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김용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광개토태왕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역사에서, 특히 고구려 역사에서 빼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인물이고, 우리나라의 자존심이라고 할 만큼 우리나라의 영토 확장에 공을 세운 위인이다. 어렸을 때는 광개토왕이라는 이름으로 배웠었다. 그리고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처음으로 광개토왕에 초점을 맞추어 제대로 배우고 접했었던 것 같다. 그래봐야 정해진 수업시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배운 것은 광개토태왕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의 굵직굵직한 이야기만 알고 있을 뿐, 그의 삶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했다거나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이 책을 통해 광개토태왕의 업적과 인생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라며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은 독자가 광개토태왕과 그의 시대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가 왜 그렇게 살았고, 어떻게 그 일을 성취할 수 있었으며, 왜 이런 일은 하지 않았는지 되묻고,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역사에 남을 업적을 쌓았는지 규명함으로써 그 인물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을 찾는 것이 과거 인물을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자는 광개토태왕이 정복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가 이룬 성과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광개토태왕릉비문」을 다루고, 2장에서는 광개토태왕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모용선비(慕容鮮卑)와 고구려사를 다루고, 3장에서는 태학 설립, 불교 공인, 율령 반포와 광개토태왕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4장에서 10장까지에는 광개토태왕의 정복 활동이 실려 있었다. 11장에는 광개토태왕의 사람들이 다루어져 있었고, 12장에는 그의 국가 경영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3장에 저자의 평을 담아 놓았다. 또 책의 후반부에는 「광개토태왕릉비문」의 원문과 번역문이 덧붙여 실려 있다. 곳곳에 사진과 지도를 실어 놓아 눈으로 보면서 책을 따라갈 수 있어 더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었다.


첫 부분을 읽으면서부터 화가 났다. 물론 교양 수업 시간에 「광개토태왕릉비문」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교수님께서도 총 수업시간의 1/3을 「광개토태왕릉비문」 강의에 투자하셨을 만큼,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일본의 제멋대로인 「광개토태왕릉비문」 해석에 정말 할 말을 잃었었다. 새겨진 글자가 조금이라도 더 잘 보존되었더라면, 우리가 좀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더라면, 빠른 대응을 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그 사실을 접하니 또 한 번 가슴 속에 속상함과 분노가 이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광개토태왕에 대한 자료가 많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거의 잊힌 왕이었다는 사실도 상당히 놀라웠고 또 많이 속상했다. 왕 중의 왕, ‘태왕’이라는 칭호를 가졌을 만큼 위대한 우리나라의 왕이었는데, 후세에 후손들로부터 업적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땅속에서도 많이 섭섭해하시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광개토태왕, 하면 우선 정복활동이 떠오른다. 그만큼 영토 확장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국가 안을 다지는 것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그의 일상에 대해 알려진 자료가 많이 없어 인간 담덕에 대해서는 많이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분명 우리나라의 위대한 왕이었다. 그리고 고구려사를 포함한 한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그래서 참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대한 그 어떤 소개보다도 실제 범죄자와 전직 기자의 문제적 결합, 모든 스릴러 작가가 꿈꿔온 극한의 리얼리티라는 말은 책에 대한 호기심을 극대화시키는 데 충분하고 차고 넘쳤다. 띠지의 소개에 속아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에는 넘어가고 마는 것 같다. 이번에는 다행스럽게도(?) 그 극한의 이야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소녀가 입구를, 혹은 막 들어선 목격자를 쳐다보고 있다. 그 눈빛은 분명 공허하지만 소름을 돋우는 것이었다. 타의로 벗겨진 옷들은 소녀 옆에 가지런히 개어 있다. 흙과 먼지와 피와 남자의 정액이 뒤엉킨 채로 소녀의 몸에 들러붙어 있다. 그러나 소녀의 발과 구두만큼은 방금 씻은 것처럼 깨끗하다. 거기에서는 타액이 검출된다. 남자는 소녀의 발과 구두를 핥고 빨았던 것이다. 그리고 온갖 도구를 이용해 소녀를 겁탈했다. 그렇게 마리아 스탄크치크와 이다, 두 소녀는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굉장히 끔찍하고 무섭고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책의 첫 부분부터 이렇게 지독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동성애자 벤트 룬드가 벌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는 이송 중 탈옥을 했다. 480여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인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싶었다.


이 책 <비스트>에는 장면이 전환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교도관의 하루가 펼쳐지기도 하고, 경찰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딸과 함께 사는 평범한 한 남자, 프레드리크의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감옥 안의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그들 모두는 저마다의 과거와 사정들을 떠안고 있었다. 전부가 서로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치밀하게. 그렇게 탈옥한 벤트 룬드는 새로운 아이들을 물색하고 나섰고, 바로 프레드리크의 딸 마리가 또 다른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프레드리크를 지켜보면서 느낀 게 있다면, 사랑하는 아이의 죽음은 분노와 비현실적인 감각과 비탄을 불러올 테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죄책감이라는 감옥에 가둔다는 점이었다.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더라면, 늦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일을 잠시 미뤄뒀었더라면 등의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가 프레드리크를 잠식해갔다. 점점 망가져 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시체로 발견된 마리의 이야기를 접했던 것만큼이나 힘들게 느껴졌다.


프레드리크는 결국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벤트 룬드 처벌에 직접 나선다. 그리고 완벽한 복수까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벤트 룬드의 손에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한 아버지의 복수를 끝으로 이야기는 마지막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국면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방향은 읽으면 읽을수록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나서 도저히 그대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속에서 분노라는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 같아 짜증이 인다.


과연 벤트 룬드의 목숨도, 그 더럽고 사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목숨도 소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목숨이 소중하기 때문에 법대로 프레드리크를 처벌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기 전 프레드리크가 연쇄성폭행살인범을 죽인 것이 꼭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일일까? 희생자의 아버지로서 그 정도의 위안은 삼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매기만 했다. 쉽게 정답이라 외칠 수 없는 질문들로만 가득해져서 더 답답했다.


이 책은 앞서 말했듯 공동저자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 중 한명은 지금은 모든 더러운 것에서 손을 떼었다고 해도 실제 범죄자였다. 그래서 감옥 내에서의 생활에 대한 묘사 등이 상당히 상세하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공동 목표가 충분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통찰력과 재미로 무장한 범죄소설을 씀으로써 기존의 스릴러 독자들을 비롯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도 끌어안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의 범죄가 몰고 오는 여파를, 고통을 이 책을 통해 정말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어공주 이야기
김종호 지음, 허남준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아름답고 음란하며 동시에 윤리적인 책이라고 책 표지에 쓰여 있었다. 이 말은 이 책을 읽기 전 책에 대한 기대를 한껏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인어공주 이야기에서 그런 것들을 찾아볼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도 동시에 일었다.


그러나, 그동안 알고 있던, 생각하고 있던 인어공주는 이 책 <인어공주 이야기> 속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가 약간의 재해석을 가미해 출간된 적은 많이 있었지만, <인어공주 이야기>와 같은 책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였다. 누가 말하고 있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고,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금 말하고 있는 등장인물의 정체까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문장들의 나열에 읽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머릿속에 들어왔지만, 한 장을 더 읽으면, 한 문장을 더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진짜 기대했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 책을 놓지 못하고 계속 집착했다. 그러나 결국 이야기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그저 헤맬 뿐이었다. 결국 나는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문자만 하나하나 짚어나갔을 뿐이었다.


자궁도 없는 사내가 자꾸만 잉태하고 유산한다. 열자마자 사라지고 사라져야만 나타나는 검은 소설처럼. -김태용/소설가

이것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함께 이야기의 실상에 다다르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함께 이야기의 저편으로 건너가는 이야기이다. -이준규/시인

등의 추천사를 받은 책이다. 아름답고 음란하며 동시에 윤리적인 책이라고 분명히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고, 그 속에 녹아들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 중 나만의 문제인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이 책과 조금의 소통도 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장까지 읽고 허무하게 책장을 덮었을 때는 정말 많이 아쉽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국어로 된 글을 읽은 것인데, 이렇게 이해를 못할 수도 있는지가 정말 의문스러웠다.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기 위해 이 책을 두 번 읽어볼 용기는 아직까지 나지 않는다. 언젠가 이 책을 다시 읽어볼 용기가 생기기를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릭 미
고예나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20대의 사랑과 삶, 점점 무미건조해져만 가는 삶 속에서 무엇이라도 그 의미를 찾아보겠다고 휘청대며 매달리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 있었다.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였다. 애처롭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모습이 처해진 환경은 다르더라도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등장인물들은 각각 조금 노골적이고 당돌한 여자들로 설정되어 있었다. 하나의 장편 소설이지만 그 속에 열 한편의 이야기가 들어있고, 네 명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 정연희와 친구 배유리, 박성아, 그리고 운동을 통해 알게 된 동생 한지현의 이야기가 나의 눈을 통해 각각의 인물을 중심으로 번갈아가며 전개되었다. 남성 편력이라는 제목 아래 한지현의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운동 메이트를 구한다는 클럽의 글을 보고 다이어트보다는 운동이 하고 싶어 지현을 만났다. 너무 뚱뚱해서 눈과 코가 얼굴에 파묻혀 답답한 인상을 주던 지현은 그러나 남성편력이 심했다. 정치인부터 연구원, 대학생 가리지 않고 채팅을 하며 문자를, 연락을 주고받았다. 물론 온라인상에서만. 지현은 누구도 오프라인에서 만나려 하지 않았다. 동시에 연락하는 남자의 수가 굉장히 많음에도 그녀는 전혀 그들 사이에서 헷갈려 하지 않았고 그저 평가하기에 바빴다.


도서관 사서인 성아는 낮에는 조용하고 정적인 공간에서 말 없고 단정하고 말쑥하게 업무를 처리하다 밤이 되면 섹스 파트너를 만난다. 주로 인터넷에서 만나 약속 장소를 정하고 모텔이나 호텔로 향해 섹스를 한다. 때로는 파트너에게 변태 성향이 있어 색다른 경험을 했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운명을 너무 지나치게 믿는 유리. 랜덤 채팅이 유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호기심에 채팅을 하게 됐고 그곳에서 또 한 번의 운명을 만났다. 너무 운명의 상대가 많았던 탓에 친구들의 반응은 언제나 시큰둥했지만 유리는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신이 나 조잘거리곤 했다.


그리고 나 정연희. 남들에게 비치는 모습은 성실한 인터넷 논술 선생님이다. 그러나 그녀만 알고 있는 비밀 중에는 키스방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정연희가 있었다. 말이 논술 선생님이지 매달 학생들이 수업을 연장할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많은 학생들을 끌어 모을 수 있도록 영업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생활 감당이 안 되는 형편이었다. 그녀 생각으로는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키스방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사랑받아본 적 없는 사람도 왔고, 유부남도 왔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 돈을 매개로 혀를 섞고 대화를 나누는 곳에서, 연희는 팁도 받고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엄마도, 친구들도, 그 누구도,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네 명의 여자들이 각각의 삶을, 그리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건들을 겪는 모습이 이 책에 그려져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언제나 저자의 화두는 그것이었다고. 인간의 이중성을 들여다볼 때, 판도라 상자를 열었을 때처럼 가슴이 뛴다고도 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가슴 속에 어느 정도의 비밀은 있다고 생각을 한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비밀의 농도와 진실이라는 점에 있어서 언젠가는 드러나도 무방한 비밀이 되거나, 절대로 내세울 수 없는 비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세울 수 없는 비밀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위선의 모습을 띄고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또 하나의 인간의 이중성이 그 사람 안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중성이라는 것이 언제나 나쁜 의미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 모두 겉과 내면에서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를 나쁜 것이라고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이중적이니까. 이 책을 읽은 나와 우리를 응원하고 또 이 책의 주인공들을 응원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과 가면의 룰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라는 책으로 처음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책을 접했었다. 극적이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너무 차분하고 차분하게 그려져 있어 더 없이 음산하고 우울하게 느껴졌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모두에게 존재 가치가 과연 있는 것인가에 대해 아마 많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악과 가면의 룰>을 통해 저자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어느 형사의 고백 비슷한 글로 이 책은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과거로 돌아간다. 열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구키 후미히로는 아버지 구키 쇼조로부터 무서운 말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거대 군수산업을 이끌고 있는 재벌이다. 그런 아버지가 후미히로에게 14살이 되면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후미히로를 사(邪)로 만들겠다고.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게 ‘지옥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보통은 아닌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어린 후미히로는 사실 막연한 두려움만 느꼈을 뿐, 아마 정확한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말과 함께 수양딸로 데려온 한 여자 아이, 구키 가오리가 있었다. 후미히로는 자연스럽게 가오리와 함께 어울리며 생활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결국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지옥을 맛보게 되기까지 일 년을 남겨두고 있었을 때, 아버지 앞에서 가오리가 강압에 못 이겨 옷을 벗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아버지가 보여주겠다던 지옥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끼게 된다. 후에 아버지가 가오리를 겁탈하는 것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 후미히로는 자신이 ‘사’가 되는 것을 막고, 아버지가 가오리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버지를 죽인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행하려는 악을 없애기 위해 결국은 스스로 악을 행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말처럼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내면으로 맞아들이게 된 후미히로는 몇 년을 지옥 속을 헤매다 유능한 성형외과 의사를 통해 얼굴을 갈아엎는 수술을 한다. 후미히로라는 존재를 없애버리고 이미 죽은 사람의 얼굴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후미히로는 신타니 고이치가 되었다.


그후에도 후미히로는 신타니 고이치라는 이름으로 가오리를 찾는다. 결국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 곁에 위험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낀 후미히로는 또 한 번 위험의 싹을 잘라버린다. 그렇게 구키 가오리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해가 되는 인물은 제거된다, 후미히로에 의해서. 사건에는 경찰도 개입이 되고 후미히로의 형도 개입되면서 점점 실체가 드러나고 커져간다. 후미히로에게 있어서 가오리는 최고의 가치였다. 그렇기에 최고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는 어떤 악을 행하는 것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비교적 빠르게 읽을 수 있는 편이었고, 사건의 전개 자체도 어렵지 않았고 막힘없었다. 그러나 후미히로가 행하는 행동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책을 읽는 동안에도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해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기로부터 구하려고 했던 그의 행동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악을 없애기 위한 악을 행한다면, 과연 그 행한 악을 옳은 것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무엇이 진짜 악이고, 무엇이 나쁜 악이고, 무엇이 덜 나쁜 악인지, 또 좋은 악도 있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후미히로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도 가슴 속에 남았다. 그의 행동이 나쁜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또 반대로 생각했을 때 그럼 힘없는 그의 처지에서 지켜보고만 있었어야 했느냐하면 그것 또한 아님이 분명했다. 참 어려운 이야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