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전환점 - 터닝 포인트로 재구성한 서양철학의 역사
최재식 외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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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교과서가 아니라, 관심있는 부분을 찾아서 읽고 참고하면 되는 책이다. 현대철학에 관한 부분은 참 좋다. 한 주제에 관해서 오늘날 어떤 논의들이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다. 그 정도면 책 값은 충분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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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 영화관 옆 철학카페 타르코프스키 편
김용규 지음 / 이론과실천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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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려서 정신차리기 힘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김용규가 해설을 붙였다. 영화를 영화로 이해하는 비평이 아니라, 영화를 철학의 렌즈로 바라보는 해설이다. 타르코프스키가 정말 이런 의미로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용규의 해설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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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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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성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도전했다. 어, 생각보다 꽤 잘 읽힌다. 나름 재미도 있다. 플라톤이 잘 쓴 건지,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을 잘 하신 건지, 읽는 내가 성장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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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성화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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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조직신학, 교의학에서는 구원의 서정(구원의 순서, ordo salutis, order of salvation)을 말한다. 신학자마다, 교단마다 여러 순서를 제시하지만, 일반적으로 칭의(justification)라는 단회적 사건으로 시작해서 성화(sanctification)라는 점전적 과정을 거친 후... 영화(glorification)라는 완성에 이르는 것으로 제시한다. 칭의는 단회적 사건, 성화는 점진적 사건이다. 그런데 칭의라는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후 성화에 관해서 일반적으로 간과하는 '신앙의 태도'를 신자들이 보여준다. 이런 신앙의 태도는 기존의 '칭의' 이해 때문이라고 저자는 문제제기했고, 성경에서 칭의(의, 디카이오쉬네), 성화(거룩해짐)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분석했다.

본론의 내용은 다 빼고, 결론만 말하자. 바울은 구원을 믿음으로 받는 현재적 구원(구원받았다)과 앞으로 완성될 미래적 구원(구원받을 것이다), 두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말한다. 이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칭의, 성화라는 은유를 사용하는데, 전자는 율법을 어김(죄)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음(구원)을 의미하고, 후자는 오염된 상태(죄)에서 깨끗해 짐(구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칭의와 성화라는 은유들 각각에는 기본적으로 현재적, 미래적 두 차원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므로 '성도의 견인'과 '탈락의 가능성'이라는, 성경에 명백하게 나오는 논리적 긴장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루터 이후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칭의(디카이오쉬네)를 법정적 의미(의롭다고 선언함을 받는 사건)로 이해했는데, 새관점학파는 관계적 의미(언약관계에서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는 사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양쪽 모두가 다 성경에 나오는 이해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를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눈길이 확 가는 주장을 한다.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이다."(285) 예수님의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과 바울이 선포한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것을 단절, 왜곡의 관계로 이해한다. 김세윤 교수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바울의 칭의(디카이오쉬네)는 개인적 차원 뿐만 아니라, 통치의 차원,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차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의 복음과 바울의 복음의 연결선을 긋고 있다.

나는 칭의(의, 디카이오쉬네)를 국가통치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그렇게 정의(디카이오쉬네)에 관한 논의를 전개했고 플라톤의 영향력이 바울 당시 지중해 세계에 꽤 있었다고 한다면, 디카이오쉬네는 국가정체에 관한 대단히 폭넓은 개념(통치의 목적, 통치자와 피치자의 자격, 관계 등)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다. 머릿 속에서 혼란스럽게 난무하는 이미지들은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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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 -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 임철규 저작집 2
임철규 지음 / 한길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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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규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

각 작품의 내용 요약이 너무 잘 되어 있다.

물론 자신이 비평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관점으로 하는 요약이지만,

그 요약이 너무 재미있어서 원작을 안 읽어도 스토리가 이해된다.

그리고 더 훌륭한 점은

교수님의 글을 읽고 나면 원작이 더욱 보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교수님이 보물을 캐낸 그 작품에서

나도 보물을 캐내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 오른다.

참 대단하신 분이다.

 

이 책은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다룬 책인데,

그 특징은 비극을 '애도의 노래'로 다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비극이 아픔, 슬픔을 노래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운명에 의한 아픔, 사회의 모순에 의한 아픔, 가부장적 사회에 의한 아픔 등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아픔을 작가가 아픔을 느끼고, 그 아픔을 형상화할 때

그 아픔은 모두에게 각인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픔을 형상화하는 비극은 모두에게 인간이라는 존재를 문제로 제시한다.

 

인간이 인간인 한, 고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고난, 고통, 죽음이 없는 것은 신일 뿐이다.

 

책의 마지막에 이런 비슷한 문장을 교수님은 쓰셨다.

고난 당하고, 아파하는 인간은 가여운 존재이다.

하지만 고통을 형상화함으로써

고통을 초월하고 불멸을 추구하는 인간은 참으로 위대한 존재이다.

 

교수님의 글에는 항상

고통에 아파하고

구원을 추구하고

한계에 절망하는 눈물이 담겨있다.

 

교수님의 모든 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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