에의 권유로 신문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파리의 현실과 귀족사회의 병페를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그가 권력과 신분상승에 빨리 눈을 뜨이게 된 데는, 그의 너무나 궁색했던 과거의 삶도 영향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언론업종에 있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빨리 습득한 데 있다. 그 당시 귀족사회의 저마다 권력을 추구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었고, 성공의 잣대는 바로 돈이었다. 돈이라면 도덕성 쯤은 내팽겨질 정도로 하찮은 것이 되었다. 뒤르아 또한 그 흐름에 발맞춰 처세에 능한 뻔뻔스러운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그의 잘 생긴 외모는 여자들을 이용하는 데도 효과적으로 작용하였다.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갈아타길 몇번하더니, 급기야 결혼마져도 권력을 위해 손바닥 뒤집듯이 엎고 새로 시작한다.

운도 억세게 좋은 뒤루아~ 이 남자에게 실패란 것은 따르지 않았다. 여자를 갈아탈 때마다 수많은 돈이 따라붙었고, 신분과 권력 또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상승해갔다. 사실 이런 종류의 이야기의 결말은 파멸로 이르게 되는 것이 당연하거늘...이 남자에겐 그 결말마져도 핑크빛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주인공 뒤루아가 최고로 나쁜놈 같이 보였지만, 이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문제가 있었다. 부정부패를 일삼고 정치와 결탁하는 귀족남편들, 불륜을 저지르고 막나가는 귀족부인들, 바람나서 야밤도주하는 귀족딸래미들.... 아마 이 드라마가 요즘 시대에 나왔더라면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쁜놈들이 더 잘먹고 잘사는 세상이라니.....
어쩌면 이런 세상이 권선징악으로 꾸며논 소설 속 이야기보다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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