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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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를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처럼 내 마음에 꼭 드는 책은 처음이다. 그동안 읽은 몇 가지 에세이에서는 책을 좋아한다는 작가와 어느정도 같은 공감대를 이룰 수는 있었고 소개되어 있는 몇가지 책들을 통해 약간의 지식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그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읽는 자체의 큰 즐거움은 없었다. 그냥 지식의 습득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작가가 소개하는 책들을 읽지 않고서는 작가가 설명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작가의 느낌과 생각에 쉽게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 독서 에세이 한권을 이해하기 위해 그 책 속에 소개되어 있는 다른 여러 가지 책들을 읽어봐야 했던 일도 있었다. 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계기는 되었지만, 한권의 책속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만족감은 덜했다.

이 책이 내게 만족감을 주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책을 좋아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직장 여성이라는 것이었고, 책이 좋아서, 책을 읽을 때 행복해서 책을 읽는다는 그녀의 생각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바쁜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 받고, 정신없는 하루에 지쳐 힘들 때도 책속의 어느 한 구절 밑줄 그은 문장에 위로를 얻고 즐거움을 찾는 그녀의 삶이 나와 너무 비슷했다. 그냥 이책 저책의 내용을 소개한다기보다 삶 속에서 책을 즐기며, 책을 통해 과거의 기억도 떠올려보고, 책을 통해 앞으로의 삶도 새롭게 다짐해보는 그 모든 것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일, 사랑, 삶.. 그 모든 것에 공감이 팍팍왔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면 그 책 자체를 통해 얻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책을 통해 내 삶과 기억의 어떤 부분을 다시 떠올려보고 또 '어떻게 살고 싶다.' 내지는 '이렇게 해봐야지' 라는 어떤 다짐 같은 것들도 하게 된다. 그런 기억과 다짐들이 쌓이게 되면, 내 삶이 좀더 알차고 풍요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어떻게 살아라"라는 주입식의 처세집, 재태크, 자기계발서, 경제경영 같은 소위 밥벌이에 유익한 책들보다는 어떻게 보면 삶과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소설 속에서 순수하게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많이 읽자'라는 작가의 말에 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똑똑하지만 감성이 메마른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 자신의 책읽기 내공이 어떻게 감성영업으로 이루어져 성공할 수 있었는지데 대한 그녀의 일에 대한 일화도 재미있었다.

또 무엇보다 공감이 간 것은 그녀의 밑줄이다. 밑줄 긋는 여자~ 오래 전 나의 독서 카테고리의 이름도 그것이었다.ㅎㅎ 어떤 책을 읽게 되면 특별이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있다. 다이어리에 베껴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고 싶은 구절, 그리고 달달 외워서라도 머릿 속에 박아 놓고 싶은 구절, 아니 일부러 외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머릿 속에 와서 박히는 구절들말이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어떤 구절들이 다른 이도 같은 느낌이로 그 구절을 기억한다면 그 공감대는 말할 수 없이 증폭된다. '아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를 알게 되었을 때는 웬지 그 여운은 감동을 넘어 전율까지 일으킬 때도 있다. 독서 에세이나 서평을 읽을 때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속에는 그런 구절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가 읽은 대부분의 책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감동은 더 컸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 책이 내겐 더없이 즐거웠다.

책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는 주제를 갖는 책이긴 했지만 굳이 독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책속엔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해외 영업부에서 오랜 근무를 한 그녀의 다양한 경험들과 그녀의 톡톡튀는 언변은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함이 없었다. 오랫만에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서 다시한번 반가웠다. 나도 언젠가 나의 삶과 독서의 기록들이 이렇게 멋진 책 한편으로 묶일 수 있을 날이 올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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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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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권태와 지루함에 못견딜 정도로 괴로워 본 적이 있는가? 비교적 홀로 있는 시간을 그다지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난 책을 읽기도 하고, 연주 동영상을 보거나, 애니메이션을 즐기기도 한다. 그 세 가지 중 한 가지에 빠지면 시간은 잘 간다. 보고 있는 책이 재미가 없으면 다른 책을 고르고, 책 읽는 일에 지치면 애니메이션을 틀어 본다. 그렇게 뒹굴뒹굴 보내면 어쨌든 시간은 잘 간다. 하지만 그렇게 정적으로 활기없이 보내는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뭐하며 사는가' 싶을 정도로 재미없고 지루한 일상이다. 삶 자체가 바로 권태가 되어 버리는 거다.

이 책의 내용이 그렇다. 책 속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오직 고도를 기다리기 위한 일 외엔 의미있는 일이 없다. 고도가 누구인지, 어디서 오는지, 언제 오는지, 왜 오는지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냥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거다. 그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도는 오지 않는다. 별다른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한 소년이 나타나 고도가 오늘은 오지 않고 내일 올 것이라고 전하고 간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그 둘이 시간을 죽이기 위해 하는 일들은 서로 질문하기, 되받기, 욕하기, 운동하기, 장난하기, 춤추기 등이다. 또 급기야는 목을 매서 자살하는 공상까지 한다. 서로 이야기도 나누는데, 그 내용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것들 뿐이다. 그런 가운데 럭키와 포조라는 인물들이 그곳을 지나가지만 그들도 권태롭기는 마찬가지다. 1막을 읽을 때까지 너무 지루해서 책을 덮을까 몇번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2막에서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1막과 똑같은 행동과 대화들이 반복된다. 단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럭키와 포조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연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한다. 지루하기는 마찬가지다. 굳이 1막과 2막을 나누어서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이런 작품은 처음이었다. 내용도 없고, 줄거리도 없고, 어떤 사건이나 갈등도 없다. 그렇다고 특별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것이 끝이다. 2막의 시작도 "이튿날 같은 장소" 이다. 작품 자체가 권태며, 지루함이었다. 고도가 언제 올까 나 또한 고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 지쳐버렸다.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다가 그냥 끝난다. 아마 3막이 있었어도 고도를 계속 기다리는 상황이 반복되었을 거다. 그들의 행동과 대화 속에서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굉장히 신경써서 읽었었는데.. 사실 그들의 행동이나 대화 자체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었다. 그냥 어처구니 없는 일들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이 어처구니 없는 허무함 속에 바로 인간의 삶이 있었다는 것을 이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에야 뒤늦게 깨닮았다.

고도가 누구인가? 언제 올까? 처음에는 그런 기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닌 것 같다. 고도가 누구이든 언제 오든 상관 없었다. 우리네의 인생 자체가 길고 긴 기다림이고, 언제 올지 모르는 막연한 희망 .. 즉, 이 책에서 말하는 고도와 같은 존재를 마음 속에 두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 하나만 가지고도 삶을 지탱할 큰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오늘 오지 않았다고 실망할지 모르지만 그 실망은 다음날 다시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또 다른 기다림의 의미를 갖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권태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지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아쉬웠던 점은 두 주인공들이 막연히 고도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고도를 찾아 떠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기다림보다는 스스로 이상과 희망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하는 것을 보여주는 삶... 이것 또한 인간의 바람직한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 또한 책을 읽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것도 모두 나의 삶의 즐거움과 활력소가 되는 것들이긴 하지만 이젠 좀더 활기있는 그리고 몸을 움직여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것들도 도전해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순히 주어진 현실에 맞춰 사는 삶보다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다른 일들을 찾고, 나의 능력을 향상시켜 나갈 때 내 삶이 좀더 발전적이고 활기차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어딘가에 있을 내가 찾는 고도도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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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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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고전 문학에 갑자기 흥미가 생겨 몇권의 책을 찾아 읽는 중이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젠 제법 '문학을 좋아한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학창 시절 때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문학과 국어였고, 그래서 시험에 필수로 읽어야 할 최소한 몇 가지의 책을 제외하곤 거의 문학 작품이란 것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 유명한 한국단편집 같은 것들도 거의 읽지 않았고 소위 세계문학전집에 속한 책들도 거의 읽지 않았다. 지금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책을 모두 읽지만, 웬지 내겐 문학의 기본 바탕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손에 들었다. 4대 비극 작품이라면 너무나 유명해서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줄거리 정도는 알 수 있었는데, 네 작품 중 <오셀로>는 조금 생소했다. 한간에서는 이 작품을 4대 비극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한다고도 하더라. 비교적 분량이 많지 않았고. 희곡 작품이었지만 며칠 전 파우스트를 힘겹게 읽고 났더니 이 작품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역자의 장황한 서문부터 나왔는데, 줄거리와 내용이 서문에서부터 너무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 것이 내겐 안타깝게도 작품의 재미를 확 떨어트리는 역할을 했다. <데스데모나가 억울하게 목졸려 죽는 장면은...>이란 구문을 읽자마자 '오 이런;;' 하며  못 볼걸 본 듯이 책장을 뒤로 휙 넘겨버렸다. 비극적인 내용이란 건 알았지만 이런 중요한 결말은 미리 알면 재미가 없는 것을...(하여간 남들은 다 아는 유명한 줄거리를 모르는 무식한 나를 탓해야겠지..;;)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남자의 질투심이다. 오셀로의 질투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여 죽는 것으로 끝난다. 오셀로는 무어인이로 나이 많은 흑인이고, 데스데모나는 귀족의 딸로 백인이다. 결혼 때부터 신분과 인종의 차이로 많은 갈등을 겪었지만 오셀로에 대한 데스데모나의 지극한 사랑으로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복수를 꿈꾸는 오셀로의 기수 이아고의 간계와 농락으로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의심하고 결국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도 죽는 안타까운 결말로 치닫는다. 줄거리의 핵심 악의 축'인 이아고의 복수 역시 따지고 보면 질투심이다. 상관 오셀로와 카시오를 해하려는 이유가 단순히 부당한 대우에 대한 복수심이라기보다 그들이 자신의 아내와 놀아났다는 풍문에 대한 분노가 복합적으로 폭발하여 모든 상황을 극단적인 살인으로 몰고가는 계기를 만든다. 남자의 질투심은 참 무섭기도 하다.  

여기서 내가 의심이 가는 것은 과연 그 남자들 특히 오셀로가 진정으로 데스데모나를 사랑했냐는 거다. 질투심으로 눈이 멀었더라도 그렇게 경솔하게 상대의 말도 듣지 않고 바로 죽일 수가 있느냐는거다. 그것도 정말 사랑했다고 믿었던 여인을... 그녀를 믿지 못했던 것이고, 그녀를 사랑한 자신 또한 믿지 못했던 것이고, 결국 자신의 나약함이 상대도 죽이고 자신도 죽음으로써 끝내버린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인종적, 신분적, 나이차 등 모든 것에 대한 열등감도 동시에 작용하였을 것 같다.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면 사랑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그녀를 지켜줬어야 했다. 오셀로에겐 그 확신마저 없었던 것이다. 주위의 환경과 계략에 휘둘려서 줏대없이 왔다갔다하고 또 경솔하기까지한 오셀로란 남자가 솔직히 좀 짜증났다. 끝까지 서로의 사랑을 믿고 함께 죽음을 택했던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느낌이 너무나도 달랐다.

결국 가장 안타까운 비극은 사랑도 질투도 아닌 인간의 나약함이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 작품이 세기의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비극적 결말에 있는 것 같다. 오셀로에 대한 못마땅함 때문에 읽는내내 불편한 작품이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 작품도 공연으로 직접 감상하고 싶다.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나머지 세 작품도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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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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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것을 바라봐야 하는 다른 가족들의 마음이 더 아플 것 같다. 더군다나 하나밖에 없는 손자가 자폐증을 갖고 있다면....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불거지고 가슴이 아렸는지 모른다. 이 글을 쓴 저자 대니얼도 몸이 불편한 사람이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 30년 이상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장애인으로 살아온 30년보다 더 많은 날을 살아가야 할 손자를 지켜보며, 그는 손자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장애라는 편견에서 빨리 벗어나 세상을 밝고 지혜롭게 혜처나갈 용기를 주고 싶었을 거다. 이 책속의 모든 글 속에는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한 사랑이 묻어나 있다.

이글을 쓴 저자 대니얼은 심리학자이자 상담전문가로 서른셋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다. 그 불행으로 결혼 생활도 평탄치 못하게 되고, 어린 두딸을 남겨둔 채 아내와 이혼을 한다. 몸이 불편한 자신의 처지가 싫었고 그렇게 떠난 아내를 원망하며 살았다.  하지만 아내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내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기에 아내의 죽음은 그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마음의 스승이었던 누나, 그리고 부모님의 연이은 죽음을 겪고, 어렵게 키운 자신의 둘째 딸이 낳은 손자가 자페아 판정을 받는다. 그는 자기 자신 때문에 울었고, 평생 몸이 불편한 자신 때문에 고생한 딸이 자폐아 아들로 또 마음의 짐을 짊어져야 할 일들에 울었으며, 자폐아를 딛고 세상에 맞서 살아가야 할 손자 샘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 때문에 울었다.

하지만 대니얼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손자 샘을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 책은 샘이 태어나면서부터 4년 동안 쓰여진 것이다. 전신마비의 고통 속에서 또 자신이 언제 마비 합병증으로 인생이 끝나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손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담았다. 자신이 평생 온몸으로 겪고 깨달은 일들, 장애인으로서 세상을 살아온 일들, 그리고 심리치료사로 일하며 환자와 겪은 일 등을 이야기하며, 그 이야기 속에 손자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진심이 글자 하나하나 마다 마음 저리도록 너무나 솔직하게 배어 있었다. 더불어 손자 샘이 자신에게 있어서도 인생에 즐거움과 감사함 그리고 온몸으로 느끼는 감동임을, 그래서 자신이 현재 행복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전해주고 있다.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사랑이 사진 속에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이 책은 '샘' 뿐만아니라 '샘'과 같은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 그리고 그런 장애를 보살펴야 하는 부모님들 그리고 장애로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지혜와 성찰의 의미를 주는 것 같다. 샘이 할아버지의 진심과 사랑을 알고 건강하고 지혜롭게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회사일이 좀 힘들다고 또는 생각했던 대로 일이 잘 안풀린다고 별것 아닌 일로 투정과 짜증을 자주 부렸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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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경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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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지만 그 방대한 분량과 쉽지 않은 내용의 압박으로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괴테는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무려 57년이란 세월이 들었다. 정말 굉장한 시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위대한 철학자라로 이름을 남긴 그가 평생을 공들여 완성한 작품을 단 3일만에 읽은 나에게 그의 작품에 대해 이러저러한 감상을 쓴다는 자체가 주제넘고 무리한 일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진정한 속뜻은 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작품 속엔 괴테가 가지고 있는 신화적, 철학적, 문화적, 역사적 모든 지식이 방대하게 녹아 들어 있었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등에 나오는 수많은 캐릭터들은 작품을 읽는 내내 꿈 속에 빠져 든 것처럼 매우 판타스틱했다.

파우스트란 작품을 책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파우스트가 내게 아주 생소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었던 난, 여러 작곡가들의 음악 속에 묻어 있는 파우스트에 대해 간접적으로 접해본 적이 있다. 파우스트'란 소재는 음악가들에게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나 보다. 말러, 리스트,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등 유명한 작곡가들은 교향곡, 오페라, 가곡, 피아노 등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리스트의 피아노곡과 슈베르트의 가곡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들의 음악을 통해 파우스트를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작품의 분위기나 느낌 같은 것들은 어렴풋하게 남아 이 작품을 직접 읽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의 비극]에서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악마에게 영혼을 넘겨버리는 파우스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식탐구에의 만족을 모르는 파우스트는 인간의 힘으로는 천지만물의 근원을 탐구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게된 것이다. 악마의 유혹으로 온갖 향락과 관능의 세계에 빠지지만 그레첸이란 여인과의 비극적 사랑이야기가 1부의 주요 내용이다. 비극의 결말로 그레첸은 감옥에 갇히고 죽음을 눈앞에 두지만 결국 신은 그레첸을 구원한다.

[2부의 비극]에서는 헬레네와의 사랑 이야기도 나오지만 단순히 남녀의 사랑을 넘어 전쟁, 간척 사업 등 사회적 사건으로 확장된다. 메피스토펠레스와 합심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신들과 천상과 지옥을 넘나드는 복잡한 전개가 이루어진다. 세월이 흘러 파우스트도 나이를 먹고 우수의 여인으로부터 눈을 잃은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된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으로 영혼을 악마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나 결국 신의 구원을 받고 이 작품을 끝을 맺게 된다.

고뇌하는 인간이 악마와 결탁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고 결국은 신에게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결국 본인의지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향상하는 한 인간상을 제시하여, 그런 인간이라면 구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에게 있어 끝없는 탐욕과 지식욕만이 아닌 신의 경지에까지 이르려는 자아실현의 욕망을 보여주며, 이것은 마치 괴테 자신이 갈망하는 욕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은 끊임없이 방황하며 살아간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방황하는 인간 속에 내재된 또다른 인간의 일면일 수도 있다. 인간을 방황하게 하며, 고통과 불행을 선사하고 수많은 유혹에 시달리게 만드는 존재... 그 악마 때문에 고통도 받고 방황도 하지만 결국 그 악마를 이겨내고 인간 본연의 의지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  노력하는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것이 바로 파우스트가 추구하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의 세계의 귀한신 분이 악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 우리는 구할 수가 있습니다." <p.570>


익숙치 않은 희곡장르와 마치 산문시같이 길게 연속되는 장황한 대사...게다가 내용만큼이나 엄청나게 달려있는 *해설과 역주.. 모든 것들이 결코 이 책이 쉽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 매번 역주와 해설을 넘겨 읽는 것이 작품을 읽는 흐름에 방해가 되어, 모든 해설을 찾아 읽어보지는 못했다. 따라서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앞으로 몇번은 다시 읽어봐야할 것 같다. 또 기회가 된다면 이 작품의 공연을 직접 보고 싶다. 장면의 연출과 긴 대사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하다. 이 작품은 희곡이므로 당연히 공연을 통해 본다면 훨씬 더 이해가 쉬우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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