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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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이런 빵집이 정말 있다면 나도 주문하고 싶은 빵이 많다.
'도플갱어 피낭씨에'를 주문하여 싫은 회사를 대신 가주는 빵을 먹고 싶기도하고
'악마의 시나몬 쿠키'로 감정이 좋지 못한 사람들에게 벌도 주고 싶다. 
또 '타임 리와인더'로 과거로 되돌아가고도 싶다.
인간이란 모두 비슷한 욕망을 갖고 있기에 이 책속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빵을 주문한다. 단 모든 마법은 자신에게 그 댓가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하브로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주문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하여간 이 책속엔 빵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빵을 만드는 마법사와 파랑새까지...
마치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상상해오던 동화같은 환상들이 이 책속에 깃들여 있었다.

주인공 16살짜리 소년은 말을 제대로 못하고 더듬는 습성때문에 학교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새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제대로 변명한번 못하며, 이유없이 미워하는 새어머니와의 불화는 계속 깊어간다. 눈치보느라고 집에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매일매일 동네 빵집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빵을 사다먹는다. 
그러던 어느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동생을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집에서 쫓겨 나온 주인공은 단골이란 명분으로 동네 빵집 '위저드 베이커리'로 도망나와 그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얼핏 평범한 빵집 같이 보이지만 인간들이 원하는 주문에 따라 마법의 빵을 만드는 신기한 곳이다. 
그곳에 은거하면서 인간들의 다양한 잔혹 욕망과 끔찍한 자신의 집의 현실을 알게 되고
'타임 리와인더'로 시간을 되돌릴지 말지의 엇갈린 순간에 마주치게 되는데...
결과는 '타임 리와인더'를 먹었을 때 <Y>와 먹지 않았을 때 <N>의 두 경우 모두가 소개된다.

사람들 각자가 내면 속에 갖고 있는 어느 정도의 잔혹성이라든지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들이 이 빵집 속 마법의 빵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재미와 환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 내면에 숨겨진 욕망들이 섬짓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남에게 해를 가하면 언제가 부메랑이 되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과 어떤 유혹이나 바람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는 당연한 진리를 알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주인공이 타임 리와인더를 먹느냐 안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주인공 자신이 어떤 문제를 스스로 극복해 나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빵이 먹고싶을 때...그리고 삶이 지치고 힘들다고 느낄 때... 아님 잠시 환상 속 섬뜩한 여행을 하고 싶은 때...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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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당신 실수한 거야! - 진화에 맞선 동물들의 유쾌한 반란
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박규호 옮김, 루시아 오비 그림 / 뜨인돌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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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리차드 도킨스 박사의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후대에 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궁극적으로 어느 정도는 다윈의 진화론을 따르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여러가지 예외적인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비판을 한다. 그렇다고 창조론을 옹호한 책은 아니며, 진화론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여러 가지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 대표적으로 진화 최대의 오류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 흥미로웠으며, 다양한 생물의 생태를 통해 하나하나씩 그 비판의 근거를 설명한다.

다윈의 진화론의 내용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의 생물들은 적응전략을 갖춘 개체만이 살아남는 선택과정의 산물이며, 적자생존' 자연선택설'의 원칙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 핵심은 인간만 봐도 금새 오류임이 드러난다. 인간이 오로지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행동했더라면 도덕, 철학, 미술, 음악, 종교처런 비자연적인 현상은 물론이고 의료보험 같은 사회제도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인간은 신체적으로도 열등한 존재이고 번식도 쉽지 않으며, 해부학적으로도 실패작에 가깝다. 또 인간과 인간의 뇌는 스스로는 물론 지구 전체까지 파멸로 끌고 갈 수도 있는 괴이한 파괴 충동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절대로 진보가 아니라 진화의 이태로운 유희이다.

인간 이외에도 자연에는 진화론의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 수많은 생물들이 실제로 많이 존재한다.
고래가 바다라는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파란색을 구별하는 일이 필수일텐데도 고래는 파란색을 식별하는 능력이 없다. 진화학적 견지에서 이것은 결함이다. 또 유칼리 나무잎만 먹는 코알라는 진화에 퇴행하는 생물이다. 유칼리 나무잎은 영양가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소화시키기에도 많은 열량을 소모한다. 이런 영양가 없는 잎을 소화시키기 위해 많은 열량을 소모하는 코알라는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자는데 보낼 뿐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죽순만 먹는 판다도 마찬가지다. 인상적인 숯사자의 갈기는 이 동물을 벼룩상자로 만들 뿐 사냥이나 번식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갈기가 암사자를 끄는 데 자극제가 된다는 사실은 옳지만 그것은 갈기의 양이 아니라 색이 검은색쪽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검은 갈기의 숯사자를 아버지로 둔 새끼 사자의 경우 생존률이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짝짓기와 종족보존의 관전에서 사자의 갈기가 지닌 의미는 희박하다. 
짝짓기 한 후 숫컷을 잡아먹는 사마귀나 거미도 종족보전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진화의 수많은 무의미한 행위 중 하나에 불과하다. 
꼬리치레가 무리의 우두머리로 힘세고 용감하고 짝짓기 욕구가 왕성한 동료가 아니라 친절하고 자기희생적인 심지어 다리를 다친 늙은 새가 무리를 이끄는 것은 다윈의 적자생존이란 말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또 하와이섬의 아카티넬라는 그 모양과 색이 발견되었는데, 그 섬의 기후가 일정해서 특정 식물들만 자라고 있다는 것을 볼 때 그 종의 다양성은 환경에 적응해서 진화한다는 다윈의 이론에 역행하는 사례다.  
또 25년간 초파리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현대 환경에 최적인 돌연변이 체를 만들어 약 100세대를 거쳐, 차후 50세대 동안 사육환경이 아닌 자영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방출했으나 자연환경에서는 사육된 대부분의 형질이 사라졌다. 돌연변이를 통해 환경의 요구에 적합하게 바뀐 개체들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점차 사라진다는 다윈의 이론에 또 반하는 것이다.
자연은 무의미한 일들(초파리의 분홍색 눈 등) 을 발생시키고 유지시키기도 하며, 의미있는 일들(초파리 실험에서의 고령의 가임능력)은 사라지게 한다. 

결국 진화 과정에서 일관되게 관철되는 것은 품질이 아니라 다양성이다. <p142>

알바트로스는 착지하다가 목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고 팽귄은 우스꽝스럽게 뒤뚱거리며, 이집트의 대머리 독수리는 밤하늘을 날아갈 때 두개골이 노란색으로 반짝인다. 판다는 포르노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짝짓기를 할 수 없으며, 수사슴은 너무 큰 뿔때문에 나무에 자주 걸리기도 한다. 이 밖에도 여러 동물들이 결함을 가진 채 아직까지도 종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진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진화가 '무자비한 생존 투쟁의 장'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그보다는 여러 면에서 진화를 누군가가 지구상에 마련해 놓은 현란한 게임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p.14>

난 이 책을 생각보다 매우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어렴풋이 그저 단순히 알고만 있었던 동물들의 형태나 생태들이 이렇게 다양한 이론으로 해석되어 설명된 것이 흥미로웠으며, 한 가지 이론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아직까지도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없다. 
그동안 진화론만 꿋꿋이 믿고 있었던 내게 새로운 시야를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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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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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것을 생각해 본적이 있나? 죽음'이란 것은 어쩌면 우리 일상에 친숙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는 당장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사형선고가 내려지 듯, 시한부 인생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인생 자체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도 고통스럽고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의 마지막을 값지고 의미있게 보내는 랜디 포시 교수의 용기에 감탄했다. 그도 물론 자신의 병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꼈겠지만 그는 그 자신보다 남겨진 사람들이 힘들지 않도록, 희망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항상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알려주었다. 책 곳곳에서 느껴지는 그의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눈물겹도록 마음이 저렸다. 그의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의 학생들, 일반인들을 위해 그는 그가 살아온 것, 그가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마지막 강의를 한다.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어떤 거창한 지침이나 구구절절한 행동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 친구를 통해 얻을 수 있음을 깨달게 한다.

그의 일상을 보며, 죽음을 앞둔 이도 저렇게 낙천적이고 적극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는데, 사소한 일에도 짜증에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찬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아무생각 없이 너무 헛되이 시간을 막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후회되었다. 시간이 빨리가는 것만 아쉬워했지 뭘 해야되겠다고 생각은 안하니 말이다. 내가 처한 현실과 어려움은 그저 배부른 투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쉽고 짧은 삶... 그의 인생이 너무나 안타까워 목이메였다.

아이들과 함께 밝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서 한참 동안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지막 강의날 아내의 생일, 다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끌어안고 키스를 나누며 아내 제이가 '제말 죽지말아요...'라고 말한 장면에서는 정말 울컥했다. 어째서 신은 이렇게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 그리고 훌륭한 대학교수를 그렇게 빨리 데려가는 건지.. 너무 슬폈다.

동영상 강의도 찾아서 봤다. 너무 건강한 모습으로 웃으며 팔굽혀 펴기를 하는 모습은 6개월 뒤에 죽을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다시한번 그의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훗날 그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학생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고 훌륭한 교수님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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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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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生이라...매우 거창한 것 같으면서도 모호하다. 하지만 열네살 꼬마 모모는 어린 시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생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깨달아 가는 것 같다. 어리면서도 성숙한 그리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속깊은 모모를 떠올리며 내가 인연을 맺고 있는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의 인생의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게 했다. 그리고 책장을 덮은 후에 남는 강렬한 감동은 하루가 지난 아직까지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좋은 책을 읽은 후에 떠올리는 이런 감정은 내 生에 자극을 주고 조금 더 감성적으로 이끌어 주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ㅎㅎ

창녀인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14살 아랍 소년 모모...장난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고 길거리를 배회하며 가끔 남의 물건도 슬쩍하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를 잘 돌보고 마음 씀씀이가 착한 소년이다. 자신이 10살이라 믿고 있는 모모는 학교에서는 너무 조숙하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고 친구 아르튀르(우산)을 벗삼아 길거리를 배회하기도 한다. 이 어린 소년이 믿고 의지하는 이는 창녀들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로자 아줌마로, 로자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모모 주위에는 룰라 아줌마와 하밀 할아버지 등 여러 사람이 있다. 룰라는 흑인 동성애자고 하밀 할아버지는 노화로 기억을 점점 상실해간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힘겹게 맡아 기르는 로자 아줌마, 몸을 팔아 얻은 돈을 아낌없이 모모에게 베풀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바로 찾아와서 돌봐주는 롤라...그리고 빅토르 위고의 책을 항상 곁에 끼고 다니며 인생에 있어서 좋은 지식과 도움을 주는 하밀 할아버지 등...이들의 마음 씀씀이와 生은 아름답기도 하다.

하지만 모모 주위의 사람들의 生은 그렇게 평탄치 않다. 창녀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현실에서 자신과 같이 많은 아이들이 버려졌으며, 창녀의 자식은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회의 모진 고정관념, 유태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학대 받았던 로자 아줌마 등의 삶을 통해 모모는 인간의 生이란 것이 때론 행복하고 때론 풍요로울 수 있지만 사회적 편견이나 인종 종교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요건에 의해 불행하고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어린 시절에 알아버렸다. 生은 로자 아줌마를 식물인간에 골칫거리로 만들었고, 박학다식하던 하밀 할아버지를 바보로 만들었다. 

병으로 점점 이성을 잃어 똥오줌을 아무대나 싸고 옷을 아무데서나 벗으며, 인간으로서 온갖 추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를 보며 모모는 그녀의 生이 그렇게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 추하고 쓸모없는 생을 병원에서 억지로 늘려 살게하고 싶지 않았다. 모모는 그녀가 살아생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었던 끔찍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만든 지하의 그녀만의 비밀의 장소에 그녀를 데려가 눕히고 죽은 후의 그녀에게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시키는 듯 그렇게 그녀 곁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녀와 자신만이 아는 둘만의 장소에서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을 지켰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것이 生이며,살아가는 이유라는 것을 알았다.

모모는 말한다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 였다." 고... 결국 生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으며 하밀 할아버지, 룰라 아줌마 모두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친구 아르튀드(우산)도 사랑했으며 무엇보다 그런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한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로자 아줌마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사랑했던 아름다운 기억은 모모의 生에 있어서 값진 등불이 될 것이다. 부모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었고  모모를 잃고 싶지 않아 4살씩이나 나이를 속여가며 그를 곁에 두고 싶었던 로자 아줌마 또한 모모가 그녀의 삶 마지막까지 지켜주어서 행복했으리라..

마지막 작가의 끝맺음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生이 주는 의미이다. 生이란 때론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사랑'이란 감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다.
생이 결코 만만치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그리고 기왕 한번 사는 生 더욱 열정을 가지고 부딪쳐 볼만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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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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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부재'라는 또 한번 쓸쓸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우리는 과연 그들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매일매일 뻔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내가 당연히 느끼고 있듯 상대방 또한 그걸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어느 누구하나 알지 못한다.  어느 누구하나 나에게 진정한 관심이 없다. 매일매일 동고동락하는 동료들 조차도 사실은 모른다.

현대인의 자기 자신 이외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지극한 개인주의(?)를 꼬집는 슈이치식의 냉소적인 소설이었다. 결국 한사람의 지독한 절망으로 소설이 끝나지만 그것조차 그 사람 개인의 해프닝일 뿐 그 절망에 대한 어떤 슬픔도 없다. 영향도 없다. 이보다 더 고독할 수는 없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뼈져리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전에 읽었던 요시다 슈이치의 또 다른 소설 <퍼레이드>도 떠올랐다. 그것은 <랜드마크>와는 조금 다른 내용으로 사실은 상대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두 소설에서 모두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절, 무관심, 그리고 소통의 부재, 즉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며, 현대 사회 역시 그런 개인주의로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형 건물을 지탱하는 하나하나의 부속품인 볼트, 그 하나의 볼트가 삐걱거리다 파열해 버리면 처음에는 별 티가 나지 않지만 점차 근접한 볼트로 그 하중이 쏠리면서 천천히 뒤틀리다 결국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거대한 고층 빌딩, 거대 사회의 몰락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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