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 - 신념을 넘어 서로에게 연결되고 싶은 비건-논비건을 위한 관계 심리학
멜라니 조이 지음, 강경이 옮김 / 심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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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음은 비건을 지지하지만 실천을 못하는 이유는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아주 예전에 비건이 되기로 결심하고 3개월 정도 고기를 먹지 않았다. 돼지들이 트럭에 실려 도축장으로 가는 모습을 본 게 계기였다. 돼지들의 몸은 온통 채찍을 맞아 빨갛게 상처가 나 있었고, 눈은 가스가 찬 질식할 것 같은 비좁은 공간 속에서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더 이상 예전처럼 즐겁게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내 삶은 엄청나게 불편해졌다. 사람들은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했고, 내 신념을 밝히면 그럼 식물은 안 불쌍하냐는 식으로 조롱했다. 함께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면 동물성 고기가 안들어간 음식을 찾기 어려워서 밑반찬만 먹어야 했고,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 너 때문에 밥을 어떻게 차려야할 지 모르겠다며 나를 불편해했다. 



내 생활은 급속도로 쪼그라 들었고, 결국 억지로 버티고 있던 내 비건 생활은 삼겹살 외식에 동참하면서 와르르 무너졌다. 그래서 오랫동안 비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든다. 그들이 겪었을 소외와 좌절이 그려져서. 보통 나같이 나약한 사람은 하루도 버텨내지 못할 단절을 이겨내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라는 다정한 제목을 단 이 책은 비건과 논비건이 서로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신념을 넘어 서로에게 연결될' 수 있게 돕는 관계 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저자 멜라니 조이는 전작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라는 책을 통해 동물 복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작가다. 비건 운동가이기도 하지만 사회 심리학자로 '관계 코칭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비건과 논비건이 건강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방법을 설파한다. 



책은 비건과 논비건의 관계로 주제를 한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건강한 관계 맺기에 대한 내용은 서로 다른 신념과 생각으로 갈등을 빚는 모든 관계에 적용된다. 저자는 어떤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이며 이런 관계는 안정감과 교감 위에서 자란다고 말한다. 안정과 교감을 위해 필요한 건 진정성이다. 서로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연민하고 공감하는 관계는 서로에게 진실된 관계가 될 수 있다. 이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하지만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계가 잘 자려면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매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은 상대의 희생에 무임승차하려는 것과 같다." - p46



"연민의 마음으로 지켜볼 때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보고 있어요. 당신과 공감하고 당신에게 마음을 쓰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셈이다. 상대에게 진정으로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것은 우리 삶과 문화에서는 흔치 않은 큰 선물이다. 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느낌으로 삶을 살아간다.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어떤 부분을 숨겨야 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상처와 수치심, 두려움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자신에게조차 '가식'을 던다. 그러므로 타인을 지켜보는 증인이 되는 일 또한 큰 선물이다. 누군가 자신의 취약성을 당신과 공유하기로 한다면 그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진정성을 믿는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p53~54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으로는 관계는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가 상대를 진심으로 관심 가져주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연민의 마음으로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상대의 욕구를 이해하고 인정해야한다. 이 책은 우리가 부정적이라 오해하고 있는 감정들을 새롭게 정의하고 바로 잡아준다. 욕구 역시 부정적 감정으로 평가절하 받지만 욕구는 그저 감정일 뿐이라는 것, 욕구를 이해하고 인정해주고 나아가 채워주는 관계가 서로를 연결시킬 수 있다.



저자는 차이를 받아들이는 현명한 방식도 제안한다. 우선 차이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차이 자체만을 강조하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차이에서 우위를 따지다보니 서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려 혈안이 되고, 그러다보면 혐오만이 남는다. 이건 비건-논비건의 관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로 제기되는 젠더 갈등이나 세대 갈등 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대를 오롯이 상대 본연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차이에 대해 비판하기를 멈추는 것이 갈등해소의 중요한 키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도 무례한 행동은 용인해선 안되고 견딜 수 없는 차이라면 관계를 끝내라고 조언한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것은 비건이 사회적 소수자이며 약자라는 사실이다. 논비건이 주류인 사회에서 이들이 겪는 폭력적인 상황은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과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대다수의 주류 문화가 가진 근거 없는 신화와 소수자들을 무시하고 외면하기 위해 공고히 다져온 반대 프레임들을 저자는 육식주의를 다루는 장에서 파헤친다. 그리고 논비건이 무지에서 벗어나 비건과 연대하는 용기를 내기를 촉구한다. 


비건 역시 비건이 되기를 결심하게 만들었던, 동물을 착취하는 끔찍한 트라우마 서사에서 벗어나 회복 탄력성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인간은 본래 다른 존재와 공감하도록 태어났으므로 공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므로 동물의 고통에 '민감해졌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무감해지기'를 멈췄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 p146



"비건은 육식주의와 비거니즘 모두를 이해하는 이중 언어 사용자다." - p205



사실 비건을 다루는 책은 주류인 논비건의 폭력성을 비판하며 그들의 각성만을 촉구하기 쉬운데, 이 책은 서로를 연결하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비건에게도 완벽주의에 너무 갇히지 말 것과 논비건의 개별성을 인정할 것, 트라우마 서사에서 벗어날 것 등 비건 측의 노력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책의 말미에는 비건이 논비건에게 연대와 존중을 제안하기 위한 제안의 말을 실질적인 예시를 제공한다. 비건과 논비건이 진정으로 연대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진심이 느껴졌다.



비건과 논비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폭넓은 관계 심리학으로도 삶에 굉장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게다가 차이만을 강조하고 다름을 혐오하는 양극단을 달리는 요즘 같은 세상에 꼭 필요한 책이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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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
팻 바커 지음,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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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웅은 결국 연쇄 살인마나 다름없죠.'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구절인데 참 오래 가슴에 남았었다. 나에겐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꿔놓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가 얼마나 용맹하든, 뛰어난 지략을 가졌든 그저 내 삶을 파괴한 가해자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존경받는 천하 통일의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우리나라에게는 한반도를 피로 물들게 한 침략자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신화 속 영웅들은 영원히 영웅 그 자체로 박제되어 있는 듯 하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이며, 설령 실화라고 하더라도 피해를 본 민족들의 원한이 지금까지 이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영원한 영웅 스토리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와 그의 애첩이라고 알려진 브리세이스의 이야기를 여성적인 관점으로 다시 그려낸 소설이다.



"위대한 아킬레우스. 영민한 아킬레우스. 눈부신 아킬레우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 그를 가리키는 수많은 별칭들. 우리는 그중 어떤 것으로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도살자'라고 불렀다." -p11



첫문장부터 이 책의 관점은 명확하다. 전장에서 적군을 무찌르며 용맹함을 과시하는 영웅 서사 뒤에 가려진 피해자들의 이야기, 특히 정복자들의 전리품이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것. 이야기는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 연합군이 트로이로 가기 전 리르레소스를 약탈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좁은 성채에 갇혀 전쟁 상황을 지켜보는 여자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전쟁 장면은 그 어떤 전쟁 소설보다 참혹하다. 숨 쉬기 조차 힘든 더운 공기 속에서 젖먹이 아기는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보채고, 소년들은 조여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얼어 붙어간다. 전쟁에 패하면 여자들은 젊음으로 그 쓸모가 평가된다. 좋게 평가된다해서 강간 그 이상의 대접도 아니지만. 



리르네소스의 왕비였던 브리세이스는 눈 앞에서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아버지, 형제들을 죽이는 모습을 지켜본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남자에게 포상으로 넘겨진 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며 절망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낸다. 아킬레우스의 절친인 파트로클로스의 친절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지만, 여전히 두려움에 떠는 '생쥐'처럼 아킬레우스를 관찰하는 브리세이스. 



그리스로마신화 속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우스가 사랑하는 여종, 애첩 등으로 불리지만 이 책 속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를 자신의 영예를 드러내는 상징물로, 그리고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닮은 묘한 느낌에 유아적인 집착을 보였을 뿐 '사랑'이라 설명하긴 어려워 보인다. 브리세이스 역시 아킬레우스에게 증오와 두려움을 가질 뿐이다. (물론 이후 아가멤논의 손에 넘겨진 뒤 더 모욕적인 상황을 겪으며 아킬레우스에 대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편을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은 파트로클로스와의 편안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킬레우스 자체에게서 느끼는 마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이런 감정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어떻게 자신의 가족을 죽인 남자를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살아 남기 위해 사랑하는 척 연기는 할 수 있어도, 마음이 움직일 수 있을까?



이렇게 신화를 현실적으로 바라본 소설은 신화 속에서 성스럽게 포장하며 가려버린 전쟁의 이면과 남성 영웅들의 실체를 까발린다. 아가멤논에게 아폴론 신을 모시는 사제가 노예가 된 딸을 돌려달라 찾아왔을 때 그를 모욕 주며 돌려보낸 뒤 겪는 수 많은 죽음은 신의 무시무시한 재앙이라기보다는 병영의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발생한 페스트 같은 역병으로 묘사된다. 또한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무찌르는 장면도 절친을 잃은 슬픔에 눈이 돌아가버린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수 많은 사상자가 쏟아지는 전쟁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고, 그 여성을 욕받이로 삼으면서 2차 가해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됐다는 헬레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반목하게 된 원인이 된 브리세이스, 이들은 그럴싸한 핑계일 뿐 진짜 원인은 전쟁을 실제로 주도한 남성 지도자들이고, 그들의 무능력과 알량한 자존심이다.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의 빠른 발과 용맹함, 영광을 찬양하는 신화와 달리 그의 칼날 속에서 참혹하게 사그라진, 솜털이 채 사라지지 않았던 어린 생명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기억하며, 그의 어머니가 간직한 소년에 대한 추억들을 되새긴다. 이 같은 여성적 관점은 전쟁의 비참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그려낼까?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그들이 정복과 노예제도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사내들과 소년들이 자행한 학살에 대해, 여자들과 소녀들을 노예로 삼았던 일에 대해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강간이 만연한 병영에서 살았다는 걸 알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들은 좀 더 가벼운 무언가를 원할 것이다. 아마도 사랑 이야기? 나는 그들이 이 이야기에서 진짜 사랑을 잘 알아볼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중략)


처음에, 나는 아킬레우스의 서사에서 빠져나오려고 시도했고,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나의 이야기이다." p433~434





책 표지에 적힌 '당신이 믿어온 신화가 통째로 무너지는 경험'은 전혀 절망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감춰진 이야기를 열어주어 내 시야가 확장된 기분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책, 오랜만에 의미와 재미 모두를 갖춘 소설을 만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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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따라하기 하와이 - 오아후.마우이.라나이.빅아일랜드.카우아이, 2022-2023 최신 정보 수록 무작정 따라하기 여행 시리즈
박재서 지음 / 길벗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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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힌지 2년이 넘었다. 정기적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던 이들의 가슴 속에는 그리운 곳 하나씩 맺혀있을터. 나에게는 하와이가 그런 곳이다. 6년 전 친구 부부와 함께 떠났던 하와이는 공항에 도착하자 천국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렇게 따스하고 부드러운 바람이라니. 훌라를 추며 내젓는 살랑살랑 나비 같은 손짓이 바람결에 그대로 담겨있는 듯 했다. 



사실 내 여행 스타일은 떠나기 전 촘촘한 계획을 짜고 다녀온 이들의 블로그를 수 백번도 넘게 탐색해 눈을 감고도 그 거리가 그려지게 만들 정도로 사전 준비가 철두철미한 편인데 - 이런 성향은 과거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유럽 길바닥에서 지도를 보고도 길을 못 찾아 질질 눈물을 흘리며 돌아다녔던 악몽 같은 기억 때문이다. -  긴 서울 생활을 정리하며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마음을 정리하는 힐링 여행이기도 했고, 함께 떠난 친구들이 쇼핑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같이 움직이기 위해 따로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여행책 한 권 안보고 여행을 떠난 건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와이의 매력을 반도 못보고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이에서 보낸 일주일은 뜻 밖의 행복을 잔뜩 가져다주었다. 7월 4일이 미국 독립기념일이라 하와이에서 성대한 불꽃 놀이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해변에서 잊을 수 없는 화려한 밤을 맞았고, 머물던 에어비앤비 근처 맛집을 찾다가 구글에서 추천한 별점만 보고 찾아간 곳이 하와이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으로 꼽히는 디저트 말라사다 맛집이었고, 와이키키 무스비 맛집이었고, 하와이 로컬 푸드 라우라우 맛집이었다. 그리고 거북이 보러 떠난 여정에서 또 구글 별점 보고 간 버거가 3대 버거 중 하나인 쿠아 아이나 버거 맛집! (진짜 내 인생 버거다. 일본에는 있다는데 한국도 들어와죠~)



하지만 이건 내가 얻은 뜻 밖의 행운이었다. 실패담도 엄청났으니까. 길 위에서 허비한 시간들도 많았고, 짜고 느끼하기만 한 현지 음식에 팁까지 주느라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는 오아후에만 머물며 일주일을 그야말로 와이키키 주변부만 뱅뱅 돌며 탕진했다. 4개의 섬으로 이뤄진 하와이의 4/1, 아니 오아후의 반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제대로 된 여행책 한 권이 있었다면 더 알차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내가 스쳐지나듯 본 것들의 의미도 선명하게 이해하며 더 깊이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아쉬움은 여행 이후 내내 마음에 남았다. 



언젠가 다시 해외여행을 간다면, 0순위로 꼽을 하와이. 대한민국의 많은 여행 가이드 책들을 그때 그때 내키는대로 골라 사서 통일성 없는 책장을 이루고 있는데 길벗의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는 그동안 접하지 않았다. 이렇게 알찬 여행서였다니. 게다가 기존 여행책이 두꺼워서 들고 다니기에 번거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실제 나는 엄청 두꺼운 유럽 여행책을 나라별로 잘라서 챙겨 다녔다.) 테마북과 코스북 두 개로 분철해두어 편의성을 높였다. 그리고 책 면면에서 다양한 독자들의 니즈를 파악해서 정보를 제공하려하는 사려 깊은 편집이 돋보였다.



저자 박재서는 프리랜서 여행 작가로 우연한 계기로 하와이에 들린 후 하와이의 매력에 빠져 유학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10년 이상을 보냈다고 한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다시 6개월을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머물며 취재했고, 다른 섬들도 수 개월씩 오가며 생생한 정보를 담았다. 으미 부러워. 현지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하와이 빠꼼이가 전하는 핫플레이스 정보들이니 신뢰가 팍팍 느껴진다. 게다가 내가 먹어보고 진짜 엄지척했던 그 맛집들이 책에 소개된 것을 보니 믿음이 안갈 수가 없다. 



하와이에 대한 전반적인 역사 설명, 하와이 쇼핑 가이드, 맛집 가이드, 관광 명소 등 여행서가 품고 있는 기본적인 내용은 물론이고, 신혼여행을 가면 단골 코스로 빠지지 않는 하와이 스테이크하우스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스테이크에 대한 지식을 담는다던지, 하와이에서 맛보는 열대과일들을 소개하고,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로 꼽히는 코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방대한 팁들을 제공한다. 




이 책의 최고 매력은 자신의 취향이나 상황을 먼저 테스트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여행 코스와 핫플레이스를 추천한다는 점이다. 커피를 즐기는 취향도 사람마다 각각 다른데 다양한 니즈들에 맞는 맞춤형 추천을 해주는 세심함이 돋보였다. 스노쿨링 스팟도 취향에 따라 추천하고, 서핑지도 수준에 따라 달리 제안하며, 아이를 동반하는지, 커플 여행인지 여행 상황에 따라 즐길 수 있는 관광지, 숙소 리스트도 맞춤형으로 안내한다. 나만의 맞춤 여행을 설계하는데 이보다 더 친절한 가이드가 있을까.



편집 디자인도 너무나 감각적이어서 눈을 즐겁게 했다. 특히 디저트는 어쩜 이렇게 알록달록 달콤하게 생겼는지, 스테이크는 육즙이 그대로 담긴 모습을 밀착 확대해서 보여주고 있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게 만들었다. 밤에 보는 것 주의! 아마 하와이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여행의 기대와 설렘이 배가 되리라.




코스북은 가이드책과 다르게 훨씬 정보 중심의 컴팩트한 느낌으로 구성되었다. 체류일정에 맞는 코스를 추천하고, 시간을 줄여주는 최적의 동선을 제안한다. 길에서도 이 책 하나면 주변부에 뭐가 있는지 파악하기 쉽게 지도와 정보를 잘 배치해 알차게 담았다. 거기다 저자가 얼마나 세심한지, 주차정보가 깨알 같이 담겨있는데 보통 주차장이 없으면 표시 안하는데 갓길 무료 주차 같은 정보도 알려준다. 



 아직 하와이 여행 갈 일은 내 인생에서 요원하기만 한데, 이 여행서를 읽으니 마치 다녀온 듯 마음이 풍요로워졌다가, 맹렬한 그리움과 부러움에 휩싸였다. 이 책 내용이 더 낡아버리기 전에 여행 가방을 싸고 싶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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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잘하는 아이는 다르다 - 평범한 아이를 미래형 인재로 만드는 결정적인 힘
강영애 지음 / 라온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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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미술은 물론 육아의 마음가짐을 다잡는데도 도움이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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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잘하는 아이는 다르다 - 평범한 아이를 미래형 인재로 만드는 결정적인 힘
강영애 지음 / 라온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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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이의 문화센터를 등록하며 결정을 못해 한참을 고민했다. 음악을 가르치면 좋을까, 미술을 가르치면 좋을까.  뭐든 다해보면 좋겠지만 여전히 코로나 확진자는 매일 쏟아지고 있고, 아이의 집중력과 나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기에 하나만 선택하려하니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뭔가 큰 숙제 하나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미술은 엄마표로 간다!



<미술 잘하는 아이는 다르다>의 저자 강영애는 25년간 유아교육과 미술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부대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에 미술이 아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생생한 목격담으로 담아냈다. 미술강사 뿐만 아니라 브동화구연가, 독서지도사, 푸드아트심리상담사 등 아이를 지도하는 다방면의 기술을 연마한 저자가 운영하는 홈스쿨 미술 수업 '뽀르파트재'는 미술의 기교만 가르치는 학원이 아닌, 아이의 마음을 열고 생각을 키워주는 상상력 공작소에 가깝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할 미술 재료를 스스로 고르고, 만들고, 이름 붙이는 과정 속에서 더 적극적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변해간다. 이런 과정이 아마도 이 책에 부제인 '평범한 아이를 미래형 인재로 만드는 결정적인 힘'일 것이다.



'1장 마음을 읽는 미술이란 무엇일까?'에서는 저자의 교육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아이들과 관계 쌓기에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상호작용하며 아이가 미술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나아가 타인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도록 이끈다. 미술 수업을 보고 있지만 내가 추구하는 육아와도 일맥상통한 것 같다. 부모는 아이의 독립을 도울 뿐, 아이의 속도를 온전히 존중하며 따라가주자는 것. 그래서 이 미술 수업이 더욱 흥미로웠다. 특히 이 장에서는 미술 재료 고르는 안목도 창의적이고 표현력도 우수한 아이 해솔이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재료 특성을 살려서 개성있게 표현하는 해솔이의 능력은 결국 아이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그 바탕이 아닐까.



"아이들은 원래 경계가 없이 태어난다. 아이들에게 경계를 생각하지 말고 마음껏 표현하게 하자 창의성과 독창성도 자유롭게 빛나는 것을 나는 많은 아이를 가르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 p37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정답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시간이 들더라도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며, 아이들이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도록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실감나는 체험을 하면서 아이들이 실패와 실수를 통한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은 더 애착이 갈 뿐 아니라 성취감과 자신감이라는 뜨거운 에너지가 강물처럼 차오를 테니까 말이다." - p46



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소재로 진행된 저자의 미술 수업 이야기가 이어지며 아이의 마음을 열고 생각을 키우는 저자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다. 명화부터 자연물, 재활용품, 과학과 요리로 새롭게 미술에 접근하고, 자석, 코인티슈, 조약돌과 실 등과 같은 물감이 아닌 재료로 표현의 범위를 확장해가는 아이들. 슈링클스 같은 처음보는 미술재료들은 내 호기심도 자극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마법같은 시간이었을까. 



미술 수업은 또 아이들의 생활 속 사연들을 담아 아이가 겪은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감정의 이름표를 찾아주는 과정은 다름아닌 '경청'과 '공감'이었다. 그렇게만 해도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간다. 이 역시 현실 육아에서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장에는 가족들이 함께 즐겨볼 수 있는 미술 활동들을 다양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그리고 첫 장에 '엄마표 집콕 미술활동표'는 물론 매 챕터마다 어떤 재료와 방식으로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는지 활동예시가 담겨 있어 저자의 수업 노하우를 집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어 좋았다.





사실 엄마표 미술수업을 해볼까하는 요량으로 이 책을 맞이했던 나는 미술이 가진 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고, 저자가 경험한 아이들의 놀라운 변화에 감동했다. 미술 수업 꿀팁도 얻으면서 마치 <어린이라는 세계> 같은 아이들에 대한 진한 애정이 담긴 에세이를 읽은 기분이다.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아이들에 대한 다정한 시선은 아이의 칭얼거림에 지친 하루 끝에 다시 마음을 다잡는 회복제가 되어주었다. 여러모로 참 고마운 책이다.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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