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고백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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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에 읽는 일본 소설인지 모르겠다. 한때 일본 소설에 매우 심취했었는데, 특정 작가의 작품에만 너무 몰입해서인지 일본 현대 소설 특유의 비슷한 굴레, 비슷한 성향 때문에 한 작품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느낌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내가 몰두했던 하루키와 슈이치 작품들의 전반적인 감각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일본 소설에 질렸다거나, 하루키나 슈이치의 작품이 싫어졌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 둘은 나의 베스트 작가이다. 하지만 이번엔 현대 소설이 아닌 조금 오래된 고전을 읽고싶어졌다. 요즘 세계고전문학에 관심을 돌리다보니, 눈에 띤 것이 바로 미시마 유키오의 이 작품 <가면의 고백>이다.

 

미시마 유키오...  작품 <금각사>로 유명하고, 자살로 마감한 인생은 우리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도, 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도 없는 내가 아는 것은 고작 이 정도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유약했던 소년 시절의 고뇌, 생각, 그리고 그의 인생의 일부를 느낄 수 있었다. 죽음과 성정체성에 대한 방황으로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렸던 가녀린 소년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 들었던 불편한 나의 감정이 서서히 동정과 측은함으로 바뀌고 그의 유약함이 이젠 감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주인공은 할머니의 과보호 밑에서 온순한 계집아이들과 어울리며 자란다. 다섯살 무렵부터 기묘한 공상을 즐기게 되는데, 육체적으로 활력있는 소년이나 왕자에 대한 동경으로, 그들이 철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에 도취하게 된다. 구이도 레니의 <성세바스티아누스>라는 그림을 보며, 처음으로 ejaculatio(라틴어로 '사정')을 경험하게 되며, 욕망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이것을 최초의 '악습'이라고 표현한다. 중학교 때는 육체적으로 활력있는 연상의 동급생 오미에게 열정을 느끼게 되고, 그의 '악습'은 이후로 여성을 통해선 단 한번도 실현할 수 없게된다. 자신의 불완전한 성정체성에 고민하면서도, 그는 겉으로 철저히 이성애자의 가면을 쓴다. 일부러 동급생의 여동생과 연인 사이가 되어 보기도 하지만, 그가 느끼게 되는 것은 자신의 숨길 수 없는 본성일 뿐이었다.

 

솔직히 난 이 책의 내용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상태에서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의 동성애적 성향, 변태스러운 공상과 '악습'이 매우 불편하게 다가왔다. (솔직히 제목만 보곤 추리물인줄 알았다는;;)  '이 작품 고전 ' BL(Boys Love) 소설이야?' 라며 내심 놀라기도 했다. 물론 BL을 즐겨보긴 하지만, 이렇게 불편한 무게를 담고 있는 경우는 없었다.

이 책은 미시마 유키오의 자화상, 자전적인 작품이라 한다. 내가 비록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동성애자였다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소년시절 그의 성정체성에 대한 방황은 가면 속의 그의 본모습이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삶이 가면이었던 것일까?

 

미시마는 '고백의 본질은 '고백은 불가능하다'는 데 있으며, 진정한 고백을 위해서는 나 자신과 혼연일체가 된, 살속 깊숙이 파고는 '가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였다. 소설 속 자전적 고백과 그의 인생 중 어떤게 진짜 가면이었는지, 이 작품과 더불어 미시마 유키오'란 남자와 그의 인생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솔직히 이 책은 내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시마의 감성적인 문체와 내면에서 표출된 지독히 잔혹하면서도 섬세한 생각들은 이 소설과 그의 고백 내용이 비록 정상적이지 않은 불편한 것들일지라도 연민이 느껴지게 한다. 이 작품 전체가 어렴풋이 아름답다'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미시마가 이책을 머리에 인용한 도스코옙스키의 글 '이성의 눈에는 오욕으로 보이는 것이 감정의 눈에는 훌륭한 아름다움으로 보이니 말이야, 애초에 악행(소돔) 속에 아름다움이 있는 건가?' 라는 문구가 이책을 다 읽은 후에 비로소 내 맘속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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