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대한 그 어떤 소개보다도 실제 범죄자와 전직 기자의 문제적 결합, 모든 스릴러 작가가 꿈꿔온 극한의 리얼리티라는 말은 책에 대한 호기심을 극대화시키는 데 충분하고 차고 넘쳤다. 띠지의 소개에 속아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에는 넘어가고 마는 것 같다. 이번에는 다행스럽게도(?) 그 극한의 이야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소녀가 입구를, 혹은 막 들어선 목격자를 쳐다보고 있다. 그 눈빛은 분명 공허하지만 소름을 돋우는 것이었다. 타의로 벗겨진 옷들은 소녀 옆에 가지런히 개어 있다. 흙과 먼지와 피와 남자의 정액이 뒤엉킨 채로 소녀의 몸에 들러붙어 있다. 그러나 소녀의 발과 구두만큼은 방금 씻은 것처럼 깨끗하다. 거기에서는 타액이 검출된다. 남자는 소녀의 발과 구두를 핥고 빨았던 것이다. 그리고 온갖 도구를 이용해 소녀를 겁탈했다. 그렇게 마리아 스탄크치크와 이다, 두 소녀는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굉장히 끔찍하고 무섭고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책의 첫 부분부터 이렇게 지독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동성애자 벤트 룬드가 벌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는 이송 중 탈옥을 했다. 480여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인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싶었다.


이 책 <비스트>에는 장면이 전환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교도관의 하루가 펼쳐지기도 하고, 경찰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딸과 함께 사는 평범한 한 남자, 프레드리크의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감옥 안의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그들 모두는 저마다의 과거와 사정들을 떠안고 있었다. 전부가 서로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치밀하게. 그렇게 탈옥한 벤트 룬드는 새로운 아이들을 물색하고 나섰고, 바로 프레드리크의 딸 마리가 또 다른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프레드리크를 지켜보면서 느낀 게 있다면, 사랑하는 아이의 죽음은 분노와 비현실적인 감각과 비탄을 불러올 테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죄책감이라는 감옥에 가둔다는 점이었다.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더라면, 늦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일을 잠시 미뤄뒀었더라면 등의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가 프레드리크를 잠식해갔다. 점점 망가져 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시체로 발견된 마리의 이야기를 접했던 것만큼이나 힘들게 느껴졌다.


프레드리크는 결국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벤트 룬드 처벌에 직접 나선다. 그리고 완벽한 복수까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벤트 룬드의 손에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한 아버지의 복수를 끝으로 이야기는 마지막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국면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방향은 읽으면 읽을수록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나서 도저히 그대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속에서 분노라는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 같아 짜증이 인다.


과연 벤트 룬드의 목숨도, 그 더럽고 사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목숨도 소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목숨이 소중하기 때문에 법대로 프레드리크를 처벌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기 전 프레드리크가 연쇄성폭행살인범을 죽인 것이 꼭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일일까? 희생자의 아버지로서 그 정도의 위안은 삼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매기만 했다. 쉽게 정답이라 외칠 수 없는 질문들로만 가득해져서 더 답답했다.


이 책은 앞서 말했듯 공동저자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 중 한명은 지금은 모든 더러운 것에서 손을 떼었다고 해도 실제 범죄자였다. 그래서 감옥 내에서의 생활에 대한 묘사 등이 상당히 상세하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공동 목표가 충분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통찰력과 재미로 무장한 범죄소설을 씀으로써 기존의 스릴러 독자들을 비롯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도 끌어안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의 범죄가 몰고 오는 여파를, 고통을 이 책을 통해 정말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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