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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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역사상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미국 남부전쟁 시기 이전의 목가적인 삶과 전쟁 시기를 겪으며 철부지에서 강인한 여성이 되어가는 스칼렛 오하라, 그리고 그녀의 곁을 맴돌며 강렬한 러브스토리를 그린 레트 버틀러를 보며 얼마나 가슴이 설렜던가. 하지만 이제 이 영화는 '인종차별적 콘텐츠'라는 딱지가 붙었다. 지난 2020년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미국 스트리밍 사이트 HBO 맥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인종차별'을 미화하고 있다는 이유로 상영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외에도 한때 미국의 위대했던 영웅들은 흑인 노예를 부리고, 노예 제도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동상이 철거되는 굴욕을 받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최고의 교수'를 역임한 미래학자 후안 엔리케스가 쓴 <무엇이 옳은가>는 이러한 지점에서 쓰여진 책인 것 같다. 참 많은 지식인들이 트럼프의 당선과 재임 시기, 그리고 여전히 꽤나 높은 퍼센트로 지지를 받는 현재 상황을 경계하며 성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놓는데, 대부분이 흔들리지 않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강경하게 주장하고 각성하게 만드는 책이라면, 이 책은 과연 지금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진짜로 옳은 것인지를 묻는 참으로 독특한 책이다.



우선 저자는 서문에 자신이 '도덕적 상대주의자'가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윤리는 불변하지 않는 진리가 아니다. 윤리라는 말에는 왠지 인간 본성에 내재한 마땅히 지켜져야 할 무언가인 것 같은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지만 윤리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그 변화의 중심엔 기술이 있다.



'기술은 윤리를 바꾸어놓고, 오래된 믿음들을 향해 문제를 제기하며, 더 이상 성장하거나 변화하지 않는 제도들을 뒤엎는다.' - p18



저자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과거에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됐던 것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웠던 사례들을 수 없이 열거한다. 그리고 앞으로 기술 발전으로 벌어질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길 요구한다. 친밀함이 바탕이 된 섹스를 통해, 사랑의 결실로 생겨나는 새 생명은 이제 시험관 시술로 만들어내는게 당연해졌다. (생각해보니 낭만적 사랑과 결혼 역시 근대적 산물이다.) 이제 기술은 유전자를 편집해서 원하지 않는 특성은 제거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언젠가 기술이 상용화되면 시험관 시술처럼 당연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널리 퍼져 있는 새로운 윤리적 규범이 채택되는 티핑 포인트는 언제나 그렇듯, 단지 문제를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기존 생활방식을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고서도 윤리적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저렴한, 또 적용 가능한 대안을 가지는 것에서 비롯된다." - p92



저자가 주장하듯 기술은 풍요로움과 여유를 가져오고, 이런 여유 속에서 인간은 관대해진다. 그 관대함은 열악한 상황에 처한 존재의 처지를 연민하게 하고, 도덕적으로 불편하게 만든다. 저자는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제일 먼저 노예제도 사라진 것, 산업화가 진행되던 미국 북부에서 노예해방을 지지하기 시작한 것 모두 기술 발전이 윤리를 변화시킨 결과라고 말한다. 이제 기술은 세포배양육을 만들어내며 육식의 종말을 가져올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한때 효율화를 위해 더 고밀집사육을 고안했던 과거를 잊고,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에게까지 그 연민을 던지게 된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미래세대는 우리가 동물을 도축해서 먹던 문화를 가졌다는 것을 비윤리적이라고 혐오스럽게 여길지도 모른다.





윤리는 진화한다. 그것도 아주 쉽게.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이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버리라 충고한다. 지금 옳다고 믿는 것들이 나중에는 낡은 고집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옳음을 행해야 할까? 책 속에 소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절대적' 진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심지어 신자들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진리는 관계성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내면으로부터, 그리고 자기가 놓인 환경과 문화와 삶의 처지에 따라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또 표현합니다." - p195



사실 기술이 윤리를 진화시킨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다름을 대조보면 너무나 극명해서 당연한 얘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책은 드물 것이다. 책 속에 소개된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할 정도다. 



특히 기술 발전으로 인간이 어떻게 개조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부분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더 이상 접촉이 없는 상태로 정자와 난자의 외부 결합으로 태아를 만들고, 임신과 출산의 고통 없이 외부 양수주머니 같은데서 성장시켜 꺼내는, 마치 '멋진 신세계' 같은 일이 정말 벌어질까? 인간 역시 동물과 다르지 않은 존재인데, 본성을 어디까지 거스르며 기계에 가까워지려는 것인지, 과연 그렇게 됐을때 인간다움은 어디서 찾아야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윤리적으로 올바름이 꽤 많이 이슈되고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가 마지막 장에 이 책의 내용은 미국-서구 윤리에 편향되어 있다면서, 윤리적 문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술이 중국에서는 허들없이 쭉쭉 뻗어나가는 상황에 대해서도 거론한다. 동서양의 윤리가 꽤 다르긴 하지만, 중국과 같은 국가의 통제가 엄격해 사생활 보장이 제한되는 나라에서 인간 생명 윤리에 대한 의식이 낮은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이처럼 생각할 거리나 너무나 많은, 그리고 토론하면 좋을 주제들이 알차게 실린, 정말 독서모임에서 읽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독서모임 다시 하고 싶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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