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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어떤 책이든 줄거리만큼이나 제목에 애정을 갖게 된다. ‘달의 문’이라는 제목, 정말 분위기 있게, 그리고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제목에서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매혹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비행기 납치를 기본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비행기 납치? 흔한 소재다. 그렇지만 ‘달의 문’에서의 비행기 납치는 의도도, 진행 방식도, 과정도, 그리고 결론도 흔한 소재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읽으면 읽을수록 사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비행기 납치, 살인 사건, 재생의 세계가 정말 묘하게 어우러져 ‘달의 문’이라는 한 편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전설적인 인물 이시마네 다카시, 그저 캠프를 주최하는 ‘아저씨’에 불과하지만, 이상하고 신비롭게도 그와 대면하는 순간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맹목적으로 그를 따르고 그에 의지하게 된다. 캠프에서 그가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상처받은 아이들과 함께 놓아주는 것 정도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정말 며칠 만에 씻은 듯이 상처를 치유 받고, 바르게 성장하여 유명인사가 되는 등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이룬다. 그리고 자신과 대화를 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호의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이시마네 역시 참 매력적인 ‘스승님’ 같다.
한편 ‘재생의 공간’이라는 것을 믿는 이시마네는 개기일식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하필 납치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혀간다. 이로써 이시마네를 재생의 공간으로 보내기 위한 대단한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실행된다. 그를 따르는 세 명에 의해서. 사토미와 가키자기, 그리고 마카베이다. 비행기 납치를 계획하고 계획대로 척척 행동에 옮기는 것을 보면서 정말 믿음이라는 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납치에 대한 계획도 대단했지만 철저한 준비성과 무서우리만치 침착한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밉거나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서 순수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진정으로 순수했다. 물론 나중에야 악의든 살의든 서서히 밝혀지지만 적어도 대부분은 순수성을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이 좋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제 비행기 안,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어가던 도중에, 예상치 못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때 목격자이자 앞으로의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자마미 군’이 등장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 중에서 내가 제일 매력을 느꼈던 캐릭터이기도 하다. 빠르게 회전하는 두뇌하며, 인질이 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하며, 납치범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해버리는 대담함하며, 어떤 상황이든 자신이 이용할 수 있도록 머리를 쓰는 아이디어하며,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이제 이야기는 거의 이 천재적인 인물, 자마미 군에 의해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추리력과 생각해내는 가능성은 무릎을 칠 만큼 기발하고 ‘천재적이다’. 탐정기가 다분한 자마미의 모습을 내 마음대로 이렇게 생겼을 거야, 하고 상상해본다. 읽는 재미가 더욱 커질 수밖에...
살의와 악의.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나쁘다고 구분해서 말할 수 있을까? 마주보고 있는 사람의 눈에서 살의를 읽는다면, 혹은 악의를 느낀다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도 일었다. 그리고 동기가 옳다면 비행기 납치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사건의 전개와는 별도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달의 저편에는 정말 재생의 공간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실종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 실종된 사람들이 정말 달의 저편으로 간 것일까? ‘달의 문’은 정말 많은 수수께끼들을 내게 남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