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습니다 - 뇌과학으로 배우는 엄마의 감정 수업
곽윤정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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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연히 부모역할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나름 육아 중에도 시간을 쪼개 육아 관련 유튜브를 보고 육아서를 읽으며 여전히 서툴기만한 부모 역할을 어찌 저찌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부모 역할에 대한 인식은 있으나 실제 양육 상황에서 이를 실천해 나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나를 꿰뚫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또 다른 진단으로는 양육스트레스가 '매우 높음' 수준이었다. 아마 부모 역할을 잘 해내야한다는 중압감이 너무 커서였을까.



그래서 훈육은 나에게 너무나 힘든 숙제였다. 통제적인 부모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과 자꾸만 위험한 상황을 빚어내는 아이의 행동이 자주 내 안에서 충돌했고, 내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행위는 감정적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마음을 다 잡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기분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은 지금 파도처럼 출렁대는 감정으로 하루 하루 아이를 대하는 나에게 따끔한 채찍같은 말이었다. 저자 곽윤정 교수는 뇌발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육아 코칭의 전문가이다. 전작인 <아들의 뇌>를 읽은 적은 없지만 관련한 영상을 보며 아들맘으로 깊게 공감했던 바가 있기에 이번 신간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첫 장에는 뇌발달에 대한 개념정리, '결정적 시기'에 대한 연구결과와 함께 뇌발달에 있어 정서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그래서 부모의 기분과 태도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하고 있다. 성인도 그렇지만 스트레스는 인지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인데, 뇌가 발달하는 '결정적 시기'를 맞은 영유아기일수록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활발하게 연결되는 시냅스가 멈춰버릴 정도. 아이에게 따뜻한 태도를 보여야한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육아 상식이지만 이렇게 과학적으로 근거를 알려주고 나니 더욱 마음에 새기게 된다.



두 번째 장에는 뇌발달과 그에 따른 양육팁이 개월수에 따라 정리되어 있다. 현재 아이의 연령대인 1~3세는 거름망 없이 모든 것을 쭉쭉 흡수하는 스펀지와 같은 시기. 그렇기에 가급적 좋은 것을 접하고 경험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소제목이 또 마음을 날카롭게 찔러댔는데 '엄마의 잘못을 기억하고 있는 아이들'이란다. 이 시기에는 구체적인 정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정서는 기억에 품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아이 앞에서 정서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또 이 시기는 '거울신경세포'가 활성화되어 부모의 행동을 모방하고 이를 통해 인지, 언어, 사회성 등을 발달시켜나간다고 한다. 그렇기에 부모는 말과 행동에 더욱 주의를 요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역시 부모의 역할에 대한 중압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털썩....)



하지만 양육에 대한 효능감이 높으면 아이에게 좋은 정서를 전하는 부모가 될 수 있다. 양육 효능감은 어떻게 높아질 수 있을까. 책에는 부모 스스로가 건강한 자신부터 만들 수 있는 3가지 방법- 완벽하려는 마음 버리기, 재충전의 시간 갖기, 내 몸 챙기기-을 알려주는데 사실 알고는 있지만 실천이 잘 안되는, 마치 마음만 바빠지는 자기계발서 같은 항목같이 느껴졌다. (내가 너무 망가진게지...)



개인적으로는 훈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인지 이 책에서 제안한 '긍정훈육법'이 심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막막했던 초행길에 이정표를 발견한 기분. 해서는 안될 말들을 더 많이 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 밖에도 시기별 뇌발달을 촉진시켜줄 수 있는 부모 역할에 대한 지침과 활동들이 별도 페이지로 정리되어 있어 참고하기 좋았다. 



이 책은 육아에 대해 흔히 부모가 저지르는 잘못된 행동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양한 연구 결과를 제시해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때문에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이 가중되긴 하지만 막연한 미래가 눈 앞에 들이밀어지니 정신 차리기에는 즉효다. 쌓일대로 쌓인 양육스트레스는 어떻게든 해소해야겠지만, 기분대로 육아를 하고 있던 내게 정신을 버쩍 들게 만든 좋은 자극제가 되어 주어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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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을 키우는 책육아의 힘 - 리터러시 교육 전문가가 말하는 독서교육 첫걸음
권이은 지음 / 유아이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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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엄마는 으레 갖게 되는 기대와 확신이 있다. 내 아이도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 하지만 아이가 자랄 수록 내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며 실망감은 짙어진다. 나 역시 아이가 신생아일때부터 머리맡에 여러권의 책을 갖다놓고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아이에게 책을 다정히 읽어주며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길 간절히 바랐다. 물론 아이는 책을 거부하는 편은 아니지만 내 기대만큼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주로 소리가 나거나 열어볼 수 있는 조작 요소가 있는 책에만 흥미를 보일 뿐. 이야기가 있는 책에는 통 관심이 없다. 



아이가 자랄수록 깊어져가는 책육아의 고민. 어디다 하소연하기도 힘든 이 고민을 타파해 줄 고마운 책을 발견했다. 권이은 저자의 <문해력을 키우는 책육아의 힘>. 책 제목은 얼핏 요즘 유행하고 있는 문해력에 초점을 맞춘 듯 하지만 책을 들여다보면 책육아 실패를 겪고 있는 부모를 위한 꿀팁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독서교육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전문가여서 자신의 아이가 당연히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웬걸. 인지 발달이 조금 느렸던 아이는 책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발달 수준보다 높은 책을 어려워했다. 강연을 통해 부모들에게 확신에 차 얘기했던 이론들이 무너지는 순간들이었다. 게다가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는 새로운 것을 좀체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자기가 꽂힌 책에 대한 반복독서 외에는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더 넓은 책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던 엄마는 애가 탔다. 그래서 방법을 강구해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이 책은 문제적 독서 성향을 가진 아이들을 어떻게 책육아로 인도할지 다양한 사례로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하나에 꽂혀서 그것만 보려는 아이, 편독을 하려는 아이, 책장을 마구 넘기는 아이, 쓸데없는 질문만 하는 아이 등 어디에 말도 못할 책육아 실패를 맞이하고 있는 부모에게 정말 필요한 솔루션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전집'의 효용성과 글밥을 늘리는 방법, 질문을 효과적으로 던지는 법, 즐겁게 상호작용하는 법, 독후활동보다 중요한 독서 전 활동 등 책육아를 시도해봤던 부모라면 궁금해 했을 모든 것을 담았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경험과 이론이 적절히 섞여있어 더 구체적으로 와닿았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 본인이 책육아를 하며 겪었던 고충들로 부모가 가질 스트레스에 대한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읽는 내내 엄청나게 몰입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장점은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책이다. 추천하는 책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와 소통하고 작용할 수 있는지, 책의 내용과 경험을 토대로 설명해주고 있어 리스트업해 읽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장점은 독서교육 전문가답게 아이와 책육아를 할 때 맞이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은 물론, 구체적인 대화 예시를 들어 아이와 독서 대화를 이어나갈때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사실 책육아를 하며 어떤 질문을 던져야할지 막막했는데 이 책에서 알려주고 있는 대화팁인 육하원칙과 질문 만드는 방법, 아이의 대답이 없을 때 대처하는 방법 등은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단언한다. 아이와의 독서는 기본적으로 상호작용이라고. 책을 인지능력 향상, 언어능력 향상의 도구로만 다룰때는 아마도 실망하고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와 책 한 권을 가지고 즐겁게 상호작용하면 어느새 아이는 부모도 모르는 새 성장해 있지 않을까?


마음처럼 책육아가 되지 않을 때 언제든 펼쳐놓고 다시 답을 구해볼 수 있는 책육아 지침서를 만나게 되어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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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 - 삶의 근본을 보여주는 부모,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아이
지나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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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내 인격의 부족함을 여러번 느낀다. 내가 가진 삶의 가치관이 건강하지 못해서, 나의 말버릇이 쉬이 남에게 상처주는 것이어서 나는 아이의 삶에 얼마나 큰 그늘을 만들까 두려웠다. 남편과 아주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일 때마다 나의 좁은 인격은 남편을 잔인하게 할퀴고, 극단의 상황을 가정하며 제멋대로 결론 지으며 악다구니를 쓴다. 그런 모습이 아이에게 어떻게 보여질지도 걱정됐다. 그래서 아이가 더 많은 행동을 모방하고 말을 이해하기 전에 나의 부모 공부가 절실했다.



그때 만난 지나영 교수의 유튜브 영상은 무언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 같은 강력한 힘이 있었다. 한국인 최초로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교수로 재임 중인 지나영 교수는 비뚤어진 육아 문화에 일침을 놓으며 부모의 육아 마인드를 바꿀  부모 트레이닝 영상들을 올렸다. 이 몇 개의 영상을 보던 중 마침 이 방법들이 잘 정리된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 책 제목에 '가장 쉽다'는 말이 붙은 건 아무래도 요즘 부모들이 육아를 너무나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리적인 어려움도 있겠지만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 학력수준을 만들어주기 위해 사교육 시장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으며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발생하는 상황이니까. 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심플하게 말한다. 본질에만 치중하고 나머지는 힘을 빼라고. 



본질은 뭘까? 삶에 대한 가치관과 건강한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을 기를 수 있게 조력해주라는 것. 신념을 기르기 위해서는 조건 없는 사랑과 보호가 필요하다. 이건 부모에겐 당연한 감정이지만 우리는 현실 육아에서, 특히 학부모가 되는 순간부터 타인과 비교하는 말을 섞고 조건을 달아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나는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말이다. 이건 아이의 자존감에도 영향을 준다.  



책을 읽다보면 지 교수가 부모로써 해선 안될 말, 아이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말들은 우리가 자라며 흔히 들어오던 말들이다. 아이는 부모 말 잘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자신의 속에서 꿈틀대는 잠재력을 억누르다 이제 어떻게 꺼내는지도 잊어버린 채 어른이 된다.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적이고, 좋아하는게 뭔지도 모르는 어른. 동일한 성공잣대, 그 속에 들지 못했다는 열등감, 부모에게 들은 자존감을 갉아먹는 말들이 축적되어 삶을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런 진단은 너무나 가슴 아팠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나 역시 좋아하는게 뭔지 몰라 아직도 방황하고 있고, 타인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잘보이는 비뚤어진 시각을 가진 채 타인에게 상처주는 방식의 소통 밖에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진짜 가르쳐야 할 것은 수학이 아니라 가치"



책은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삶의 근본이 될 가치라고 말한다. 그 가치는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이기도 하겠지만 '정직', '성실,' , '기여', '배려'와 같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가치이다. 이런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는 자기의 내적 동기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일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을 때 더욱 큰 무기력에 빠졌던 경험을 비춰보면 정말 공감이 갔다. 반면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내 일의 성과를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어졌고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한뼘 성장시켰다. 하지만 육아를 하며 잊었던 가치들이었다. 물론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이기에 이르기도 하지만 아이의 지적 발달에 부족함이 없게 여러 자극을 주느라 소홀했던 부분들. 이 4가지 가치는 반드시 알려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도 4가지 가치를 지향하는 성장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결국 부모는 아이의 롤모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부모연습'이라는 지면을 통해 부모가 성장 마인드셋을 가질 수 있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답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뒀다. 내가 가진 생각을 정리하고, 성장을 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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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고양이 명화
냥송이 그림, 젠 베일리 글, 양승현 옮김 / 키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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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 그만큼 햇살도 더욱 강렬히 창으로 들이닥친다. 그리고 우리집 고양이들은 해가 만든 거대한 조각 아래 몸을 늘어지게 뻗는다. 마치 가을의 주홍빛 햇살을 한점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닥에 널브러진 거대한 핫도그를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난다. 햇살의 온기를 듬뿍 받은 고양이들의 털은 보기에도, 만져보아도 따스하다. 여기 그런 둥글둥글한 고양이들의 따스한 털을 한 올 한 올 만끽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지고,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일찍이 그 매력에 치였기에 이렇게 고양이 두 마리의 집사로 살아가고 있는데, 고양이와 관련된 책은 절로 눈길이 간다.  <우아한 고양이 명화>는 그런 고양이 덕후들에게 지나칠 수 없는 책이다. 고양이들이 명화 속 주인공이 되다니!



책 속에는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는 명화들이 등장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익숙한 명화들이여서 너무나 반갑고 눈이 즐거웠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렘브란트 반 레인의 '야간 순찰',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에드가 드가의 '발레 수업',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 유럽에도 영감을 줬던 우키요에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등. 유명한 사진도 뚱냥이들로 패러디 된다. 대공황 시기 아찔한 뉴욕 상공에서 건술 노동자 11명의 점심 식사 시간을 담은 찰스 클라이드 에베츠의 사진 '마천루 위에서의 점심 식사'. 명화 속 고양이들은 늠름하기도 하고, 잠에 취해 나른하기도 하고, 생선을 통통한 냥발에 꼭 쥔 비장한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 산업 시작에 영감을 줬던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질주하는 말의 기수'라는 사진 작품을 우다다를 즐기는 고양이로 패러디된 그림은 원작의 달리는 말만큼 역동감 넘친다. 실타래를 따라, 쥐를 따라 이리뛰고 저리뛰는 각양 각색의 고양이들.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은 따뜻한 색감의 원작에 나른하게 잠들어 있는 고양이들이 널브러져 있어 더욱 사랑스럽게 완성된다. 그 중에서 입벌리고 자는 고양이는 우리집 고양이와 너무 닮았다. 일러스트 작가 냥송이의 냥덕후 10년 이상의 내공이 여기서 제대로 느껴진다. 퉁퉁한 몸매를 덮은 털의 보송보송한 질감이 온전히 느껴질 정도로 고양이 묘사에 탁월하다.



이야기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엄마 고양이는 말 안 듣는 아기 고양이들에게 '고양이 예술'에 대해 들려주는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속 아프로디테로 변신한 고양이는 날 때부터 신성한 존재라는 것. 고양이가 타고난 우아하고 신비한 매력에 대한 이야기는 구구절절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광대가 솟고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힐링 책. 동시에 아이에게는 명화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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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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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존재만으로도 신비로운 동물이다. 바다에 사는 포유류, 아가미로 숨을 쉬는 생명체들 속에 살면서 숨구멍으로 물을 내뿜는 동물, 종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압도하는 거대한 크기 또한 신비감을 더한다. 그래서인지 고래는 줄곧 인간에게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주인공 우영우가 좋아하는 동물 또한 고래였다. 그래서 첫화부터 이 작품이 언급된다. 바로 고래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고전 소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다.



허먼 멜빌의 소설은 비교적 짧은 <필경사 바틀비>로 먼저 접했다.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의 작품은 난해하면서도 강렬했다. 읽는 당시에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대적 배경과 바틀비의 저항에 대한 해석을 함께 읽고 나자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과 상징들이 무척이나 심오하게 다가왔다.



<모비 딕>도 그러한 소설이었다. 소설의 내용만 보면 고래를 잡는 포경선 '피쿼드 호'에 오른 뱃사람들의 모험기이다. 특히 너무나 영리해서 교활하기까지 해보이는 흰머리 향유고래 '모비 딕'에게 다리를 잃은 선장 애이해브는 마치 와신상담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의족을 고래 뼈로 해넣으며 복수를 꿈꾼다. 선원들에게도 '모비 딕'을 발견하는 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얘기하며 자신의 복수에 이용하려 하는데, 그의 그릇된 복수심은 결국 모두를 파멸로 이끈다. 



반면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애이해브에게 대항하는 자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배에 오를 수 없다'는 그의 발언처럼 신중하고 이성적이다. 그래서 애이해브가 복수심으로 모비 딕을 추격하려는 것을 여러차례 저지하고, 애이해브가 모비 딕에 부여하는 온갖 상징들을 '한낱 짐승일 뿐'으로 치부하며 해체하려 든다.



난 이 둘의 관계성이 소설을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현실에서는 스타벅 같은 리더가 필요하지만, 소설은 결국 갈등을 최고조로 이끌어 낼 방향으로 흘러간다. 



또 하나 흥미로운 관계는 소설의 화자인 이슈메일과 식인종 퀴케그다. 이슈메일은 퀴케그에게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남들에게는 야만인일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맑은 그에게 매료되며 경외감과 함께 우정을 나누게 된다. 퀴케그의 등장은 당시 미국 기독교 사회에서 이 소설이 신성모독적인 요소가 있다고 비판받았던 요소였다는데, 지금 시각에서는 작가 허먼 멜빌이 종교의 원리주의적인 폭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보다 보편적이고 공평한 종교로 한발 더 나아간, 진정으로 앞선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감탄하게 된다.




소설이 이렇게 간추린 서사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줬다면 페이지터너였을텐데.... 이 책은 무척 읽어내기가 어려웠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갑자기 고래에 대한 학술적인 내용들이 마구 쏟아져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저자 본인이 생생하게 경험했기에 더욱 자세하게 남기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내가 소설을 읽는 것인지 포경선 현장기록이자 과정의 이론서를 쓰는 것이지 어지러워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문체도 SM 가수들의 난해한 복합장르 같다. 갑자기 서사시가 튀어나오고, 세익스피어의 희곡 같은 대사를 부르짖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모더니즘의 매력이겠으나, 리얼리즘이 더 취향인 나에게는 참 어려웠다. 향유고래에게 압도당한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제를 읽으면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너무나 거대하고 심오해서 한번 읽고 넘겨서는 안되는 걸작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치 알면 알수록 경이로운 고래처럼, 이 소설은 문장 곳곳에 상징과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번 도전에서는 힘겹게 넘겼다면, 다음에는 문장 속에 담긴 멜빌의 철학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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