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죽은 세월이, 해묵은 옷을 입고, 하늘의 발코니에서 굽어본다.
_보들레르, 「악의 꽃 - P293

그 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이 국보인 고달사지 승탑이다. 이 승탑은 고려 초기 팔각원당형 승탑 가운데 가장 뛰어난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이나 연곡사 동승탑·북승탑이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사랑받는다면, 고달사지 승탑은 장중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신라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고려 특유의 힘찬 조형미를 보여 준다. - P78

그렇다. 영원한 것은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도, 끝내 사라지지않는 것도 없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사랑과희망, 믿음을 전해 줄 것만 같았던 절도 결국 사라졌고 그 절을 세우고지키던 사람들 또한 모두 떠났다. 고달사의 아름다운 석등은 고향으로돌아갈 기약조차 없이 서울 하늘 아래 서서 옛 절터를 묵묵히 그리워하고 있으니, 역사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제시하는 것인가. - P81

불국사 삼층석탑이 중앙 귀족 사회의 권위와 이상을 담아낸 장중한 석탑이라면,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지방 호족의 새로운 문화적 역량을 보여 주는 탑이라 할 수 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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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내려놓고 폐사지를 찾아가면 비가 내리기도 하고, 하염없이 눈이퍼붓기도 했다. 때로는 바람이 몹시 부는 폐사지에 망연히 앉아 지나간 옛날을 회상했고, 그러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무덤의 노래‘ 한 구절을 떠올리며 돌아올 때가 많았다.

나에게는 상처 입히지 못하는 것, 묻어 버리지 못하는 것, 바위라도 뚫고 나오는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의지다. 이 의지는 묵묵히 변함없이 세월을 뚫고 걸어간다. - P7

모든 것은 깊은 과거로 사라지고 곧 망각으로 덮인다. 영광의 광채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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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라는 문장. 여기서 ‘그녀‘는 누구를, 무엇을 지시하는 것일까? 이 현재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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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첫날밤.
그러나 애도의 첫날밤인가? - P13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이다(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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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내가 사랑한 작가 중 누가 정확히 내가 경험한방식으로 심연을 불러냈던가? 심연은 공유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심연에 홀로 머문다. - P193

할 만한 가치와 할 능력사이의 그 간극이 젊은이에게는 열망이 머무는 곳이고 노인에게는 쇠퇴가 도사리는 곳이다.
. - P199

그는 그리스 비극에 니오는 어머니들처럼 곡하지도 않고, 콘스턴스처럼 머리칼을 쥐어뜯지도 않으며, 그곳에 있지도 않은 벽을 쳐대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목소리가 일단 높아지는 순간 생각하는 정신이 아니라 생각할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원초적 고통의 목소리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제임스처럼 나도 생각하며 살아가는 편이 좋다. - P206

진정한 연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 P212

진부함, 희망적 자기기만, 다양한 종류의 자기중심주의에 물들어 싸구려로 전락한 ‘애도‘. 이것이 내가 아이들을 생각할 때 ‘애도‘나 ‘애도하는‘이라는 말을 절대 쓰지않는 또 다른 이유다. ‘애도‘는 내게 오는 이메일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 P218

나는 그 순간 타인이 나를 밀어 넣은 그 깊은 심연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 P223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심연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이 최악이 아님을 안다. 그 심연 너머에는 또 다른 심연이 있고, 더 의미 있는 심연에 머물려면 생각에 의지해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의 감정은 상하게할 수 있어도 생각은 그럴 수 없으니까. 우리가 정신의 독립을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의도적으로든 의도치 않게든 타인에게상처를 주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그들이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할 뿐 아니라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인정일 뿐 이해도, 용서도 아니다. 나는 그 어느 것도 해줄 생각이 없다. - P225

학대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커서 반골이 되거나 탈출의 달인이 된다. 나는 공공연한 반골이 되진 않았지만, 평생에 걸쳐 탈출의 기술을 갈고닦았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건 오직 학대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만 아는 욕구지. 어느 한 가지를 자기 것으로 지켜내아무도 절대 빼앗지 못하게 하려는 욕구. 당신도 그게 있고 나도 그게 있어. 그런데 우리 아이들한텐 그게 없었어.
만약 있었더라면 자살을 택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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