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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카를르 아데롤드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그때그때 내키는 기분에 따라 책을 고르는 편이다.
어떤 기분이었는지까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을 때 이 책의 제목을 봤었나보다. 냉큼 집어온 걸 보니. 참 기가 막힌 제목이다.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보로 취급된다. 주문한 음식을 빨리 가져다주지 않는 종업원, 뻥 뚫린 도로에서 느릿느릿 달리는 운전자, 빨리 좀 해결해 줬으면 하는 민원을 계속 지체시키는 공무원들...
그리고 우리는 점점 참을성이란 것을 잃어가고 있다. ‘타인’이 내게 피해를 주는 꼴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아침부터 공사를 한답시고 소란을 피워 단잠을 깨우는 이웃들, 갈 길이 바쁜 시민들을 위협하는 불한당 같은 길거리의 노숙자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단 사실은 생각도 못하고 아이들이 소란피우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부모들...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의 주인공은 이런 세상에 점점 염증을 느껴가고 있었다. 그러다 옆집에서 제멋대로 건너온 고양이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면서 앞으로의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어버리고 만다. 의문으로 가득한 고양이의 죽음, 그 사건을 시작으로 평소엔 왕래는커녕 인사조차 하지 않던 주민들이 똘똘 뭉치기 시작한다. 이제 주인공은 생각한다. 자신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의 ‘애완동물 없애기’는 시작된다. 주민들의 연대감은 끝을 모르고 높아지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 전개에 주인공은 흡족해한다. 그렇게 애완동물들의 희생으로 주인공의 뜻이 이루어지고 주민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해피엔딩이었다면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버렸을 것이다. 그럼 너무 시시한 이야기가 돼버리잖아.
자꾸만 그의 신경을 긁는 수위 아주머니가 복병이 되어 이제 골칫거리가 되고 그는 골칫거리, 즉 바보들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자신의 완벽했던 계획을 일순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수위 아주머니의 입을 평생 열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그는 이제 본격적인 ‘바보사냥’에 나선다. 바보들이 더 이상 바보짓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으로 말이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이건 뭐, 한 편의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점점 미쳐가는 듯한 주인공을 보면서 가서 붙들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혹시라도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물론 없겠지. 그런데도 이 책의 이야기 자체는 전혀 소름 돋도록 무섭지도, 회색 천지처럼 우울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았다.
마치 ‘묻지 마 살인’처럼 보이는 주인공의 행각들은 시간이 흐르고 살인이 거듭되면서 점차 개념으로 정의되고, 철학으로 다시 태어난다.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주인공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드는 바보들은 ‘씹-새’로 정의되고 이들은 ‘센티멘탈 씹새, 어리버리 씹새, 유전적 씹새, 은퇴 씹새’등으로 유형화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한 번 씹-새는 영원한 씹-새’라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살인 철학의 기준에 따라 계속해서 바보 제거를 감행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한다. ‘내가 누군가의 짜증나는 씹-새인 것은 아닐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그의 범행도 서서히 정체가 밝혀지게 된다.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짜증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마주치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군가 짜증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가 더 이상 짜증나게 굴지 않게 없애버린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우리는 극단적인 쪽보다는 세상과 타협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 같다.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참 많은 메시지를 남겨놓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