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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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의 방향부터 연예계 이슈까지 연일 가짜뉴스가 우리의 시선을 도배하고 있다. 제멋대로 해석하고, 잘못된 프레임을 씌우고, 희박한 근거에 기대 사실을 날조하는 가짜뉴스들. 예전처럼 언론이 통제되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얻을 방법은 훨씬 쉽고 다양해졌는데 우리는 더욱 진실에 목말라간다. 정말 요즘처럼 '진실'이라는 말이 요원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철학자 오사 빅포르스가 쓴 <진실의 조건>은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진실이 힘을 잃어가는 '포스트 트루스'- 탈진실의 시대에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를 다시 소환시키는 책이다. 그녀는 트럼프와 그 참모들이 거짓말 늘어놓고 그것을 '대안적 진실'이라 말하는 뻔뻔한 모습에 분노하며 이 책을 통해 아주 지적이고 우아하게 그들을 비판한다. 그냥 그들에게는 '지식'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저자는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믿음을 가져야 하고, 둘째 그 믿음이 진실이어야 하고, 셋째 이를 뒷받침할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믿음의 기반을 좋은 근거나 증거에 두지 않'는 '증거 저항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매우 자주 진실에 다가서지 못'한다. 증거 저항적 태도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이나 믿고 싶은대로 믿는 의도적 합리화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자신이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주제와 관련해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뼈 때리는 말이다. 특히 저자의 지적처럼 인터넷 등장 이후 우리는 더욱 잘못된 믿음에 빠져들었다. 요즘 같은 고도화된 AI 알고리즘은 우리를 더욱 보고 싶은 것들만 보게 하고, 다른 의견에는 눈과 귀를 닫아버리다보니 양극화와 분열은 더욱 심해지고 고착되어 간다. 게다가 긴 글을 읽어내지 못하는 새로운 문(해력)맹들은 사실의 맥락을 읽지 못하니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영향력 있는 누군가의 프레임에 쉽게 갇힌다. 나 자신도 이런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 역시 내가 믿는 언론의 보도 방향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것이 진실이라 믿는다. 그리고 내가 명확한 근거도 없이 내 믿음이 옳다고 여긴다. 그러다보니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비이성적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오류를 심심치 않게 범한다. 



"그들의 목표는 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지도자를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를 속이려는 세력은 거짓정보로 우리를 '잘못된 믿음'과 '진실을 외면'하도록 부추겨 더욱 무지하게 만든다. 이때 진실에 대한 의심과 심플한 근거를 복잡하게 만드는 음모론이 동원된다. 책을 보다보면 진실은 너무나 뻔히 존재하고, 그에 반해 거짓정보는 그다지 교묘하지도 않은데도 이렇게 널리 퍼지는 것보면 마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정신을 지배해버리는 유해한 사이비 종교 같이 느껴졌다.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누가 떠먹여주는 것만 손쉽게 받아 먹는 나태함이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게 아닐까.



뜻 밖에도 저자는 절대적 진리에 반해 등장한, 언뜻 다양성을 추구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탈진실 시대와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권력 추구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세력이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고방식과 가치를 내세워 지식 습득을 방해하고 진실에 눈을 가리게 만든다는 것. 중심 권력을 해체하고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만 생각했던 포스트 모더니즘의 역기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새로운 관점이라 무척 신선했다. 



마지막 결론으로 저자가 제안하는 무지에서 깨어나 진실을 찾는 방법은 어쩌면 원론적인 얘기일수도 있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출처의 진위여부와 신뢰성을 확실히 점검하는 것, 토론과 팩트체크. 또 하나의 제안인 전문가 신뢰는 저자가 '한 사람의 이론이 모든 이의 눈을 멀게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했던 것처럼 잘못된 믿음을 가진 전문가도 판을 치기 때문에 사실 방법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다.




 



책은 철학적 사고와 현실 정치 비판 사이를 오가는데, 이론철학 전공자답게 철학적 이론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부분이해를 돕는 예시를 들며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개념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이고, 어떤 건 개념 구분이 모호하게 느껴져서, 쉬운 예시가 오히려 괴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철학은 역시 너무 너무 어렵다. 반면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적 증거 날조, 반이민정책, 진보적 정책의 성과에 대한 폄훼 등 트럼프 행정부의 뻔뻔함을 비판하는 부분은 논리적인 반박에 실체적 증거까지 곁들여져 흥미롭게 읽었다. 



나의 이해력의 한계로 명료하지 못한 부분이 존재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거짓과 왜곡이 범람하는 지금 더 깊은 우물에 빠지기 전에 지식으로 시야를 넓히고 진실을 찾아가게 도와줄 나침반 같은 책이다.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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