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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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의 방향부터 연예계 이슈까지 연일 가짜뉴스가 우리의 시선을 도배하고 있다. 제멋대로 해석하고, 잘못된 프레임을 씌우고, 희박한 근거에 기대 사실을 날조하는 가짜뉴스들. 예전처럼 언론이 통제되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얻을 방법은 훨씬 쉽고 다양해졌는데 우리는 더욱 진실에 목말라간다. 정말 요즘처럼 '진실'이라는 말이 요원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철학자 오사 빅포르스가 쓴 <진실의 조건>은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진실이 힘을 잃어가는 '포스트 트루스'- 탈진실의 시대에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를 다시 소환시키는 책이다. 그녀는 트럼프와 그 참모들이 거짓말 늘어놓고 그것을 '대안적 진실'이라 말하는 뻔뻔한 모습에 분노하며 이 책을 통해 아주 지적이고 우아하게 그들을 비판한다. 그냥 그들에게는 '지식'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저자는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믿음을 가져야 하고, 둘째 그 믿음이 진실이어야 하고, 셋째 이를 뒷받침할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믿음의 기반을 좋은 근거나 증거에 두지 않'는 '증거 저항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매우 자주 진실에 다가서지 못'한다. 증거 저항적 태도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이나 믿고 싶은대로 믿는 의도적 합리화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자신이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주제와 관련해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뼈 때리는 말이다. 특히 저자의 지적처럼 인터넷 등장 이후 우리는 더욱 잘못된 믿음에 빠져들었다. 요즘 같은 고도화된 AI 알고리즘은 우리를 더욱 보고 싶은 것들만 보게 하고, 다른 의견에는 눈과 귀를 닫아버리다보니 양극화와 분열은 더욱 심해지고 고착되어 간다. 게다가 긴 글을 읽어내지 못하는 새로운 문(해력)맹들은 사실의 맥락을 읽지 못하니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영향력 있는 누군가의 프레임에 쉽게 갇힌다. 나 자신도 이런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 역시 내가 믿는 언론의 보도 방향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것이 진실이라 믿는다. 그리고 내가 명확한 근거도 없이 내 믿음이 옳다고 여긴다. 그러다보니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비이성적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오류를 심심치 않게 범한다. 



"그들의 목표는 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지도자를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를 속이려는 세력은 거짓정보로 우리를 '잘못된 믿음'과 '진실을 외면'하도록 부추겨 더욱 무지하게 만든다. 이때 진실에 대한 의심과 심플한 근거를 복잡하게 만드는 음모론이 동원된다. 책을 보다보면 진실은 너무나 뻔히 존재하고, 그에 반해 거짓정보는 그다지 교묘하지도 않은데도 이렇게 널리 퍼지는 것보면 마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정신을 지배해버리는 유해한 사이비 종교 같이 느껴졌다.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누가 떠먹여주는 것만 손쉽게 받아 먹는 나태함이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게 아닐까.



뜻 밖에도 저자는 절대적 진리에 반해 등장한, 언뜻 다양성을 추구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탈진실 시대와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권력 추구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세력이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고방식과 가치를 내세워 지식 습득을 방해하고 진실에 눈을 가리게 만든다는 것. 중심 권력을 해체하고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만 생각했던 포스트 모더니즘의 역기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새로운 관점이라 무척 신선했다. 



마지막 결론으로 저자가 제안하는 무지에서 깨어나 진실을 찾는 방법은 어쩌면 원론적인 얘기일수도 있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출처의 진위여부와 신뢰성을 확실히 점검하는 것, 토론과 팩트체크. 또 하나의 제안인 전문가 신뢰는 저자가 '한 사람의 이론이 모든 이의 눈을 멀게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했던 것처럼 잘못된 믿음을 가진 전문가도 판을 치기 때문에 사실 방법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다.




 



책은 철학적 사고와 현실 정치 비판 사이를 오가는데, 이론철학 전공자답게 철학적 이론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부분이해를 돕는 예시를 들며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개념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이고, 어떤 건 개념 구분이 모호하게 느껴져서, 쉬운 예시가 오히려 괴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철학은 역시 너무 너무 어렵다. 반면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적 증거 날조, 반이민정책, 진보적 정책의 성과에 대한 폄훼 등 트럼프 행정부의 뻔뻔함을 비판하는 부분은 논리적인 반박에 실체적 증거까지 곁들여져 흥미롭게 읽었다. 



나의 이해력의 한계로 명료하지 못한 부분이 존재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거짓과 왜곡이 범람하는 지금 더 깊은 우물에 빠지기 전에 지식으로 시야를 넓히고 진실을 찾아가게 도와줄 나침반 같은 책이다.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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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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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왜곡이 범람하는 지금 더 깊은 우물에 빠지기 전에 지식으로 시야를 넓히고 진실을 찾아가게 도와줄 나침반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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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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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역사상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미국 남부전쟁 시기 이전의 목가적인 삶과 전쟁 시기를 겪으며 철부지에서 강인한 여성이 되어가는 스칼렛 오하라, 그리고 그녀의 곁을 맴돌며 강렬한 러브스토리를 그린 레트 버틀러를 보며 얼마나 가슴이 설렜던가. 하지만 이제 이 영화는 '인종차별적 콘텐츠'라는 딱지가 붙었다. 지난 2020년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미국 스트리밍 사이트 HBO 맥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인종차별'을 미화하고 있다는 이유로 상영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외에도 한때 미국의 위대했던 영웅들은 흑인 노예를 부리고, 노예 제도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동상이 철거되는 굴욕을 받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최고의 교수'를 역임한 미래학자 후안 엔리케스가 쓴 <무엇이 옳은가>는 이러한 지점에서 쓰여진 책인 것 같다. 참 많은 지식인들이 트럼프의 당선과 재임 시기, 그리고 여전히 꽤나 높은 퍼센트로 지지를 받는 현재 상황을 경계하며 성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놓는데, 대부분이 흔들리지 않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강경하게 주장하고 각성하게 만드는 책이라면, 이 책은 과연 지금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진짜로 옳은 것인지를 묻는 참으로 독특한 책이다.



우선 저자는 서문에 자신이 '도덕적 상대주의자'가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윤리는 불변하지 않는 진리가 아니다. 윤리라는 말에는 왠지 인간 본성에 내재한 마땅히 지켜져야 할 무언가인 것 같은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지만 윤리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그 변화의 중심엔 기술이 있다.



'기술은 윤리를 바꾸어놓고, 오래된 믿음들을 향해 문제를 제기하며, 더 이상 성장하거나 변화하지 않는 제도들을 뒤엎는다.' - p18



저자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과거에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됐던 것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웠던 사례들을 수 없이 열거한다. 그리고 앞으로 기술 발전으로 벌어질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길 요구한다. 친밀함이 바탕이 된 섹스를 통해, 사랑의 결실로 생겨나는 새 생명은 이제 시험관 시술로 만들어내는게 당연해졌다. (생각해보니 낭만적 사랑과 결혼 역시 근대적 산물이다.) 이제 기술은 유전자를 편집해서 원하지 않는 특성은 제거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언젠가 기술이 상용화되면 시험관 시술처럼 당연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널리 퍼져 있는 새로운 윤리적 규범이 채택되는 티핑 포인트는 언제나 그렇듯, 단지 문제를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기존 생활방식을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고서도 윤리적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저렴한, 또 적용 가능한 대안을 가지는 것에서 비롯된다." - p92



저자가 주장하듯 기술은 풍요로움과 여유를 가져오고, 이런 여유 속에서 인간은 관대해진다. 그 관대함은 열악한 상황에 처한 존재의 처지를 연민하게 하고, 도덕적으로 불편하게 만든다. 저자는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제일 먼저 노예제도 사라진 것, 산업화가 진행되던 미국 북부에서 노예해방을 지지하기 시작한 것 모두 기술 발전이 윤리를 변화시킨 결과라고 말한다. 이제 기술은 세포배양육을 만들어내며 육식의 종말을 가져올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한때 효율화를 위해 더 고밀집사육을 고안했던 과거를 잊고,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에게까지 그 연민을 던지게 된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미래세대는 우리가 동물을 도축해서 먹던 문화를 가졌다는 것을 비윤리적이라고 혐오스럽게 여길지도 모른다.





윤리는 진화한다. 그것도 아주 쉽게.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이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버리라 충고한다. 지금 옳다고 믿는 것들이 나중에는 낡은 고집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옳음을 행해야 할까? 책 속에 소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절대적' 진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심지어 신자들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진리는 관계성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내면으로부터, 그리고 자기가 놓인 환경과 문화와 삶의 처지에 따라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또 표현합니다." - p195



사실 기술이 윤리를 진화시킨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다름을 대조보면 너무나 극명해서 당연한 얘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책은 드물 것이다. 책 속에 소개된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할 정도다. 



특히 기술 발전으로 인간이 어떻게 개조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부분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더 이상 접촉이 없는 상태로 정자와 난자의 외부 결합으로 태아를 만들고, 임신과 출산의 고통 없이 외부 양수주머니 같은데서 성장시켜 꺼내는, 마치 '멋진 신세계' 같은 일이 정말 벌어질까? 인간 역시 동물과 다르지 않은 존재인데, 본성을 어디까지 거스르며 기계에 가까워지려는 것인지, 과연 그렇게 됐을때 인간다움은 어디서 찾아야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윤리적으로 올바름이 꽤 많이 이슈되고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가 마지막 장에 이 책의 내용은 미국-서구 윤리에 편향되어 있다면서, 윤리적 문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술이 중국에서는 허들없이 쭉쭉 뻗어나가는 상황에 대해서도 거론한다. 동서양의 윤리가 꽤 다르긴 하지만, 중국과 같은 국가의 통제가 엄격해 사생활 보장이 제한되는 나라에서 인간 생명 윤리에 대한 의식이 낮은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이처럼 생각할 거리나 너무나 많은, 그리고 토론하면 좋을 주제들이 알차게 실린, 정말 독서모임에서 읽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독서모임 다시 하고 싶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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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 -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 기울여 나를 바꾸는 법
줄리아 캐머런 지음, 이상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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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영어 낭독을 시작했다. 내 시간을 내기 힘든 육아 중에 매일 1분 남짓의 영어 스크립트를 틀리지 않고 영어 낭독을 한다는 건 꽤나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해내고 나면 분명 내 안의 뭔가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피로가 누적되어 아이를 온전히 케어하지 못했고 아이를 향한 죄책감이 쌓여갔다. 그리고 사소한 일로 루틴이 무너지게 되면서 두 달의 습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인스타 피드에서 하루동안 낭비되는 시간이 없는 촘촘한 삶을 살아가는 '갓생'들을 보면 매번 마음이 불안해졌다. 갓생은 아니더라도 내 생활이란걸 찾아야하지 않을까? 아이에게만 끌려가는 시간 끝에는 텅빈 내가 있을 것만 같은 불안감. 문득 마음만 먹고 방치해둔 일들이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지경으로 쌓였다는 것도 깨닫는다.



그즈음 SNS에서 '모닝글쓰기'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내 안의 창조성을 찾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매일 아침 45분 동안 노트 위에 3페이지를 물 흐르듯, 의식의 흐름으로 써내려가는 '모닝글쓰기'. 이 책에 대한 궁금증으로 '모닝글쓰기'를 함께 하는 온라인 모임을 기웃거렸다. 당장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타이밍이 안맞던 차에 <아티스트 웨이>의 두 번째 이야기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 출간 되었고 나는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은 6주간 내면의 소리를 듣고 마음이 시키는 바를 찾기 위한 여정을 함께 하는 책이다. 책 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를 통해 <아티스트 웨이>가 무려 30년 전에 나온 책이고, 새롭게 출간된 이 책은 기존 작보다 더 쉽고 단순하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실천을 돕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에는 듣기 습관을 위한 3가지 도구 '모닝글쓰기', '아티스트 데이트', '걷기'를 소개하고, 6주간 제대로 듣기 위한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실 3가지 도구는 전작 <아티스트 웨이>의 요약본일텐데, 나는 이 짧은 파트에서 정말 큰 동기를 얻었다. '모닝글쓰기' 방법론만 알고 있었다면, 책을 통해 비로소 '모닝글쓰기'의 효용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다보면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시작해보고 싶은지,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등 어렴풋했던 모든 것이 분명해질 수 있다는 것. '모닝'인 이유는 글쓰기를 통해 하루를 보다 목적성 있게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하루 하루가 쌓이면 삶은 분명히 변화하게 될 것이고, 막연히 나는 못할 것이라 했던 일들도 이뤄낼 힘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제한해버린 범위를 넘어서면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완벽주의는 결국 미화된 두려움이다." p40



'모닝글쓰기'가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집중의 과정이라면 '아티스트 데이트'는 이완의 시간이다. 이 시간동안은 그저 자유롭게 놀기만 하면 된다. 그 일들은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시켜줄 것이다. '걷기'는 나 역시 생각이 고갈될 때 종종 하고 있는 일이라 그 효과에 대해 익히 알고 있어 무척 공감하며 읽었다.



그렇게 3가지 도구를 가지고 6주동안 '의식적인 듣기'와 '경청'에 집중한다. 책은 주변 소리에 대한 듣기, 타인의 말 듣기,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말 듣기, 마음 속 영웅에게 지혜 구하기 등 각 주에 듣기의 범위를 확장해나가며 잘 듣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책 속 내용을 팔로우업하며 연습할 과제까지 제시해주고 있으니, 정말 실천을 위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다정한 소리는 삶을 다정하게 만든다. 다정한 소리가 마음을 달래주면서 사람도 다정해진다." p78



특히 내 삶의 사운드트랙을 정해서 기분을 변화시키라는 책 속 조언은 매일 미칠듯이 바쁘지만 같은 일들의 반복이라 지루하기 그지 없는 내 하루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아이디어가 될 것 같다. 내가 듣게 되는 소리들이 삶의 기분과 온도를 좌우할 수 있다. 무음이었던 내 삶을 좀 더 발랄하게 변화시키면 어떨까? 내일부터라도 당장 음악을 가까이해야겠다.




 



사실 책 속에 나오는 - 신경써서 케어해야 하는 존재는 반려견 뿐이고, 자신과 멋진 아이디어를 공유할 친구들이 곁에 있으며, 함께 근사한 저녁식사를 나눌 수 있는, 저자의 삶은 아이와 함께 낯선 타지에서 고립되어버린 내 현실과 대조가 되어 서글퍼졌다. 그래서 책에 나오는 조언과 실천해볼 과제들은 나 역시 시도해볼 수 있을 것들이었고 분명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라 너무 좋았지만, 저자의 일화를 읽는 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 과제의 효용성을 설명하기 위한 일화였겠지만, 때론 너무 근심이 많고 복잡한 상황에 놓인 이에게는 저자의 삶이 심플하고 풍족해보여서 큰 괴리감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나에겐 여유가 너무 없어서, 경청의 능력은 점점 바닥나고, 이 때문에 가장 가까운 남편과는 물론 나 스스로와도 불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매주 이 책 속 Q&A를 채워가며 6주를 보내봐야겠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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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스 랩 - 그 멋진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론 M. 버크먼 지음, 신동숙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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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조깅과 함께 매일 글쓰기를 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그가 가진 상상력과 창의성의 원천은 성실한 실천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창조'와 '창의'에 대해 번뜩이는 영감에 좌우되는 무언가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 그나마 스티븐 잡스가 창의성은 다른 것을 연결하는 힘이라 정의해주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말이다.



존 M. 버크먼의 <메이커스 랩>은 뛰어난 창의성의 결과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오는지 집중 분석한 책이다. 세계적인 디자인 스쿨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의 총장인 존 M. 버크먼은 현 시대의 내노라하는 핫한 크리에이터 50여 명을 인터뷰해서 그들이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하게 되었는 지를 밝혀낸다. 



책 서문을 연 것은 애플 스토어를 설계한 디자인 업체 에이트의 팀 코베 스토리다. 모두가 애플에 관한 모든 것은 스티븐 잡스의 머릿 속에 다 들어 있을 것처럼 여기지만, 실제 잡스는 여러 번 반복 검토하고 직관으로 결정하기만 했을 뿐, 애플의 결과물들은 기술 위주보다 사람이 먼저인 브랜드가 가진 정신에 기반해있다. 그리고 '반복, 실험, 즉흥적인 대응'이 우리가 보는 창조적 결과물을 낸 방법이었다.



이 책은 그래서 창작은 '만들면서 알게 되는' 과정이라 정의한다. 창의성은 어떤 구체적인 비전을 떠올리거나, 영감을 받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아가는 '진화'에 가까운 개념인 것이다. 이런 과정은 비즈니스와 연결되는 브랜딩, 디자인 등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 음악과 같은 예술 영역에도 어김 없이 적용된다. 광기와 찰나의 감성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듭되는 반복과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작품 세계가 완성된다는 것. 



특히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이 나에겐 꽤나 흥미로웠는데, 일단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 것 자체가 창작에 중요하다는 것과 새로운 아이디어는 창작 과정에서 벗어난 시간에 튀어나온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소설 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나에게도 종종 해당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새로운 것을 떠올려야 할 때는 우선 책상에 앉는 것부터 시작한다. 막힌다면, 샤워를 하거나 산책을 하면 이상하게 생각이 정리되어 일을 다시 추진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그 과정을 '확장된 가능성의 상태로 들어가는 듯'하다고 표현하는데 너무나 적절했다.  



매너리즘에 빠진 예술가들이 슬럼프를 탈출하는 유용한 팁도 담겨 있다. 자기 틀 안에서 생각하다보면 슬럼프를 벗어날 수 없다. '무작정 알지 못하는 세계에 뛰어들어서 뭔가를 시도'하거나 '항로를 이탈하려 애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슬럼프에 여행이 도움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다보면 내 안에 있는 것을 자꾸 꺼내 쓰는 아웃풋 과정만 반복될 때가 있는데, 새로운 것은 나오지 않고 같은 틀 안에서 맴도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럴 때 다른 것을 채우는 인풋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이 책의 조언처럼 '항로를 이탈'한 방식으로 인풋을 준다면 새로운 시선이 열릴 것 같다.


​​


책 속의 크리에이터들은 꾸준함과 반복되는 시도를 강조한다. 결국 창의성도 1만 시간의 법칙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집요한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거듭되는 시도 속에 가장 적절한 연결을 찾아내는 눈을 키우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책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남긴 창의성에 대한 명언들이 나온다. 천재처럼 보였던 그들도 결국은 '만드는 과정' 속에 자신이 창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반복하며 더 나은 결과물로 나아갔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제법 든든해진다. 타고난 창의성이 없다고 좌절할 게 아니라 뭐라도 시도해보면 되겠지라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도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느라 머리를 쥐어 뜯고 있는 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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