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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속에 한을 너무 많이 품고 있는 아이, 그 무거움을 견디기엔 너무 여리고 어렸던 아이, 천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천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완득이>를 읽으면서 작가 김려령을 내 가슴 속에 아주 깊이 각인시켜놓았던 것 같다. 저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바로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제목도 뭔가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우아한 거짓말, 이라니.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게 존재하기나 할까? 우아해 보이기만 한 제목 속에 이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가 들어있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거짓말’, 형체도 없는 것이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소문’이라는 것이 보태어지면, 결과는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더’. 소문, 역시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무서운 속도를 내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아프게 만든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철없는 아이가 등장한다. 식사 도중 다짜고짜 엄마에게 최신 mp3를 사달라고 조른다. 당장 전셋돈 마련하기도 급한데, 엄마는 조금 나중에 사자고 아이를 어르고 달랜다. 하지만 말을 들으려하지 않는다.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처럼만 보였다. 그래, 누구나 사춘기 때에는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조금은 못돼 보이기도 했던 아이, 천지는 그러나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너무 착한 아이, 언제나 참기만 하는 아이. 어디서부터 꼬이고 잘못된 걸까? 천지에게는 둘도 없는 ‘절친’이 있다. 화연. 천지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영악한 아이다. 천지가 전학 오던 날, 활짝 웃어주는 것으로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 둘을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화연은 너무나도 지능적이었고 그만큼 너무나도 유치했다. 표면적으로는 둘도 없는 친구, 천지를 생각하고 위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 더러운 내면에는 악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화연의 끝없는 ‘우아한’ 거짓말, 착하고 순하기만 한 천지를 장난감 취급하는 사악함, 그런 것들은 점점 천지를 절벽 끝으로 내몰았다. 책을 읽으면서 화연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쥐어박고, 이제 그만, 천지를 그만 좀 괴롭히라고 꾸짖고 싶었다. 결국 절벽에 몰린 천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리고 한 줄 털실에 모든 걸 걸고 만다. 왜 꼭 그렇게 궁지로 몰아야 했을까? 무엇을 위해서.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만들어낸 희생자. 천지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담은 쪽지를 다섯 사람에게 남겼다. 다섯 개의 봉인된 실타래는 천지 주변 인물들에게 하나씩 전달되었고,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숨겨져 있던 진실도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천지가 느꼈을 외로움과 슬픔, 괴로움들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혼자서 우울증을 감추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혼자서 괴로움을 삭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먹먹해지기만 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우아한 거짓말을 했을까.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어쩌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몰랐다고,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그런 건 핑계도 합리화도 되지 않는다. 이런 변명으로는 어떤 상처도 아물게 할 수 없다는 걸,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와 천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었다. 슬픈 마음을 갖게 하는 동시에 반성을 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살기엔 시간은 너무 짧고 귀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진실만을 말하며 살기에도 충분하다. 지금부터라도 어딘가에 꽂아두었을지 모르는 비수를 조심스레 뽑아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어야겠다.
비수 푹 꽂아놓고, 아니야? 그럼 말고.
그거 사람 잡는 거야.
너는 취소했다고 하면 끝이겠지만,
비수 뽑은 자리에 남은 상처는 어떻게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