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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1 - 빅뱅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래리 고닉 글.그림, 이희재 옮김 / 궁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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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미있다.

2. 진짜 '세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만화책이다. 재미있다. 작가의 유머가 번뜩인다.

 

서구 중심의 역사가 아니다.

아프리카의 역사도 담고 있다.

아프리카의 금이 이집트로 가고,

이집트의 금이 이탈리아로 넘어가면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었다.

 

이 책들(총 다섯 권)을 읽으면서

지금의 세계화 이전에

이미 세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변화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내게 좋은 역사책 추천을 요청한다면,

나는 이 책을 적극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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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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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누아 아체베.

격변의 시대 속에서 아프리카의 전통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잘 묘사하는 작가.

 

기독교의 전파를 수용해야 하는 전통사회는

늘 변화에 직면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김동리라는 작가가

'무녀도'에서

전통사회와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의 충돌을

다룬바 있다.

 

아체베 또한 아프리카 전통사회, 그리고 그 사회의 가치관이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의 수용과 함께

어떻게 붕괴, 변화되어 가는지 묘사한다.

 

재미있는 것은,

기독교의 전파가

전통문화를 존중하는 방식으로도

전통문화를 부정하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비록 간략하게지만.)

 

선교를 고민하는 이들은

기독교와 전통사회의 관계를

이 책을 읽으면서 고민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근대의 아프리카를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 고마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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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ime That Remains: A Commentary on the Letter to the Romans (Paperback)
Agamben, Giorgio / Stanford Univ Pr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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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은 신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다.

이탈리아 사람이긴 한데,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기독교인이라면 어느 교파인지 전혀 모르겠다.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글을 아직 못 봤다.

 

그런 그가 로마서를 읽고 책을 썼다.

아니 '로마서'라기보다, 사도 바울의 글을 읽고,

로마서 1장 1절에 있는 10개의 단어를 분석하는 책을 섰다.

헬라어 10개 단어로 여섯번의 강의를 하고,

책 한 권을 낼 수 있는 실력.

대단하다. 부럽다.

 

헬라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사도 바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지 마시기를...

아감벤을 알기 위해서라면

다른 책을 읽으시기를...

 

아감벤은 로마서를 메시아적으로 읽겠다고 독해의 방향을 설정했는데,

현대 '신학계'에서, 최소 1960년대 이후의 신학계에서

이미 종말론적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수용되고 있기 때문에,

별로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몰트만, 판넨베르크는 지금도 살아있다.)

물론 '교회'에서 종말론적 독해가 메인 스트림은 아니지만.

 

새로운 종말론적 질서를 가지고 오는 메시아가

예수님이라고 교회는 고백한다.

사도 바울 또한 2000년 전에 그렇게 고백했다.

 

그에게 지금의 삶은

'이미' 나타난 종말론적 질서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종말론적 질서 사이에서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리고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은

바울 이후 모든 교회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의 장이다.

 

그 메시아를 수용하는 자는

바울처럼 메시아의 종이 되고

'마치 ~이 아닌 것처럼'(as not) 살아가고

'남겨진 시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메시아를 만나게 된 사람은 그렇다.

 

그런데 아감벤에게 메시아는 누구일까?

철학자 아감벤이 예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아감벤의 메시아는 누구일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메시아의 종이라고 1장 1절에서 밝혔는데,

아감벤도 사도 바울처럼

자기정체성을 어떠한 메시아의 종이라고 규정하고 싶었을까?

 

아무튼 힘들게 읽었는데, 썩 그리 와닿지는 않는 그런 책.

 

*한국어 번역본 <남겨진 시간>으로 편하게 읽고 싶었는데,

 아는 사람은 알지만, 한국어가 더 어려워서 눈물을 머금고 영어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잘 번역된 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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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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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언제쯤 볼까 고민하던 중,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단숨에 다 읽었다.

읽고 후회했다.

왜 이 책을 구입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렸을까...

이 책에 스며든 내 감동을 도서관에 반납하기 싫다.

분실신고 하고, 이 책 내가 가지고, 새 책으로 도서관에 반납할까...

 

육체에 스며드는 시간의 무게가 아무리 가중되더라도

죽을 때까지 욕망은 시간의 무게를 이기고 솟아 오른다.

'이적요'라는 시인에게도

전혀 예상치 않은 계기로 욕망이 솟았다.

욕망의 통제는 불가능하다.

최대한 감추고자 노력할 뿐.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전원교향곡'에서도

이적요의 이런 욕망이 있었다.

어떤 소녀를 돌봐준 목사님 안에서

그 소녀에 대한 욕망이 눈을 떠 버렸다.

 

이적요에게도, 그 목사님에게도

욕망의 각성은 너무 당혹스러운, 통제불가능한,

주변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자신 또한 파멸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어가 안 되는 것이 욕망이고,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죽을 때까지 내게 이런 욕망이 각성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이런 자기 파멸적 욕망이 내 안에서 죽기를 바란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내 안에 실현되기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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