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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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때 만해도 도킨스란 인물에 대해 특별한 흥미를 가지진 않았었다. 그저 과학적 호기심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집어 들었고, 인간이든 동물이든 유전자의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그의 이론에 살짝 당황스러웠을 뿐이다. 물론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보다 실증적이라 생각되는 진화론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고, 그의 이론들이 새삼스럽게 놀라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인간을 한낱 도구 취급하는 그의 격양된 어조에 살짝 마음이 상했다고 할까...또한 ’이기적’이란 문구에서 느껴지는 거부감도 조금 있었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진화론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만물을 창조한 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진화론은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훼손된다고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소위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냐’는 식으로.. 뭐 이런 이론들은 어쨌거나 흥미가 있다. <이기적 유전자>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진화와 진화를 부정하는 것들에 관계된 여러 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어떤 책에서도 도킨스 만큼 확고한 자신만의 신념으로 다양한 견해를 펼치는 책이 없었고, 난 또 다시 도킨스를 들춰보기 시작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도킨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그의 <만들어진 신>을 읽고부터다. 이 책에서는 그의 진화이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창조론에서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는 신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신을 ’과학적 가설’’망상’이라 칭하며, 그의 모든 총체적인 지식을 신을 부정하는 데 쏟아붓는다. 이 책에서는 <이기적 유전자>에서보다 훨씬 더 격양된 어조로 모든 종교에서의 탈피까지 권고한다. 그의 이론들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놀라운 집중과 열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도킨스란 인물에 대해 거부감이 든다기보다 그를 더 알고 싶은 생각이 강렬해졌다.


최근 이책 <지상최대의쇼>가 출간되었다.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다소 현란한 느낌과는 달리, 또 전작들에서 느껴지는 다소 격양된 어조와 달리, 이 책은 차분차분 그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진화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은 반박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으며, 수많은 비판자들(창조론자들)에 대한 비판과 물음을 조목조목 따져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읽다보면 어느 덧 그의 이론, 진화론의 타당성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창조론자들이 말하는 지적설계에 의해 하루 아침에 이 지상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연선택과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꾸준이 변화해 온 것이며, 일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진화라는 거대한 관점의 한 부분으로로서 변화하는 과정이란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멋진 무한한 형태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무적위적이지 않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직접적인 결과다. 그것은 마을 유일의 게임, 지상 최대의 쇼다.<p.565>

도킨스는 다윈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역사 부인주의자들(도킨스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역사 부인주의자’들이라 칭했다.)의 논리를 반박하며, 그의 이론에 대한 타당한 증거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시해 나간다. 우선 지구 나이가 고작 1만년 밖에 안됐다고 믿는 창조론자들에 대한 반박으로 지구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현대 과학의 힘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연륜연대학, 방사능시계, 판구조론 등등.. 또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고리’의 증명논리가 매우 허망한 것임을 깨우쳐준다. 그들이 말하는 빈틈에 대한 것도 현재엔 거의 메워졌고, 일례로 어류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과정에서의 중간 형태에 해당되는 화석도 많이 발견되었다. 또 인간이 원숭이에서 유래했다는 일부 잘못된 인식도 바로 잡아 준다. 즉, 어떤 현생 종도 다른 현생 종에서 유래하지 않으며, 인간은 원숭이와 공통 조상을 갖고 있을 뿐이다. 진화가 어떻게든 인간을 향한다거나 인간이 진화의 최종 발언이란 가정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고등’이니 ’하등’이니 하는 말도 넌센스인 것이다.

가축화(인위선택)의 증거로 가축화가 얼마나 강력하고 빠르게 야생동물의 형태와 행동을 바꾸어 놓았는지 개, 소, 양배추 등의 예로 설명하면서, 그로부터 선택자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던 많은 자연선택의 증거에 대한 것들로 그의 이론을 이끈다. 또 과거가 아니라 현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진화사례인 포드 므르차라 도마뱀과 포드 코피슈테 도마뱀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다. 또한 직접 렌스키의 실험을 통해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핵심 요소들을 확인시켜 준다.

다양한 화석 증거를 그림을 통해 보여주며, 생물과 인간의 발달과 발생 과정에 대한 설명들은 매우 생생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도킨스는 단순히 화석 하나로 진화를 증명하고자 하지 않는다. 창조론자들이 워낙 화석에 대한 것에 집착(?)하므로 비판 의견에 대한 증거를 내세울 뿐이다. 그는 화석 자료가 없이도 진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많다고 강조한다. 동물의 해부학, 분자생물학, 지각과 판구조론까지 광범위하게 넘나들며 창조론자들의 '지적설계론'을 명쾌하게 반박한다. 생물의 몸이 완벽하기는 커녕 해부학적으로 들어가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이 엉망진창이라는 증거들, 세포와 발생의 과정이 모종의 전체적 계획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국지적인 자기조립 과정이라는 것 등은 자연선택이 아니면 절대 설명이 불가능하다. 또 특정 지역에서의 동식물 분포는 한 종이 이동해 와서 목적에 맞게 각각으로 변형된 것이다.

이런 모든 논증들은 '자연선택'이라는 필연으로 도착된다. 자연선택은 우연이 아닌 사실이며, 진화 또한 사실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를 과거의 발자취, 그리고 현대의 과학으로 하나하나 증명해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진화에 대한 책 중에 이렇게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짚어가고 있는 책은 없을 듯 싶다. 이 책은 도킨스의 열번째 책이다. 그 열권의 책 모두에서 도킨스는 하나의 신념을 내세운다. 바로 '진화론'이다. 내가 도킨스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의 일관된 열정과 신념이다. 이 책은 도킨스 그의 모든 신념과 지식을 모아 하나의 이론으로 완벽하게 정리한 '그의 완성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싶다.

도킨스에 대한 관심과 진화이론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위해 난 이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소재로 가득하다. 꽃이 곤충에게 미치는 영향, 수꿩이 화려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아귀의 매력에 굴복해 먹이가 되는 물고기, 지구의 연령을 측정하는 시계, 인간과 원숭이의 관계, 지각 변동, 갈라파고스 군도 등등 각종 그림들과 컬러 사진들은 진화설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자료라는 차원을 넘어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매우 재미있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을 한눈에 접할 수 있다. 또 도킨스의 입담 또한 재미있다. 도킨스는 진화를 이해하는 시각을 범죄가 저질러진 뒤에 현장에 도착한 탐정이라고 말한다. ㅎㅎ '부인주의자'라는 말도 웃기고...'도킨스의 버라이어티 쇼'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쇼'란 표현으로 도킨스를 격하시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굉장히 재미있을 것이다. 추천하고 싶다. 읽는 동안 매우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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