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의 유쾌한 철학카페
니콜라스 펀 지음, 이동희 옮김 / 해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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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철학은 어렵게만 느껴졌고, 평생을 두고서도 가까이하지 않을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철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왠지 지루할 것 같고 고리타분할 것 같고, 이상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다 이번 학기에 교양으로 논리 수업을 들으면서 살짝 ‘철학’이라는 것을 접했는데, 아직도 제대로 감은 잡히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흥미가 생겼었다. 뭔가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대단해보이고 저절로 존경심이 생기는 것 같았는데, 책에서는 철학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책의 제목이 ‘유쾌한 철학카페’인 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 대신 조금 쉽게 설명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 사랑이 화학작용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담겨 있었다. 이 책을 보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낯익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빌 게이츠의 이야기라든지 거북이의 경주, 행복에 대한 점수나 귀에 따라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는 이야기, 컴퓨터가 생각을 하는지의 여부, 알코올이 독인지 아닌지, 백조는 정말 하얀지 등 각 장은 이렇게 흥미로운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각각에 맞는 철학적인 사고들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이야기와 관련된 철학자들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철학적 사고까지 엿볼 수가 있다.

 

철학자들은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맞는 말이다. 오죽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철학자들이 모여서 말의 이가 몇이나 될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어린 철학자가 그러지 말고 직접 마구간에 가서 말의 이를 세어 오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 어린 철학자는 바로 쫓겨났다. 과연 직접 세어보는 일 말고 생각만으로 어떻게 말의 이 개수를 헤아릴 수 있을까? 그만큼 철학자들이 사고하기를 즐긴다는 말일 것이다. 아마 그들은 밥 없이는 살아도 생각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할 것 같다.

 

이 책에는 스물다섯 명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을 보여주었던 탈레스, 프로타고라스, 제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베이컨, 데카르트, 루소, 칸트, 밴담, 헤겔, 니체 등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웠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리 긴 것은 아니다. 책 한 권에 스물다섯 명의 이야기가 담겨야 하기에 내용과 이야기, 그리고 사고는 짤막짤막하게 삽입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들 철학자들의 사고가 오롯이 전달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철학적 용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용어들도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친절하게 옮겨져 있고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읽기에 부담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앉은 자리에서 꿀꺽, 하고 단숨에 읽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책이다.

 

철학을 담고 있는 책이란 그런 거라고, 옮긴이가 말했다. 사고하는 방식을 전달하는 것이지, 생각 그 자체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철학 관련 수많은 책들은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대신, 직접 고기를 잡아주고 있다. 그래서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생각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그들의 생각을 바로 전달받기 때문에 더 수용하기가 어렵지 않나 싶다. 거의 암기과목을 암기하는 수준이 되니까 말이다. 옮긴이 역시 그런 아쉬움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이 그런 점에서 좀 더 낫다고도 말하고 있다. 물론 나는 철학서적을 전혀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책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그런 사고 과정이 전달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한 권으로 철학을 섭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철학이라는 공간에 살짝 발을 들였다, 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현상을 놓고서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볼 수 있었고 잘못된 명제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꽤 많은 문제들이 있다. 우리는 매일 알게 모르게, 그리고 크거나 혹은 작은 문제들과 마주치고 맞서 살아간다. 그런 문제 아닌 문제들을 다루는 데도 이런 조금은 철학적인 생각을 곁들여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본다면 뭐든지 더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 같다. 그럼 문제들과 싸우는 것도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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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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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 한을 너무 많이 품고 있는 아이, 그 무거움을 견디기엔 너무 여리고 어렸던 아이, 천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천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완득이>를 읽으면서 작가 김려령을 내 가슴 속에 아주 깊이 각인시켜놓았던 것 같다. 저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바로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제목도 뭔가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우아한 거짓말, 이라니.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게 존재하기나 할까? 우아해 보이기만 한 제목 속에 이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가 들어있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거짓말’, 형체도 없는 것이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소문’이라는 것이 보태어지면, 결과는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더’. 소문, 역시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무서운 속도를 내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아프게 만든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철없는 아이가 등장한다. 식사 도중 다짜고짜 엄마에게 최신 mp3를 사달라고 조른다. 당장 전셋돈 마련하기도 급한데, 엄마는 조금 나중에 사자고 아이를 어르고 달랜다. 하지만 말을 들으려하지 않는다.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처럼만 보였다. 그래, 누구나 사춘기 때에는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조금은 못돼 보이기도 했던 아이, 천지는 그러나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너무 착한 아이, 언제나 참기만 하는 아이. 어디서부터 꼬이고 잘못된 걸까? 천지에게는 둘도 없는 ‘절친’이 있다. 화연. 천지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영악한 아이다. 천지가 전학 오던 날, 활짝 웃어주는 것으로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 둘을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화연은 너무나도 지능적이었고 그만큼 너무나도 유치했다. 표면적으로는 둘도 없는 친구, 천지를 생각하고 위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 더러운 내면에는 악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화연의 끝없는 ‘우아한’ 거짓말, 착하고 순하기만 한 천지를 장난감 취급하는 사악함, 그런 것들은 점점 천지를 절벽 끝으로 내몰았다. 책을 읽으면서 화연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쥐어박고, 이제 그만, 천지를 그만 좀 괴롭히라고 꾸짖고 싶었다. 결국 절벽에 몰린 천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리고 한 줄 털실에 모든 걸 걸고 만다. 왜 꼭 그렇게 궁지로 몰아야 했을까? 무엇을 위해서.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만들어낸 희생자. 천지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담은 쪽지를 다섯 사람에게 남겼다. 다섯 개의 봉인된 실타래는 천지 주변 인물들에게 하나씩 전달되었고,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숨겨져 있던 진실도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천지가 느꼈을 외로움과 슬픔, 괴로움들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혼자서 우울증을 감추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혼자서 괴로움을 삭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먹먹해지기만 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우아한 거짓말을 했을까.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어쩌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몰랐다고,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그런 건 핑계도 합리화도 되지 않는다. 이런 변명으로는 어떤 상처도 아물게 할 수 없다는 걸,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와 천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었다. 슬픈 마음을 갖게 하는 동시에 반성을 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살기엔 시간은 너무 짧고 귀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진실만을 말하며 살기에도 충분하다. 지금부터라도 어딘가에 꽂아두었을지 모르는 비수를 조심스레 뽑아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어야겠다.

 

 

 

비수 푹 꽂아놓고, 아니야? 그럼 말고.

그거 사람 잡는 거야.

너는 취소했다고 하면 끝이겠지만,

비수 뽑은 자리에 남은 상처는 어떻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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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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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책이든 줄거리만큼이나 제목에 애정을 갖게 된다. ‘달의 문’이라는 제목, 정말 분위기 있게, 그리고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제목에서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매혹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비행기 납치를 기본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비행기 납치? 흔한 소재다. 그렇지만 ‘달의 문’에서의 비행기 납치는 의도도, 진행 방식도, 과정도, 그리고 결론도 흔한 소재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읽으면 읽을수록 사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비행기 납치, 살인 사건, 재생의 세계가 정말 묘하게 어우러져 ‘달의 문’이라는 한 편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전설적인 인물 이시마네 다카시, 그저 캠프를 주최하는 ‘아저씨’에 불과하지만, 이상하고 신비롭게도 그와 대면하는 순간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맹목적으로 그를 따르고 그에 의지하게 된다. 캠프에서 그가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상처받은 아이들과 함께 놓아주는 것 정도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정말 며칠 만에 씻은 듯이 상처를 치유 받고, 바르게 성장하여 유명인사가 되는 등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이룬다. 그리고 자신과 대화를 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호의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이시마네 역시 참 매력적인 ‘스승님’ 같다.

한편 ‘재생의 공간’이라는 것을 믿는 이시마네는 개기일식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하필 납치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혀간다. 이로써 이시마네를 재생의 공간으로 보내기 위한 대단한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실행된다. 그를 따르는 세 명에 의해서. 사토미와 가키자기, 그리고 마카베이다. 비행기 납치를 계획하고 계획대로 척척 행동에 옮기는 것을 보면서 정말 믿음이라는 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납치에 대한 계획도 대단했지만 철저한 준비성과 무서우리만치 침착한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밉거나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서 순수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진정으로 순수했다. 물론 나중에야 악의든 살의든 서서히 밝혀지지만 적어도 대부분은 순수성을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이 좋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제 비행기 안,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어가던 도중에, 예상치 못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때 목격자이자 앞으로의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자마미 군’이 등장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 중에서 내가 제일 매력을 느꼈던 캐릭터이기도 하다. 빠르게 회전하는 두뇌하며, 인질이 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하며, 납치범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해버리는 대담함하며, 어떤 상황이든 자신이 이용할 수 있도록 머리를 쓰는 아이디어하며,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이제 이야기는 거의 이 천재적인 인물, 자마미 군에 의해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추리력과 생각해내는 가능성은 무릎을 칠 만큼 기발하고 ‘천재적이다’. 탐정기가 다분한 자마미의 모습을 내 마음대로 이렇게 생겼을 거야, 하고 상상해본다. 읽는 재미가 더욱 커질 수밖에...

 

살의와 악의.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나쁘다고 구분해서 말할 수 있을까? 마주보고 있는 사람의 눈에서 살의를 읽는다면, 혹은 악의를 느낀다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도 일었다. 그리고 동기가 옳다면 비행기 납치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사건의 전개와는 별도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달의 저편에는 정말 재생의 공간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실종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 실종된 사람들이 정말 달의 저편으로 간 것일까? ‘달의 문’은 정말 많은 수수께끼들을 내게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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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카를르 아데롤드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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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내키는 기분에 따라 책을 고르는 편이다.
어떤 기분이었는지까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을 때 이 책의 제목을 봤었나보다. 냉큼 집어온 걸 보니. 참 기가 막힌 제목이다.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보로 취급된다. 주문한 음식을 빨리 가져다주지 않는 종업원, 뻥 뚫린 도로에서 느릿느릿 달리는 운전자, 빨리 좀 해결해 줬으면 하는 민원을 계속 지체시키는 공무원들... 

 

그리고 우리는 점점 참을성이란 것을 잃어가고 있다. ‘타인’이 내게 피해를 주는 꼴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아침부터 공사를 한답시고 소란을 피워 단잠을 깨우는 이웃들, 갈 길이 바쁜 시민들을 위협하는 불한당 같은 길거리의 노숙자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단 사실은 생각도 못하고 아이들이 소란피우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부모들...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의 주인공은 이런 세상에 점점 염증을 느껴가고 있었다. 그러다 옆집에서 제멋대로 건너온 고양이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면서 앞으로의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어버리고 만다. 의문으로 가득한 고양이의 죽음, 그 사건을 시작으로 평소엔 왕래는커녕 인사조차 하지 않던 주민들이 똘똘 뭉치기 시작한다. 이제 주인공은 생각한다. 자신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의 ‘애완동물 없애기’는 시작된다. 주민들의 연대감은 끝을 모르고 높아지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 전개에 주인공은 흡족해한다. 그렇게 애완동물들의 희생으로 주인공의 뜻이 이루어지고 주민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해피엔딩이었다면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버렸을 것이다. 그럼 너무 시시한 이야기가 돼버리잖아.

 

자꾸만 그의 신경을 긁는 수위 아주머니가 복병이 되어 이제 골칫거리가 되고 그는 골칫거리, 즉 바보들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자신의 완벽했던 계획을 일순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수위 아주머니의 입을 평생 열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그는 이제 본격적인 ‘바보사냥’에 나선다. 바보들이 더 이상 바보짓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으로 말이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이건 뭐, 한 편의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점점 미쳐가는 듯한 주인공을 보면서 가서 붙들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혹시라도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물론 없겠지. 그런데도 이 책의 이야기 자체는 전혀 소름 돋도록 무섭지도, 회색 천지처럼 우울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았다.

 
마치 ‘묻지 마 살인’처럼 보이는 주인공의 행각들은 시간이 흐르고 살인이 거듭되면서 점차 개념으로 정의되고, 철학으로 다시 태어난다.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주인공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드는 바보들은 ‘씹-새’로 정의되고 이들은 ‘센티멘탈 씹새, 어리버리 씹새, 유전적 씹새, 은퇴 씹새’등으로 유형화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한 번 씹-새는 영원한 씹-새’라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살인 철학의 기준에 따라 계속해서 바보 제거를 감행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한다. ‘내가 누군가의 짜증나는 씹-새인 것은 아닐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그의 범행도 서서히 정체가 밝혀지게 된다.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짜증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마주치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군가 짜증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가 더 이상 짜증나게 굴지 않게 없애버린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우리는 극단적인 쪽보다는 세상과 타협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 같다.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참 많은 메시지를 남겨놓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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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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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 ‘과거’의 내가 있을 테고, 또 다른 어딘가에는 ‘미래’의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겠지. 누구나 한번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혹은 미래로 날아가 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적이 있을 거다. 생각할수록 신비롭고 새로운 세계인 것 같다.

 

오랜만에 정말 슬픈 영화가 개봉을 했다. 여기에는 시간여행을 하는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영화관은 그야말로 울음바다였다. 과거, 그리고 가까운 미래로의 시간여행을 그린 이야기지만 절대 공상과학 영화가 아닌 슬프고 애절한 로맨스였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시간일탈장애’라는 소재를 가지고 그린 남녀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장애’를 갖고 있는 헨리. 때로는 장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단점이 되기도 하는 바로 ‘그것’ 덕분에 헨리는 과거의 어린 헨리의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어주기도 하고, 미래의 어른 헨리의 동지가 되기도 한다. 미래의 나와 친구처럼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활동도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정말 신나는 일일 것 같다.



그리고 헨리의 그런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클레어.

어느 날, 여섯 살 클레어의 눈앞에 벌거벗은 헨리가 나타난다. 헨리는 이십여 년을 거슬러 과거로 날아왔기 때문에 클레어에게 비쳐지는 그는 까마득한, 그리고 웬 이상한 아저씨다. 게다가 벌거벗은 모습으로 ‘짠!’하고 나타났으니 놀랄 수밖에. 그렇게 한편으론 두렵고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한 둘의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클레어는 미래에서 자신을 보기 위해(?) 날아오는 헨리를 점점 믿고 의지하게 되며, 결국엔 그와 사랑에 빠진다. 클레어를 ‘키운 것’이 어쩌면 헨리, 라는 생각을 해보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자신의 남편이 어려서부터 자신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숙제도 도와주고 외국어도 가르쳐주고, 슬플 땐 위로를 해주고, 부모님처럼 이끌어준다는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이 다 벅차오른다.

 

시간 여행을 이야기로 담은 책이기 때문에,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철저하게 시간, 즉 날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날짜, 헨리의 나이, 그리고 클레어의 나이가 이들 이야기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 클레어가 지금 미래의 헨리와 함께하는 시간을, 현재의 헨리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 부분이 이해 속도가 느린 내게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많이 버벅거렸다. 그렇지만 헨리의 시간 여행 원리를 이해하게 된 순간부터는, 정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이야기 속에 푹 빠져버렸다. 정말 천재적인 작가다!

 

둘은 정말 끔찍이도 서로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때로는 귀엽기도 때로는 사랑스럽기도 했으며, 때로는 가슴 저릴 듯 속상하고 애절하기도 했다. 순식간에 옷가지만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알 수 없는 시간 여행을 떠나버린 헨리를 기다리면서 클레어는 얼마나 막막하고 무서웠을까. 함께 자다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의 잠옷만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을까. 때로는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헨리를 보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언제 현재로 돌아올지 모르는 헨리를 기다리면서 클레어는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또 한편으로 헨리는 얼마나 더 두려웠을까. 어느 시간대로 어떤 곳으로 시간 여행을 한 지도 모르고 벌거벗은 채 ‘쿵’ 떨어진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든 괴로움일 것이다. 항상 두려움과 긴장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나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헨리는 스스로에게 도둑질을 가르쳤고 싸움의 기술을 익히게 해야 했으며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어야만 했다. 이것들은 오직 생존을 위해 헨리가 체득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그러지 못하면 영영 온전하게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끝이 언제인지를 알고 산다는 건 어쩌면 좋은 건지도, 또 어쩌면 비극적인지도 모르겠다. 헨리와 클레어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조금은 남달랐을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일분일초 소중히 어루만지고 아꼈던 시간, 그리고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열렬히 쏟아 부었던 열정과 사랑을 함께 지켜보면서 기다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더불어 릴케의 시 구절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말 뜬금없이, 나도 다음 주로 날아가 로또번호를 외워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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