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해 쟁탈전 - 북극해를 차지할 최종 승자는 누구인가
크리스토프 자이들러 지음, 박미화 옮김 / 더숲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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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에 읽은 책 <잃어버린 도시 Z)에선 퍼시포셋의 발자취를 따라 아마존 지역을 헤메였었는데.... 이번엔 북극으로 발길을 돌렸다. 앉은 자리에서 열대지역, 빙하지역을 순식간에 갈아탈 수 있다니..역시 책을 통한 여행이 좋긴 하다. 여행 에세이를 읽은 직후라 생각없이 여행이란 말로 표현했지만, 두 책 모두, 특히 지금 읽은 <북극해 쟁탈전>은 식은땀이 쏟아지는 섬뜩하고 반갑지 않은 이야기다. 

과거의 북극탐험은 용기 있는 개인들이 명예를 위해 탐사를 주도했다. 피어리, 아문젠 등 북극 탐험으로 유명해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그저 얼어붙은 쓸모없는 땅이라 생각했던 곳이었지만, 냉전시대에 들어오면서 북극은 미국과 소련의 군사 기술 우위를 입증하기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주인없는 장소였다. 문제는 2007년 러시아가 북극의 해저 탐사를 하면서부터 다시 재개된다. 러시아의 북극해 영유권을 획득하려는 속내가 드러남에 따라 각 국가간의 북극을 둘러싼 영유권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를 비난하면서 캐나다, 미국,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나라가 북극 영유권 경쟁을 펼친다. 북극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에 따른 과학적 증명(자국의 육지가 바닷속 대륙붕과 연장되어 있다.)을 하여야 하는데,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하는 기준이 없고, 지리학적, 국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이들의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아보인다. 각국의 북극에 대한 갈등은 새로운 냉전을 예고하고 있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다. 이 책은 북극해 쟁탈전이 지상에서 벌어질 마지막 식민지 쟁탈전이며, 북극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3차대전이 될 수 있음을 표현하며, 매우 극단적으로 북극의 문제를 우려하고 있었다.

 

그럼 최근 각국들이 북극해의 영유권을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각종 광물과, 석유,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추측 때문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린 석유의 고갈 문제에 직면해 있고, 새로운 자원 개발을 위한 발판으로 북극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주요보고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부 과학자들은 석유나 천연가스의 매장량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북극지방의 유전개발이 기술적으로 많은 장애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온 상승으로 인해 예전보다 개발이 용이해졌고, 석유가가 점점 상승할 것이기에 충분히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각국의 북극 쟁탈전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 예상된다. 또한 북극에서 많은 다이아몬드가 채굴되고 있다는 것은 몰랐던 놀라운 사실이다. 또 주목할 만한 것은 해빙 현상으로 북극을 통한 해상 교통로가 열리고, 신항로를 개척하여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항해 구간이 수천킬로미터나 단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극의 변화이다. 북극의 해빙이 얇아지고, 해수 온도가 상승해 결과적으로 해수면이 상승하며, 빙하가 녹은 물이 대서양 심해로 유입되면 염분의 밀도가 낮아져 해류의 순환이 멈출 수도 있다. 해류의 순환이 멈추면 북유럽과 서유럽의 기온이 급격히 하강하고, 예측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결과가 따른다. 또 북극의 얼음이 사라지만 지구의 기온이 더욱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기후의 변화는 북극 생태계의 균형도 깨트릴 것이다. 기후 변화에 대해 과학자들은 두가지 견해를 보인다. 자연적 주기나 북극 진동의 영향이라는 의견과 화석연료의 급증으로 지구의 균형이 깨졌다는 의견이다. 이 책은 이 두가지 견해를 모두 실어 중립적으로 설명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북극을 비롯한 이상기후 현상이 현재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며, 그것에 대한 대책은 시급하다. 설사 그것이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주기적인 현상일지라도 우리는 지금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와 있다. 

 
해빙이 줄어드는 것이 결과적으로 북극 자원을 개발하고 신항로 개척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전혀 반갑지만은 않다. 또한 북극 개발로 인해 온도에 따른 환경적인 영향 이외에 인위적으로 북극 생태계에 위험을 초래한다는 사실은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가장 관심깊게 지켜본 부분도 각국의 치열한 북극해 쟁탈전이 아니라 바로 이런 문제들었다. 하지만 북극해 쟁탈전 문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일까? 지역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중국도 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뛰어든다 한다. 우리가 무관심하고 있는 사이 세계 열강의 흐름은 변화하고 있다. 그저 그 강대국들 제밥그릇 챙기는 분쟁 사이에 낑겨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국가가 될 것인가? 
환경문제과 국제분쟁 모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장기적으로 자국을 위한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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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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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여행이 즐거울 때는 여행을 준비할 때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차 안에 있을 때다. 여행은 여행 그 자체보다 기대하고 기다리는 설레임이 어쩌면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설레임도 좋고, 여행도 좋지만, 이 책을 통해 내게 있어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봤다. 여행이란 것에 어떤 의미를 둔다는 것이 어쩌면 다소 부담스러운 생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 '넌 왜 여행을 가니?'라고 묻는다면 단순히 그냥 좋아서라고 대답하기엔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이 책을 읽게 되면, '내가 하는 것이 과연 여행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을 더듬어 지나간 여행을 떠올려보면, 뭔가 중요한 것들이 듬성듬성 빠진 느낌이 드니 말이다. 

 

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일상에서의 탈출?? 기분전환?? 이국적 정취에 대한 기대?? ...극기훈련?? 돈지랄??

짧은 휴가 일정에 부랴부랴 날라가서 이곳저곳 후루룩 발도장 찍고, 기념으로 사진 팍팍 찍고, 모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무리해서 다리품 팔아가며 돌아다니고, 야간 경치 보겠다고 밤에 잠도 안자고 또 기어나온다. 호텔비 하루 아낀다고 비행기에서 1박하고 그 다음 아침부터 시작되는 여행 일정은 여행이 아니라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개고생(?)이다. 학생 때는 그 먼데까지 고생하며 차타고 가서 밤새 술푼 기억밖에 없다. 그냥 학교 근처 방이나 하나 잡지, 뭐하러 그 좋은 데까지 가서 술을 펐나 모르겠다. 왔다갔다 차비만 아깝게..

 

'개고생'이란 극단적인 표현을 쓰긴 했지만, 난 그 개고생을 즐기는 것 같다. 내게 있어 여행이란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를 그냥 막~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잠을 좀 못자도 체력이 딸려 죽을 것 같아도 열심히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남기기 위해 사진 찍는 것도 즐긴다. 어떤 때는 한곳에 사진기를 장착해 놓고 같은 배경으로 온갖 잡다구리한 포즈를 연출해내기도 한다. 급기야는 점프샷까지 날린다... '저것들 어느나라 사람들이야?'라며 지나가는 외국인이 흉을 볼지도 모르겠지만, 외국나가면 오히려 쪽팔린것도 모르겠더라...(국가 망신이라고 욕하지는 마세요;;) 멋진 외국 남자를 어떻게든 렌즈 속에 들어오게 각도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돌아다니기 위해, 사진 찍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 같다. 결국 여행의 중심에는 나만 있다는 것을 깨닮았다.

 

튀어나온 담벽 벽돌 하나에도 느낌을 떠올려 보고, 지나가는 새소리 하나에도 귀기울여 보고, 작품 속 화가가 보았을 풍경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는 그런 여유와 감상은 내 여행 속엔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이 풍경은, 저 건물은, 저 성당은, 저 유적지는 하면서 여행 카탈로그 속에 나와 있는 사진의 모습을 그저 눈으로 다시한번씩 찍고 지나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지나침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진 한방 남기는 것으로 내 여행의 목적을 이뤄었다 생각했다. 내 여행은 '그저 내가 잠시 그곳에 있었던 것 뿐'이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여행의 기술이다. 여행을 가야하는 이유와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스망스, 보들레르, 호퍼, 플로베르, 훔볼트, 러스킨, 반고흐 등 유명 예술가와 과학자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며, 그들의 여정과 작품 속에서 여행의 의미를 하나씩 짚어간다. 방대한 문헌의 응용과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독특한 생각과 관점의 차이는 역시 알랭드보통다웠다. '알랭드보통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아마 그사람 책을 한권이라도 읽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책이 기존 여행서에선 절대 접하지 못하는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다곤 하지만 완벽한 여행 기술서는 아닐 것이다. 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하지만 난 이 책을 통해 나의 여행을 되돌아 떠올려봤다. 하나씩 하나씩 기억을 되새기며, 난 내 추억의 구멍을 조금씩 메워가고 있었다. 지나간 기억은 흐려지게 마련이고, 어떤 것은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했지만, 새록새록 다시 떠올리는 기억들은 점점 진해져서 내 입가엔 어느 덧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비록 내 여행이 이 책에서 얘기하는 의미와 조금 거리가 있을지라도 내 자신은 내 여행들이 모두 기분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개고생을 했어도, 밤새 술만 펐어도, 같이 간 동료와 싸워서 반나절을 말한번 안섞고 삐져 지냈어도, 식중독으로 아무 것도 못었었어도, 길을 잃어 방황했어도, 외국인에게 더 비싼 값을 부르는 상인과 싸웠어도, 비를 쫄딱맞아 밤새 드라이로 젖은 옷과 운동화를 말렸어도, 물건을 잃어버려 말안통하는 현지 경찰서 직원 앞에서 버벅댔어도, 공항에서 덜덜떨며 밤을 지샜어도, 미친듯이 밥이 그리웠어도.....

 

내게 있어 여행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임을 알았다. 되새기면서 즐거워지는 것....! 

 

비록 여행의 중심에 오직 '나'만 존재할지라도, 그래서 진정으로 느껴야 할 것들을 모두 건성으로 지나쳤다고 해도...내가 그 여행에서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하지만 앞으로의 내 여행은 조금은 다른 것을 보고 느끼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지 내 자신이 거기 존재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내가 존재해 있는 주변의 풍경과 의미를 진정 하나하나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저 눈으로 보기 위한 여행이아니라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에 쫓기듯 미친듯이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한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곳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긴 휴가일 뿐이다..;; 그게 내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이 내게 있어 최대의 불행이라는 것...~

 

리뷰를 쓰려 했는데, 내 여행기억이 우르르 떠올라 정작 책 내용은 거의 쓰지 못했네.. 하여간 '알랭드보통'의 다른 책에서의 기술 방식은 내겐 좀 거리가 있는 듯 느껴졌었는데, 요책만큼은 꽤 친근하게 다가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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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고백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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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에 읽는 일본 소설인지 모르겠다. 한때 일본 소설에 매우 심취했었는데, 특정 작가의 작품에만 너무 몰입해서인지 일본 현대 소설 특유의 비슷한 굴레, 비슷한 성향 때문에 한 작품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느낌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내가 몰두했던 하루키와 슈이치 작품들의 전반적인 감각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일본 소설에 질렸다거나, 하루키나 슈이치의 작품이 싫어졌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 둘은 나의 베스트 작가이다. 하지만 이번엔 현대 소설이 아닌 조금 오래된 고전을 읽고싶어졌다. 요즘 세계고전문학에 관심을 돌리다보니, 눈에 띤 것이 바로 미시마 유키오의 이 작품 <가면의 고백>이다.

 

미시마 유키오...  작품 <금각사>로 유명하고, 자살로 마감한 인생은 우리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도, 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도 없는 내가 아는 것은 고작 이 정도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유약했던 소년 시절의 고뇌, 생각, 그리고 그의 인생의 일부를 느낄 수 있었다. 죽음과 성정체성에 대한 방황으로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렸던 가녀린 소년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 들었던 불편한 나의 감정이 서서히 동정과 측은함으로 바뀌고 그의 유약함이 이젠 감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주인공은 할머니의 과보호 밑에서 온순한 계집아이들과 어울리며 자란다. 다섯살 무렵부터 기묘한 공상을 즐기게 되는데, 육체적으로 활력있는 소년이나 왕자에 대한 동경으로, 그들이 철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에 도취하게 된다. 구이도 레니의 <성세바스티아누스>라는 그림을 보며, 처음으로 ejaculatio(라틴어로 '사정')을 경험하게 되며, 욕망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이것을 최초의 '악습'이라고 표현한다. 중학교 때는 육체적으로 활력있는 연상의 동급생 오미에게 열정을 느끼게 되고, 그의 '악습'은 이후로 여성을 통해선 단 한번도 실현할 수 없게된다. 자신의 불완전한 성정체성에 고민하면서도, 그는 겉으로 철저히 이성애자의 가면을 쓴다. 일부러 동급생의 여동생과 연인 사이가 되어 보기도 하지만, 그가 느끼게 되는 것은 자신의 숨길 수 없는 본성일 뿐이었다.

 

솔직히 난 이 책의 내용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상태에서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의 동성애적 성향, 변태스러운 공상과 '악습'이 매우 불편하게 다가왔다. (솔직히 제목만 보곤 추리물인줄 알았다는;;)  '이 작품 고전 ' BL(Boys Love) 소설이야?' 라며 내심 놀라기도 했다. 물론 BL을 즐겨보긴 하지만, 이렇게 불편한 무게를 담고 있는 경우는 없었다.

이 책은 미시마 유키오의 자화상, 자전적인 작품이라 한다. 내가 비록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동성애자였다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소년시절 그의 성정체성에 대한 방황은 가면 속의 그의 본모습이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삶이 가면이었던 것일까?

 

미시마는 '고백의 본질은 '고백은 불가능하다'는 데 있으며, 진정한 고백을 위해서는 나 자신과 혼연일체가 된, 살속 깊숙이 파고는 '가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였다. 소설 속 자전적 고백과 그의 인생 중 어떤게 진짜 가면이었는지, 이 작품과 더불어 미시마 유키오'란 남자와 그의 인생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솔직히 이 책은 내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시마의 감성적인 문체와 내면에서 표출된 지독히 잔혹하면서도 섬세한 생각들은 이 소설과 그의 고백 내용이 비록 정상적이지 않은 불편한 것들일지라도 연민이 느껴지게 한다. 이 작품 전체가 어렴풋이 아름답다'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미시마가 이책을 머리에 인용한 도스코옙스키의 글 '이성의 눈에는 오욕으로 보이는 것이 감정의 눈에는 훌륭한 아름다움으로 보이니 말이야, 애초에 악행(소돔) 속에 아름다움이 있는 건가?' 라는 문구가 이책을 다 읽은 후에 비로소 내 맘속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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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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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라틴 소설 몇 권을 계속해서 읽는 중이다. 푸엔테스, 스카르메타, 마르케스....작가마다 개성이 있고, 작품마다 각각의 특징이 모두 다르긴 하지만, 라틴 문학 특유의 블랙 유머, 풍자, 환상, 그리고 관능...이런 몇 가지 것들은 라틴 문학 속으로 나를 자꾸 빨아들인다. 그 환상과 유머라는 것이 얼핏 흥미 위주의 가벼운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몇 가지 소설들은 모두 가볍지 않았다. 웃음 뒤에 남는 씁쓸함, 무거운 여운 그리고 거장들이 남긴 특유의 반짝거리는 문구... 이 모든 것들은 나로 하여금 문학적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판텔레온과 특별봉사대> 제목부터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묻어난다. 난 처음에 판텔레온이 사람 이름이란 것도, 특별봉사대가 뭔지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이런 내용이었구나' 라며 더욱 의욕적으로(?) 책속에 몰입했고, 더군다나 이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 더 관심이 갔다. '특별봉사대'는 쉽게 표현하면 '매춘사절단??' 정도 되겠다.

 

페루 국경 아마존 밀림지역에 주둔한 병사들이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 민가의 강간 폭력 사건이 난무하게 되자, 페루 정부는 군인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특별봉사대'를 창설하게 된다. 말하자면 비밀리에 창녀를 고용하여 병사들의 심기를 달래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임무의 총책임자로 판탈레온 대위가 임명된다. 뼛속부터 모범적인 군인이고, 착한 아들, 좋은 남편이었던 판탈레온... 그는 이 '특별봉사대'의 임무를 깨름직하게 생각했지만, 그의 뛰어난 치밀함과 통솔력으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가족에게 조차 임무의 진실을 밝힐 수 없었기에, 임무로 인해 가정의 불화가 깨지는 판탈레온이 난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다.

 

특별봉사대는 더욱 활성화된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 크게 활성화되면 문제가 생기는 법...군부가 조직한 조직이란 걸 모르는 민간인들은 판탈레온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고, 판탈레온을 돈으로 매수하려다 실패한 신지라는 라디오방송에서까지 그를 모욕하기에 이른다. 포주라 욕하며 그를 비난하는 민간인들은 자기네들도 봉사를 받겠다고 난리치고, 군부의 장교들은 몰래 봉사를 받기까지 이른다. 한마디로 구석구석 썩어가고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주민들로부터 봉사대원 하나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때마춰 맞물린 신흥종교 문제까지 합세하면서 판탈레온의 비밀 '특별봉사대'는 만천하에 공개되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군부는 그 모든 책임을 판탈레온에게 떠맡겨 버린다. 

 

한편의 난리굿...그 뒤에 남는 씁쓸한 웃음...

판탈레온이란 한 인물에 대해 깊은 연민이 남았다. 그는 자기 맡은 소임을 다하였을 뿐이다.

성문제에, 군부비리, 시흥종교... 한마디로 사회, 정치, 종교가 모두 제각각 썩고 부패해 제 구실을 못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주먹구구 식으로 대충 떼우고, 남에게 책임전가하는 행태가 우리 사회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나는 판탈레온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똑같이 잠에서 깨어나는 판탈레온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이 소설의 모든 내용이 판탈레온의 한낱 꿈이었으면 싶다. 특별봉사대도, 군부도, 신흥종교도, 성문제도... 그리고 우리사회의 부패한 모든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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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2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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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을 읽은지 벌써 3달이 훌쩍 넘어갔다. 1권을 읽기 시작할 무렵엔 책 세권을 한방에 끝내리라~ 마음을 먹었었는데...역시 나의 책 읽기 습관은 마음먹은대로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책 읽다보면 저책이 눈에 띄고, 저책 읽다보면 또 다른 책이 눈에 띄고, 이책 저책 마구 쑤시고 다니다보니, 온갖 잡학(?)이 머릿 속에 한꺼번에 소용돌이를 쳐, 정작 내 것으로 흡수된 책은 몇권이나 될까 한심하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책 1권의 내용을 거의 기억하고 있다. 1권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이야긴 아니다. 진중권님의 미학 시리즈가 미학의 기초를 다루고 있다곤 하지만, 철학 쪽에 거의 문외한인 내가 단번에 다가서기엔 애매한 점이 많았으니..... 요 2권은 1권보다 한층 더 애매했다. 애매하단 표현이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렵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해하기가 어렵단 이야기다. 결국 내겐 쉽지 않았더란 말인데...어렵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쉽지도 않고... 애매하단 표현밖에 할 수 없다. 결국 이것도 말장난...이 책속의 모든 내용이 말장난 같았다.! 이것이 내가 철학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각설하고, 그럼 2권의 내용을 조금 소개해 본다. 정리가 아니라 소개라는 점을 염두해 두길... 정리는 무리무리.. 
1권에서 에셔가 주제였다면, 2권은 마그리트를 중심으로 미학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주로 고전 미술 작품에 익숙해진 난 현대 미술, 특히 추상 작품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손으로 그린 건지 발로 그린 건지 알 수 없는 표현들, 도대체 뭘 그린 것인지 낙서 같은 그림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변기통이나 침대가 그대로 예술 작품으로서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모든 편견, 생각들을 넘어 실제와 허구, 내면과 직관, 말과 사물, 내 자신의 본질까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예술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다시 원초적으로 생각해보게 됐다. 또한, 현대 미술을 보고 '저게 뭘 그린거냐?'는 질문과 생각은 실례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입문서를 2권까지 읽은 지금솔직히 1권 읽을 때보다 미학과 예술이라는 것이 점점 더 애매모호해졌다. 많은 철학가들의 논쟁도 끝이 없어보인다. 어차피 예술이란 것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예술이 무엇이던 간에 인간의 감정에 어떤 쾌감을 주는 것은 분명한 듯 싶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예술 작품을 보면 어떤 감정들이 생겨나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 열락을 얻을지니'라고 감상을 남긴 이웃님의 글이 생각난다. 난 지금 그 열락의 기분으로 뿌듯하다. '미학' ,그 골치 아픈 학문을 다 이해하려 애쓰지 말자. 그냥 즐기다보면 어느 덧 깨닫게 되는게 있을지니...

3권은 언제 또 만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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