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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학사 (양장) - 원효부터 장일순까지 한국 지성사의 거장들을 만나다
전호근 지음 / 메멘토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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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서양철학을 공부하거나, 공자 노자 같은 중국철학을 공부한다. 물론 그 두 흐름이 신과 세계, 그리고 인간, 그리고 그 셋의 관계를 이해하는 가장 큰 흐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우리 선조들은 열심히 공부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또 꽤 잘 공부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열심히, 잘 공부한 우리 선조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말했는지에 관해 우리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우리 선조들이 고민한 내용을 공부하는 것보다, 서양이나 중국의 철학을 자기가 공부하는 것이 더 권위있다고, 폼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런 전이해 없이 공자, 플라톤과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은 분명하다. 나보다 앞서 그들을 만난 사람들이 내가 사용하는 언어, 내가 속해 있는 문화 속으로 공자와 플라톤을 수용했고, 나는 그들의 수용 위에서 다시 그들을 만날 뿐이다. 그렇다면 내 선배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만났는지 아는 것은, 또한 나의 출발점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이 작업을 우리는 너무 하찮게 여겨왔다.

 

이 책은 원효로부터 시작해서 무위당 장일순에 이르는, 이 한반도 땅에서 활동한 사상가들을 다룬다. 불교사상(교학, 선학), 유교(성리학, 양명학), 서양사상(마르크스주의, 철학, 기독교)이라는 외래의 것을 가지고 그들이 이 땅의 문제와 어떻게 씨름해 왔는지를 이 책은 보여준다. 외래의 것을 이 땅에 가지고 오면서, 선조들은 두 가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얼마나 더 순수한 정통을 보존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외래의 것과 우리의 것을 함께 통합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 두 개의 고민은 주류가 아닌 변방에서 사유하는 자의 변치 않는 고민인 것 같다.

 

자료가 너무 부족한 철학자는 생애 위주로 기술했고, 자료가 꽤 있는 철학자는 사상 위주로 기술했다. 다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현대 철학자들, 특히 박종홍, 유영모, 함석헌, 장일순을 다룬 부분이 참 좋았다. 동양철학 전공자의 눈에 그들의 책이 어떻게 독해되는지 살펴보면서 배운 것이 많다. 의미있는 독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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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전환점 - 터닝 포인트로 재구성한 서양철학의 역사
최재식 외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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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좋류의 철학사 책을 가지고 있는데, 또 이 책을 샀다.

그 이유는 이 책만의 고유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한 저자가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철학사를 정리한다.

각 시대별로 중요한 철학자들을 뽑아서 그들의 철학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철학사가 기술된다.

독자는 그것을 읽고 그 철학자를 '대략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나중에 자신이 관심을 가지게 된 철학자를 더 깊이 공부하게 된다.

보통의 철학사책이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의 많은 저자들은

각각 중요한 철학자들이 왜 중요한지 독자들에게 알려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다시 말해서 이 책에서 헤겔에 관한 부분을 읽는다고 해도

헤겔의 대략적인 철학을 파악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책의 가장 큰 장점은 헤겔 철학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준다는 점이다.

칸트, 피히테, 셸링의 입론에서 헤겔은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철학을 어떻게 전개했는가,

그래서 헤겔은 왜 중요한 철학자인가, 이런 것들을 알려준다.

 

이런 식으로 각각의 중요한 철학자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데,

특히 현대철학 부분에서는 정말 좋다.

카시러가 왜 중요한지, 자유에 관한 논쟁이 왜 중요한지,

푸코의 계보학적 방법이 왜 중요한지 등이 담겨 있다.

 

사실 그 사람의 철학 내용을 아는 것보다

그 철학자가 왜 위대한 철학자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그것을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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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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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성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도전했다. 어, 생각보다 꽤 잘 읽힌다. 나름 재미도 있다. 플라톤이 잘 쓴 건지,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을 잘 하신 건지, 읽는 내가 성장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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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지혜 동문선 현대신서 14
알렝 핑켈크로트 지음, 권유현 옮김 / 동문선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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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알랭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라는 책을 읽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정말 좋은 입문서다. 이런 좋은 입문서를 왜 진작에 알지 못했을까?
대학원에서 레비나스와 바흐친 세미나를 할 때 레비나스를 좀처럼 이해, 공감할 수 없었다. 위협적인 타자 앞에서 어떻게 윤리를 우선시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가끔씩 <Totality and Infinity>를 한 쪽씩 읽어 보면, 공감이 되는 부분이 생겼다. 나이를 먹다보니 이해의 폭이 넓어지긴 하더라.

우리가 잘 알다시피 레비나스의 새로움은 정치의 세기에 도덕을 말한 점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도덕의 주소를 '이동'시킨 점에 있다. 선을 종국 목표(유토피아의 천국에, 역사가 완결한 빛나는 미래)에 위치시킨 것이 아니라, 시작(타인과의 만남이라고 하는 태고적의 경험)에 위치시킨 점에 있다. 대타적 존재의 원래 의미는 투쟁이 아닌 윤리이다. 타인과의 대면은 우리에게 책임감을 느끼에 할 뿐 투쟁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나와 대결하기에 앞서서, 얼굴은 나를 부른다. 마치 자기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라도 되는 듯이. "윤리적 관계는 여러가지 자유의 출현에 선행한다. 또 헤겔이 말하는 역사의 동인이 되는 전쟁에 선행한다."(레비나스) 이 말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세상이 모두 평화로웠다는 말이 아니다. 사실 "윤리적 폭력"이 의식의 충돌이나 적대관계보다 선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선은 나를 사로잡고, 내 동의 없이 내게 부과된다. 내가 선을 선택하기 이전에, 그것이 나를 선택하였다. 나는 그것에 복종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도망갈 수는 없다. 악이라고 해서 부끄러움을 지울 수 없고, 타자의 얼굴에 대해서 느끼는 구속을 단절하거나 거절할 수도 없다. "악은 바로 죄이다. 본의 아니게 책임을 회피한 것에 대해서 져야 할 책임이다. 악은 선의 옆이나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하지 않고, 다음 자리에, 선보다 한결 낮은 곳에 위치한다."(레비나스)<사랑의 지혜, 31쪽)

아무도 읽지 않을 긴 인용문을 옮겼다. 나는 너무 좋다. 레비나스를 너무 잘 정리한 문단이다. 타자의 얼굴 앞에서 나는 책임을 지라는 윤리적 명령("윤리적 폭력")을 받는다. 그것이 시작이다. 타자가 어떤 나쁜 놈일지라도 나는 윤리적 명령 앞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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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성 인류학 -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 카이에 소바주 5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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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  다섯 권을 다 봤다.
도너츠와 머그컵이 동형이라고 말하는 '위상수학'처럼, 사고의 동형성을 밝혀내는 그의 방법이 재미있다. 인간의 무의식(그는 대칭성의 사고라고 부른다.)이 아무런 논리 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구분해보면 이렇다.
대칭성의 사고 - 비대칭성의 사고
야생의 사고 - 문명의 사고
신화적 사고 - 철학적 사고
감각의 논리 - 형식 논리
자연 - 국가
'다'(전체)의 원리 - '일'(개별자 분리)의 원리
... .
.
.

형식논리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이고 짐승이 아니다. A는 A이지, ~A일 수 없다. A와 ~A의 경계는 명확하다. 그런데 인간(A)은 짐승(~A)을 먹는다. 그 짐승은 인간(의 몸)이 된다(A=~A). 그리고 인간도 죽으면 짐승이 속해 있는 자연으로 돌아간다. A와 ~A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앞의 것이 비대칭성의 사고이고, 뒤의 것이 신화적 사고, 대칭성의 사고이다.
신화에서는 먹고 죽는 시간의 흐름마저도 동시적인 것으로 압축시켜버리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A=~A가 더 명확히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그런 현상이 인간의 꿈에서 나타나고, 무의식이라 프로이트가 불렀던 영역에서 나타난다. 무의식이라 불리는 그 영역에 A=~A의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그런 대칭성의 사고가 비대칭성의 사고보다 더 원초적인데, 비대칭성의 사고가 대칭성의 사고를 억압하는 그 지점에서 유일신론이 발생했고, 국가가 발생했고, 자본주의가 발생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오늘날의 사회가 '비대칭성의 사고'로 움직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그런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대칭성의 사고'를 회복해야 하고 두 가지 사고들을 잘 접목시켜야 새로운 인류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불교'(종교가 아니라, 사상으로서의 불교)가 바로 그런 사고의 예라고 말한다. 삶과 죽음, 나와 그,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화엄사상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불교가 대칭성의 사고와 비대칭성의 사고의 결합인지 아직 이해가 안 된다.

신이치의 책들을 읽으며 얻었던 유익.
1. 요즘 한국사회의 지성인들은 불교와 들뢰즈를 많이 공부하는 것 같다. 그들이 불교와 들뢰즈를 공부하면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조금 이해가 된다. 엄격한 경계선을 긋고 넘어가기를 금하는 형식논리, 금기의 논리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단순히 그것은 자본주의 극복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영역에 숨겨진 또다른 논리를 발견해 내고자 하는 인류사적 문제였다.

2.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며, 함석헌 선생님의 '들사람얼'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중국 역사 국가(비대칭적 사고의 산물)의 형성기에 국가를 거부하고 산 속에 들어가 자신의 삶을 살았던 들사람(대칭적 사고). 국가(21세기 현재는 자본)가 온 땅을 점령해서 더이상의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시대에, 틈새를 찾거나 만들어내어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들사람을 가르쳤던 함 선생님의 가르침이 이런 것이었구나 라고 이해가 좀 되었다. 단순히 민주화만 외친 분이 아니라, 진짜로 시대를 깊이 읽어내신 분이었다.

신이치에 대한 평가
그는 자연 상태(수렵, 유목)의 인간 집단을 이상화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칭성의 사고를 하는 인간은 공동체적 인간이다. 단지 권력이 국가처럼 한 개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고 전체적인 조화를 꾀하는 규율을 갖춘 공동체일 뿐이다. 완전 외따로 떨어진 개별자로서의 인간이 아니다. 그런 공동체와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비교하고 있다.
이와 달리 자연 상태를 무법천지(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로 규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의 페르소나>라는 책을 쓴 케밀 파야라는 사람은 그렇게 보는 사람 중 하나이다. 문화는 그런 무법천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다. 문화의 틈새 속에서 폭력, 불법, 음란 등은 끊임없이 솟아난다.
오늘날의 사회를 문제적 사회로 볼 것인가, 아니면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 정도는 되는 사회로 볼 것인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일까, 부정적인 것일까, 양면성을 다 갖춘 것일까?

*제 페북에 올린 글을 다시 여기에 올렸습니다. 제 글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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