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in 시사
이인경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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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이 한권의 교과서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은 주제별로 역사를 정리하고, 그 역사의 중요 쟁점을 짚어보며,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까지 생각해볼 수 있게 구성되었다. 체제 또한 주제의 용어적 의미를 정리하는 도입을 시작으로, 과거의 역사를 설명하고, 중간중간 읽어보기 코너를 두어 본문에 관계된 자세한 부연 설명이나 본문 사건과 관계된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 다음엔 그 역사와 관계된 몇몇 유명 인물들이 대화형식으로 사건의 핵심을 다시한번 짚어보고, '세계는 지금 우리는 지금'이란 코너를 두어 그 역사가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살펴본다. 마무리 부분의 '나도 할말있다'코너는 주제와 관계된 물질이 직접 사건을 재해석하는데, 이 부분이 제일 재밌다. 도입부터 시작해서 중간중간 코너대로 내용전개 그리고 마무리 정리하기까지... 아~ 이거 교과서다.!! 이런 느낌이 한번에 탁 왔다.

사실 이런 교과서 같은 형식은 솔직히 책을 읽는 내겐 글의 흐름을 차단하여, 소설 읽듯이 즐겁게 역사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맥을 좀 끊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글박스와 각각 끊어져 있는 코너의 내용까지 모두 한꺼번에 통합적으로 설명되었으면 더욱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코너별 설명들은 생략과 압축이 많아서, 조금 깊이 있는 내용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이겐 그저 한 주제의 맛보기 정도 밖엔 안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세계사와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이 책이 굉장히 유익할 것 같았다. 역사를 토대로 현대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짚어보며, 미래의 방향성까지 의미를 확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가 이런 체제대로 가도 재밌을 것 같았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주의깊게 본 것은 <세계는 지금, 우리는 지금>이란 코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시사와 사건들이 바로바로 연결지어 설명되어 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이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일이 역사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점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과과정의 문제점은 교과서가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는 것이다. 말그대로 학교에서 배운 것 따로, 현실에서 적용하는 것 따로이다. 다시 말하면, 배운 것을 실제 생활에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한다. 물론 교과서라는 것이 그때그때 사건마다 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쓰여지면 최소한 5년은 지속된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학생들에게 더욱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간단히 소개해본다. 그 내용은 여행, 대학, 뮤지컬, 성형수술, 이슬람, 사육, 일기예보, 식량, 신도시, 석유개발, 주식, 해적, 지도, 물, 우주개발의 역사이다.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꽤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가장 관심있게 본 것은 석유의 역사다. 석유가 오래 전에는 건물 접착제나 설사약으로도 쓰였다니 몰랐던 놀라운 사실이다.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에너지원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이후, 세계대전을 비롯한 각종 전쟁의 에너지원으로 쓰였다. 또 중동 전쟁을 야기시키고 국제 분쟁을 유발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그만큼 석유가 세계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머지 않은 미래에 곧 석유고갈에 직면하게 된다.  세계는 '그린뉴딜'이다 뭐다 해서 에너지 절약 정책과 대체 에너지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이명박 정부는 왠 원자력발전비율을 대폭 확대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원자력이 화석연료의 대안인가? 물론 세계가 어떤 흐름으로 경향성을 가지던,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난 이 정부의 방향성을 모르겠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도 헷갈리고...역사와 세계흐름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현재 정부 대책을 살펴보면, 솔직히 속시원한 이야기보다 가슴답답한 현실을 알게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역사, 특히 시사에 대한 것들은 눈에 불을 켜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 또한 시사에 그리 밝은 편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책들을 통해 안목을 넓히고자 노력한다. 

이 책의 리뷰를 쓰려 했던 것인데, 교과서 이야기서부터 글이 삼천포로 왔다갔다 마구 우왕좌왕이다. 체계적으로 글을 다시 고쳐 쓰지 않을 생각이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딱 요거다. "시사에 관심을 많이 갖자"~ 그리고 "책을 많이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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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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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면, ’난 왜 저기 보이는 저별이 아니라 이곳, 지구에 살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많다. 또 저별 어딘가에는 우리와 다른 사회와 상상을 뛰어넘는 다른 삶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어릴 때 호기심에 잠시 스쳐가는 생각은 아니다. 지금도 난 거대한 우주 속에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의 지적 존재들이 살면서 우리보다 훨씬 앞선 기술문명을 키우고 있을 어떤 곳이 분명 있을 것 같다고 믿는다. 광활한 우주 속에 먼지만큼도 안돼는 이 지구라는 공간만이 유일하게 선택받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비약적이지 않은가?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인간>이란 책의 다소 당황스런 결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보다 훨씬 앞선 외계 생물체가 지구인을 관찰하고 사육하고 있는 것이었다.어쩌면 이 자질구레한 인간사를 몇백 광년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우주의 지적존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ㅎㅎ 

 

우주의 지적 존재들이라... 내가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우리 인류의 역사는 너무나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자기가 살던 땅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곳이라 생각했던 때에서 다른 대륙을 발견하게 되고, 세상이 평평하다고 믿었던 생각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게된다. 또 세상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생각에서 지구보다 더 넓은 무한 우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각각의 진리가 바뀌어 갈 때마다 종교적 신비주의에 젖은 구세력들로부터 수많은 과학자들이 희생되었고, 어떤 분야들은 현재에도 계속 논란이 된다. 과학의 발달은 자기 중심적인 인류의 존재 가치를 조금씩 흐트러트리는 것 같다. 하지만 우주를 이해하는 일,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을 알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 칼세이건은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물질을 폭발적으로 뿜어 냈던 빅뱅 이후 아무것도 없었던 우주에서 수소원자들의 핵융합반응으로 1세대 별들이 태어나고, 수소가 타고 남은 재에서부터 원소들이 합성되고, 제 2세대 별, 지구가 탄생하고 인류가 기원되었다는 이야기들은 언제 들어도 경이롭다. 지구의 원시 대기의 분자에서 새로운 분자들이 합성되고, 복제되는 과정에서 생명이 출현하고 그것들이 진화하고 발달하는 과정을 칼 세이건은 다위니즘으로 설명한다. 도킨스가 그의 여러 책에서 자주 이 책 ’cosmos’의 내용을 인용했던 이유는 바로 진화론적 관점에서 칼세이건과 도킨스는 일관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원, 우주의 수축과 팽창, 별의 생성과 죽음 등 거시적인 내용에서부터 역사적으로 우주를 향한 연구를 했던 수많은 과학자들과 그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물질관, 과거 이오니아를 중심으로한 과학의 발달사는 역사서를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웠고,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톤에 이르는 과학이론의 정립 과정도 재미있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이론상으로 아직까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공간 여행의 환상에 젖게 만들었다 . 특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이 속도에 가깝게 움직일 때 시간의 흐름이 지연된다. 그렇다면, 우주여행을 하는 사람은 늙지 않으면서 다른 별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홍홍~ 늙지 않으면서 여행하고..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인류는 그들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우주여행을 감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인다는 것이 실현 가능한 일일까? 그것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시공간 여행의 꿈은 여전히 버릴 수가 없다.

 

우주탐사의 발로를 위한 여러 시도들, 그리고 구체적으로 화성, 금성, 목성의 탐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했다. 또 외부 생명체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도 꽤 흥미로왔다. 이미 금성이나 화성에서의 생명체의 가능성은 희박함이 밝혀졌지만, 한편으론 생명체라는 것이 지극히 지구 중심적인 생각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코스모스의 이해는 어쩌면 지구 상에서의 일반적인 법칙이나 관념들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탈지구적인 생각이야말로 코스모스를 좀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생물적 요소라는 것(탄소나 물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생물체)이 화성에서는 전혀 다른 물질일 수도 있지 않을까?

 

칼세이건은 우주를 향한 미래로의 발로에 인간의 두뇌와 과학의 힘을 믿고 있다. 그 또한 외계문명을 믿고 있었으며, 언젠가 외계문명으로부터의 교류를 희망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우주탐사와 기술 발달을 위한 전 인류적인 각오가 필요할 것이라고 촉구한다. 하지만  우주나 행성 탐사를 위한 로켓에 쓰이는 핵탄두가 전쟁무기로 저장되고, 행성탐사용 인공위성을 유도하고 외계문명으로부터 신호를 검출하는 데 활용되는 전파 레이더 기술이 미사일 공격에 쓰이는 현재 지구의 암울한 상황을 안타까와하고 있었다. 인류 문명을 발달시키기 위한 것들이 동시에 인류 문명을 파괴할 수 있다니....그는 과학의 발달이 인류를 환한 미래로 이끄는 진보가 아니라, 인류 멸망의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환경파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과학의 진보의 속도와 발맞춰 인간성과 인간의 윤리적인 면들 또한 동시에 진보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편협한 생각들에서 빠져 있는 것 같다. 자신을 위해, 자국을 위해 더 큰 대의를 상실했다고 할까? 전쟁을 위한 핵무기 축적, 눈앞의 요만큼 진보를 위한 환경파괴... 그것들은 결국 지구 전체를 한순간에 날려버릴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 우주의 어떤 존재들이 이 지구위에서 이뤄지는 인간을의 삶을 보면 굉장히 우습게 보일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나의 생각과 시선이 한층 더 멀리 그리고 넓어진 느낌이 든다. 또한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담고 있었던 나의 상상이 칼 세이건의 생각과 맞물리면서, 언젠가 외계 생명체와의 교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기대를 다시 하게 되었다. 우리도 이제 우주탐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한층 더 우주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앞으로 미래 과학은 지구 내부에서가 아니라 지구 밖으로의 것으로 확장될 것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더 이상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주적 상상력, 그것은 어쩌면 실현 될지도 모르는 우리의 멀지 않은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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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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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때 만해도 도킨스란 인물에 대해 특별한 흥미를 가지진 않았었다. 그저 과학적 호기심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집어 들었고, 인간이든 동물이든 유전자의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그의 이론에 살짝 당황스러웠을 뿐이다. 물론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보다 실증적이라 생각되는 진화론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고, 그의 이론들이 새삼스럽게 놀라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인간을 한낱 도구 취급하는 그의 격양된 어조에 살짝 마음이 상했다고 할까...또한 ’이기적’이란 문구에서 느껴지는 거부감도 조금 있었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진화론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만물을 창조한 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진화론은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훼손된다고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소위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냐’는 식으로.. 뭐 이런 이론들은 어쨌거나 흥미가 있다. <이기적 유전자>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진화와 진화를 부정하는 것들에 관계된 여러 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어떤 책에서도 도킨스 만큼 확고한 자신만의 신념으로 다양한 견해를 펼치는 책이 없었고, 난 또 다시 도킨스를 들춰보기 시작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도킨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그의 <만들어진 신>을 읽고부터다. 이 책에서는 그의 진화이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창조론에서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는 신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신을 ’과학적 가설’’망상’이라 칭하며, 그의 모든 총체적인 지식을 신을 부정하는 데 쏟아붓는다. 이 책에서는 <이기적 유전자>에서보다 훨씬 더 격양된 어조로 모든 종교에서의 탈피까지 권고한다. 그의 이론들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놀라운 집중과 열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도킨스란 인물에 대해 거부감이 든다기보다 그를 더 알고 싶은 생각이 강렬해졌다.


최근 이책 <지상최대의쇼>가 출간되었다.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다소 현란한 느낌과는 달리, 또 전작들에서 느껴지는 다소 격양된 어조와 달리, 이 책은 차분차분 그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진화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은 반박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으며, 수많은 비판자들(창조론자들)에 대한 비판과 물음을 조목조목 따져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읽다보면 어느 덧 그의 이론, 진화론의 타당성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창조론자들이 말하는 지적설계에 의해 하루 아침에 이 지상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연선택과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꾸준이 변화해 온 것이며, 일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진화라는 거대한 관점의 한 부분으로로서 변화하는 과정이란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멋진 무한한 형태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무적위적이지 않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직접적인 결과다. 그것은 마을 유일의 게임, 지상 최대의 쇼다.<p.565>

도킨스는 다윈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역사 부인주의자들(도킨스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역사 부인주의자’들이라 칭했다.)의 논리를 반박하며, 그의 이론에 대한 타당한 증거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시해 나간다. 우선 지구 나이가 고작 1만년 밖에 안됐다고 믿는 창조론자들에 대한 반박으로 지구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현대 과학의 힘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연륜연대학, 방사능시계, 판구조론 등등.. 또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고리’의 증명논리가 매우 허망한 것임을 깨우쳐준다. 그들이 말하는 빈틈에 대한 것도 현재엔 거의 메워졌고, 일례로 어류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과정에서의 중간 형태에 해당되는 화석도 많이 발견되었다. 또 인간이 원숭이에서 유래했다는 일부 잘못된 인식도 바로 잡아 준다. 즉, 어떤 현생 종도 다른 현생 종에서 유래하지 않으며, 인간은 원숭이와 공통 조상을 갖고 있을 뿐이다. 진화가 어떻게든 인간을 향한다거나 인간이 진화의 최종 발언이란 가정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고등’이니 ’하등’이니 하는 말도 넌센스인 것이다.

가축화(인위선택)의 증거로 가축화가 얼마나 강력하고 빠르게 야생동물의 형태와 행동을 바꾸어 놓았는지 개, 소, 양배추 등의 예로 설명하면서, 그로부터 선택자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던 많은 자연선택의 증거에 대한 것들로 그의 이론을 이끈다. 또 과거가 아니라 현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진화사례인 포드 므르차라 도마뱀과 포드 코피슈테 도마뱀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다. 또한 직접 렌스키의 실험을 통해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핵심 요소들을 확인시켜 준다.

다양한 화석 증거를 그림을 통해 보여주며, 생물과 인간의 발달과 발생 과정에 대한 설명들은 매우 생생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도킨스는 단순히 화석 하나로 진화를 증명하고자 하지 않는다. 창조론자들이 워낙 화석에 대한 것에 집착(?)하므로 비판 의견에 대한 증거를 내세울 뿐이다. 그는 화석 자료가 없이도 진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많다고 강조한다. 동물의 해부학, 분자생물학, 지각과 판구조론까지 광범위하게 넘나들며 창조론자들의 '지적설계론'을 명쾌하게 반박한다. 생물의 몸이 완벽하기는 커녕 해부학적으로 들어가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이 엉망진창이라는 증거들, 세포와 발생의 과정이 모종의 전체적 계획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국지적인 자기조립 과정이라는 것 등은 자연선택이 아니면 절대 설명이 불가능하다. 또 특정 지역에서의 동식물 분포는 한 종이 이동해 와서 목적에 맞게 각각으로 변형된 것이다.

이런 모든 논증들은 '자연선택'이라는 필연으로 도착된다. 자연선택은 우연이 아닌 사실이며, 진화 또한 사실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를 과거의 발자취, 그리고 현대의 과학으로 하나하나 증명해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진화에 대한 책 중에 이렇게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짚어가고 있는 책은 없을 듯 싶다. 이 책은 도킨스의 열번째 책이다. 그 열권의 책 모두에서 도킨스는 하나의 신념을 내세운다. 바로 '진화론'이다. 내가 도킨스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의 일관된 열정과 신념이다. 이 책은 도킨스 그의 모든 신념과 지식을 모아 하나의 이론으로 완벽하게 정리한 '그의 완성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싶다.

도킨스에 대한 관심과 진화이론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위해 난 이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소재로 가득하다. 꽃이 곤충에게 미치는 영향, 수꿩이 화려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아귀의 매력에 굴복해 먹이가 되는 물고기, 지구의 연령을 측정하는 시계, 인간과 원숭이의 관계, 지각 변동, 갈라파고스 군도 등등 각종 그림들과 컬러 사진들은 진화설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자료라는 차원을 넘어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매우 재미있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을 한눈에 접할 수 있다. 또 도킨스의 입담 또한 재미있다. 도킨스는 진화를 이해하는 시각을 범죄가 저질러진 뒤에 현장에 도착한 탐정이라고 말한다. ㅎㅎ '부인주의자'라는 말도 웃기고...'도킨스의 버라이어티 쇼'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쇼'란 표현으로 도킨스를 격하시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굉장히 재미있을 것이다. 추천하고 싶다. 읽는 동안 매우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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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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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뛰어넘는 작가의 사랑은 독자를 더욱 매혹시키는 것 같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작가에 의해 창조된 허구의 문학이지만,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들과 생각들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는 소위 '자전적 색체'가 강하게 묻어나 있는 소설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소설 속 인물과 작가를 동일화시킨다.(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소설 속 내용들이 단순히 '소설'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 몰입하게 되고, 그 감동과 여운은 몇 배로 증폭된다. 그런 여운으로 내가 특별히 기억하는 작품은 조지수님의 <나스타샤>와 로맹가리의 <새벽의 약속>이다. 특히 <나스타샤>란 작품을 읽고나선 그 여운으로 한동안 몸살을 앓았었다.

 

이 책 <바람의 그림자>는 '자전적 색체'가 묻어나는 소설이라기보단, 소설 속 주인공 다니엘이 '바람의 그림자'란 작품에 매혹되어 그 작가를 추적해가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자전적 색체'가 묻어나는 소설은 이 소설 속의 소설 '바람의 그림자'이다. 단순히 한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하는 내용을 넘어서 사랑, 희생, 우정, 가족애, 미스테리 등등 굉장히 많은 것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난 이 작품에 흠뻑 취했고, 이 작품의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 지 상당히 고민했다. '굉장히 괜찮았다'라고 쓰고 싶은데, 이 방대한 책 내용에 대한 내 생각을 어떻게 풀어놓아야 할지 쉽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굉장히 괜찮았다'라는 이 표현 또한 직접 글로 써놓고 보니 별로 와닿지 않는다. 내 글쓰는 수준과 생각하는 수준이 아직 이정도 밖에 못됀다.

 

한 작가를 향한 주인공의 동경과 애착이란 감정도 이해가 되었고, 무엇보다 여운이 많이 남는 것은 소설을 뛰어넘는 작가 훌리안의 안타까운 사랑과 그를 위해 희생하는 주변 인물의 사랑이다. 그 안타까운 감동의 여운은 또다시 나를 한동안 아프게 할 것 같다.

뷰를 쓰지 않으려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의미에서 몇자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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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9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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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감각적이면서 서늘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을 한편 만났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잠든 새벽, 오직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서 이 책을 펼쳐 읽는 동안의 그 기분은 이 책의 내용만큼이나 특별했다. 이 책이 내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첫번째 이유는 소설의 전반적인 느낌이 어둠을 둘러싼 작은 불빛의 현재만큼 고요하고 감각적이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그 고요 속에서 누군가가 내 옆에 붙어 책속의 화면을 지켜보며 주인공의 행위를 하나하나 잔잔한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소설 속 주인공은 설명하는 사람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잔잔한 목소리가 실제 내 귀에 들리는 느낌이었다. 시각이 통제된 어두운 주위 환경에서, 내 모든 감각은 초긴장 상태로 어떤 작은 것 하나에도 꽤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째깍째깍 울리는 시계 초침소리마져 신경이 쓰였다. 마지막 장면엔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침잠된 어두운 배경에서 다가오는 보색의 색체의 향연은 더욱 자극적이고 감각적이었다. 아우라의 초록 드레스, 양의 목을 따서 낭자하게 흐르는 붉은 피, 불타는 고양이, 토끼의 빨간 눈, 기이한 향이 나는 음지식물들...책속의 모든 불쾌하고 기묘한 소재들과 환각을 일으키는 듯 내 주변의 고요한 환경과 더불어 나를 더 긴장케하였다. 지금은 이 책의 내용이 그다지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지만,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난 꽤 무서웠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너'인 펠리페이다. 화자인 '나'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은 전에 읽었던 로브그리예의 <질투>라는 작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즉, 소설의 화자가 소설 밖에 있는 경우이다. 이런 구성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독자를 더 긴장하게 하고 집중하게 하는 것 같다. 솔직히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가 '너'인지, '너'가 '나'인지 그 진정한 의미가 헷갈린다. 어쩌면 '나'와 '너'가 동일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혼란스러운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속았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꽤 신선한 충격이다.

 

주인공 '너'인 펠리페는 콘수엘로라는 노파의 의뢰로 60년 전 죽은 노파 남편의 원고를 정리하는 일을 맡는다. 콘수엘로 노파의 저택은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퇴락하고 어두침침한 곳이었다. 그 노파는 아우라라는 조카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펠리페는 이집에 머물면서 조카 아우라에게 걷잡을 수 없는 욕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허상과 현실이 뒤집히고, 과거와 현재가 무너지면서 섬뜩한 결말로 치닫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불을 켜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쳐다봤다. 그냥 그러고 싶어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누군가는 나와 같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  또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보게도 했다. 누구나 영원히 늙지 않고 아름답길 꿈꾼다. 그것은 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욕망으로 인해 값비싼 대가를 치루기도 하고, 욕망에 눈이 멀어 정작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기도 한다.

 

이 책, 생각할수록 되새길수록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또 푸엔테스에게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라틴문학에 슬슬 빠져들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이 있다. 푸엔테스의 작품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아는데, 번역된 것을 거의 없다. 정말 슬픈일이다. 다양한 라틴문학들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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