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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독서 에세이를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처럼 내 마음에 꼭 드는 책은 처음이다. 그동안 읽은 몇 가지 에세이에서는 책을 좋아한다는 작가와 어느정도 같은 공감대를 이룰 수는 있었고 소개되어 있는 몇가지 책들을 통해 약간의 지식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그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읽는 자체의 큰 즐거움은 없었다. 그냥 지식의 습득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작가가 소개하는 책들을 읽지 않고서는 작가가 설명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작가의 느낌과 생각에 쉽게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 독서 에세이 한권을 이해하기 위해 그 책 속에 소개되어 있는 다른 여러 가지 책들을 읽어봐야 했던 일도 있었다. 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계기는 되었지만, 한권의 책속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만족감은 덜했다.
이 책이 내게 만족감을 주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책을 좋아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직장 여성이라는 것이었고, 책이 좋아서, 책을 읽을 때 행복해서 책을 읽는다는 그녀의 생각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바쁜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 받고, 정신없는 하루에 지쳐 힘들 때도 책속의 어느 한 구절 밑줄 그은 문장에 위로를 얻고 즐거움을 찾는 그녀의 삶이 나와 너무 비슷했다. 그냥 이책 저책의 내용을 소개한다기보다 삶 속에서 책을 즐기며, 책을 통해 과거의 기억도 떠올려보고, 책을 통해 앞으로의 삶도 새롭게 다짐해보는 그 모든 것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일, 사랑, 삶.. 그 모든 것에 공감이 팍팍왔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면 그 책 자체를 통해 얻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책을 통해 내 삶과 기억의 어떤 부분을 다시 떠올려보고 또 '어떻게 살고 싶다.' 내지는 '이렇게 해봐야지' 라는 어떤 다짐 같은 것들도 하게 된다. 그런 기억과 다짐들이 쌓이게 되면, 내 삶이 좀더 알차고 풍요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어떻게 살아라"라는 주입식의 처세집, 재태크, 자기계발서, 경제경영 같은 소위 밥벌이에 유익한 책들보다는 어떻게 보면 삶과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소설 속에서 순수하게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많이 읽자'라는 작가의 말에 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똑똑하지만 감성이 메마른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 자신의 책읽기 내공이 어떻게 감성영업으로 이루어져 성공할 수 있었는지데 대한 그녀의 일에 대한 일화도 재미있었다.
또 무엇보다 공감이 간 것은 그녀의 밑줄이다. 밑줄 긋는 여자~ 오래 전 나의 독서 카테고리의 이름도 그것이었다.ㅎㅎ 어떤 책을 읽게 되면 특별이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있다. 다이어리에 베껴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고 싶은 구절, 그리고 달달 외워서라도 머릿 속에 박아 놓고 싶은 구절, 아니 일부러 외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머릿 속에 와서 박히는 구절들말이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어떤 구절들이 다른 이도 같은 느낌이로 그 구절을 기억한다면 그 공감대는 말할 수 없이 증폭된다. '아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를 알게 되었을 때는 웬지 그 여운은 감동을 넘어 전율까지 일으킬 때도 있다. 독서 에세이나 서평을 읽을 때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속에는 그런 구절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가 읽은 대부분의 책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감동은 더 컸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 책이 내겐 더없이 즐거웠다.
책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는 주제를 갖는 책이긴 했지만 굳이 독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책속엔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해외 영업부에서 오랜 근무를 한 그녀의 다양한 경험들과 그녀의 톡톡튀는 언변은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함이 없었다. 오랫만에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서 다시한번 반가웠다. 나도 언젠가 나의 삶과 독서의 기록들이 이렇게 멋진 책 한편으로 묶일 수 있을 날이 올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