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 Free 러브 앤 프리 (New York Edition) - 개정판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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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과 자유’?  아마 이 말 만큼이나 두루 쓰이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그만큼 우리는 ‘사랑’과 ‘자유’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단어는 그것 자체가 보이지 않는 말이니만큼 어쩌면 가슴깊이 생각해본 적은 그리 많지가 않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한 번도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자유라는 개념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 느끼는 그런 감정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상대에 따라, 또 그 형태에 따라 사랑도 자유도 각각 다른 성격을 보일 것이다. 문득 떠오른 그런 생각들은 그만 물리치고, 이 책 <러브 앤 프리 LOVE & FREE NEW YORK EDITION>을 읽었다. 표지가 풍기는 느낌에서 처음에는 이 책이 어디 오지에 간 저자가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돌아와 펴낸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러브’와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일 테고, 표지의 아기는 아주 귀엽지만 내게는 한편으로 동정심을 자극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어본 책은 봉사활동과는 관련이 없는 일종의 여행기를 담은 수필, 그리고 시였다. ‘자유’가 가득한.

  저자 다카하시 아유무가 아내와 함께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은 채, 아니 내려놓게 되고서 약 2년 동안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발이 가는 곳으로,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말이다. 그렇게 세계 곳곳을 이곳저곳 여행, 아니 방랑하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시아, 유라시아, 유럽, 남미&북미, 일본. 일주일마다 거처를 옮기며 방랑하다 드디어 일본에 돌아와 긴 여행의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저자가 카메라 속에 담고 머릿속에 담고 가슴 속에 담은 것들을 하나하나 내어 놓는다.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세계여행을 한다면, 그것은 200% 무리라고 말하겠다. 이 책은 여행을 소재로 담고 있기는 하지만 여행자들의 가이드가 되어주기 위해 쓰인 게 아니다. 여행을 통해서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엿볼 수 있다는 데에 그 의의를 둔다면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여행 속에서의 감성을 저자는 아주 깔끔하고 깔끔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가 만들어낸 단어 하나하나에서 그가 느낀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전부를 실어놓지는 않았지만 그가 담아놓은 많은 사진들 역시 자유의 감흥을 느끼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사진들이었다.




 

  사랑과 자유는 뭐, 거창한 게 아니었다. 쓰러져 가는 모텔급도 아닌 여관, 케케묵은 냄새가 진동하는 침대 위에서 잠을 자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게 바로 사랑이다. 당장의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지금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자유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도 바쁜 생활을, 항상 쫓기듯 달려 나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러브 앤 프리>는 느긋해 보이고 평화로워 보인다. 풍족하고 넘치는 여행이 아니어도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이겠지. 2년 동안 저자가 느낀 것들은 아마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떠난 여행보다도 그는 더 값진 것을 얻어왔다.

  하나. 언제나처럼 마음속의 줄을 울리는 글귀들이 있어 메모하려고 보니, 이 책에는 쪽수라는 것이 없었다. 글귀를 적고 항상 쪽수를 적어두는 나의 규칙을 이 책이 무참히 깨부수어 주었다. 그런데 웬걸. 이 작은 일에서 개운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도 자유일까^^



      껍데기뿐인 기교는 필요 없다.


      요란한 비평이나 해설도 필요 없다.

      살아가는 방식이 곧 아트!

      죽는 순간에 ‘나라는 작품’에 감동하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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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죽었다
셔먼 영 지음, 이정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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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이 죽었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출판업에 관련된 사람들 혹은 책을 쓰거나 읽는 사람들의 입에 계속해서 오르내리던 말이었다. 더구나 요즘은 모든 것이 더욱 디지털화되고 있어 ‘책이 죽어가고 있다’라거나 ‘책이 곧 죽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 이제는 어느 정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은 죽었다>의 저자 셔먼 영은 책과 관련하여 과거에 경험했던 일을 기술하는 것으로 책의 도입부를 시작하고 있었다. 지하 창고에 책을 보관하고 있다가 ‘물’의 침입(?)으로 보관하고 있던 책들의 대부분을 잃었다는 경험 이야기였다. 물론 ‘책’이라는 물건 자체는 여전히 그대로 지하 창고에 있다. 다만 여기서 저자가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대상은 책이라는 물건 자체가 아닌, 책의 본질 혹은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물에 젖은 종이는 다시 예전처럼 완벽하게 복구되기도 힘들거니와, 복구 기술이 없는 개인으로서는 어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은 존재하기는 하나 가치라는 측면에서 사라졌다고, 죽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책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그 문체도 짧았고, 또 이것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해하기에도 쉬웠다. 그래서 무서운 제목과는 달리 좀 가볍게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결과는 나의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전체적으로 책을 정리해 본다면 그리 어려운 주제도 이야기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작은 단락 하나하나 속에서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기는 내게는 조금 어려웠다. 그러니까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전에 몇 장씩 읽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책이었다. 보다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책과 함께 생각을 하며 읽어나가야 하는 책이라는 결론이 들었다.




  저자는 왜 책이 죽어가고 있는지, 그 원인을 세세히 기술한다, 그리고 죽은 책을 대신해 ‘새롭게 태어나는 책’에 대한 서술도 놓치지 않는다. 점점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워낙 매체에서 많이 다루는 주제이기도 했고, 또 내 주위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한다. 책 읽을 시간 같은 것은 없다고. 자기는 너무 치열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차 한 잔과 함께 여유롭게 책을 읽을 시간 따위는 없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그럼에도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뭔가.

  책이 이미 죽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저자는 몇 가지를 함께 제시한다. 이미 책은 여러 흥미로운 매체들에 대해서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게임 등. 그리고 책을 쓰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저술을 하기보다는 판매 매출에 발맞추기 위해 출판사에서 만들어주는 틀 속에서 책을 써야하는 현실도 중요한 이유로 꼽고 있다. 또 이제 ‘작가’라는 개념은 그 범위가 너무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이다. 당장 블로그나 여러 인터넷 매개를 통해 사람들은 글을 쓰고 있으며, 이는 분명히 하나의 저술 활동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터넷이 죽은 책을 대신해 촉매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각종 디지털 기기에 다운 받아서 볼 수 있는 ‘전자책’은 이동시 우선 종이책보다 편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시대에 발맞추어 미디어 속에 적용하는 것으로써 책을 살려내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만이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을 살려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하며 마무리 짓는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아직까지는 종이책이 좋고 종이책이 더 편하다. ‘전자 읽기 장치’  ?, 눈 아프다. 가만히 화면을 들여다본다는 수동적인 모습이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책 한 권 들고 다니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가까이 두고 보는 것도 좋고 책장 가득 꽂아놓은 책을 볼 때면 뭔가 뿌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이러한 성향은 저자에 의하면 말 그대로 물질로서의 ‘책’에 대한 사랑일 뿐이다.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로서의 책이 좋아 책을 사서 본다. 물론 언젠가 다시 꺼내보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은 책은 웬만해서는 다시 내 손에 의해 뽑혀 나오지 않는다. 내게 있어 책은 눈과 마음에 만족을 주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를 존중한다. 저자는 이를 책이 죽었다고 표한하지만, 나는 이를 단지 표현의 자유라고 칭하고 싶다.










  코리 닥터로우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책이 지닌 본능적인 매력 때문에 물리적인 책 physical book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종종 이런 욕망에는 책의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책장에 꽂힌 책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일깨울 수 있는지에 대한 짧은 설교까지 동반되곤 한다.”고 말이다. 정말 나의 성향이 그대로 내비쳐진 것 같아 놀랍기도 했지만, 이것이 바로 코리 닥터로우가 말하는 책 읽는 사람들이며 나는 이를 억지로 거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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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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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기 전에 ‘가고일’이라는 단어의 뜻부터 찾아보았다. ‘불멸의 사랑’이라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라고 소개되어 있어서 ‘가고일’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느낌보다는 밝은 뜻을 갖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내 짐작은 사전을 찾은 순간 크게 빗나갔음을 알았다.




  큰 사원의 지붕 등에 날개가 있는 괴물의 상이 놓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가고일이다. 원래 악마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상이다. 기독교가 서양에 확산되자 그 때까지 믿고 있던 신들은 사신(邪神)이 되어 버렸다. 이 사신들이 건물 바깥에서 망을 보는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조각상들이다.






  괴물이었다. 가고일. 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해하며 책을 펼쳤고, 뜻밖에도 이 책은 ‘나’의 끔찍한 사고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상상하기도 힘든, 아니 상상조차 하기 싫은 교통사고 장면과 그로인한 화재로 온몸이 타들어가는 화상을 경험하게 되는 모습. 저자는 이를 사실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 소름이 돋을 만큼 끔찍함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으면서도 책을 덮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사고와 화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이 세상에 더는 미련이 없을 만큼 모든 것을 잃었다. 누구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고통과 고독과 괴로움을 한 순간에 맛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자살을 결심한다. 이 때 ‘나’를 더욱 나락으로 빠뜨릴 수도, 혹은 삶에의 희망을 갖게 할 수도 있는 운명의 여인, 마리안네 엥겔이 나타난다. 정신병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정신병자 마리안네 엥겔은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와 부탁도 하지 않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

  무엇하나 예상하기 힘든 각기 다른 소재들이 아주 절묘한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내’게 무엇 하나 바라는 바 없이, 그녀는 사랑을 보여주고, 베풀어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조건 거부만 해대던 ‘나’도 차츰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그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 즉 외면보다는 그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나’로 변화해나간다. 물론 아주 조금씩이었지만.

  그렇게 ‘나’에게 들려주는 마리안네 엥겔의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무궁한 과거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으며, 신비로웠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비극적이고 슬펐다. 당장 이야기 속의 ‘나’도 나지만 <가고일>을 읽고 있는 ‘나’ 또한 무척이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졌다. 하지만 마리안네 엥겔은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물이 흐르듯이 시간에, 그리고 마음에 모든 것을 맡기고 때가 되면, 때가 되면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그 이야기들은 하나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와 마리안네 엥겔의 사랑에 종착했고 하나의 완벽한 스토리를 이루었다. 각각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있었지만, 하나의 사랑으로 이어지면서 모든 것을 초월해 본질적인 사랑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아간 것이다.

  마리안네 엥겔이 ‘나’와의 첫만남 이야기를 해주는 부분에서 책읽기를 잠시 멈추고 표지 안쪽의 작가소개를 읽었다.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단테의 신곡, 그리고 중세라는 배경 위에서 마리안네 엥겔과 ‘나’의 사랑을 ‘화염’처럼 태우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노력했을까. 또 신체적인 물리적인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했을까. 작가가 애쓴 그 7년의 시간은 <가고일>이 조각상에서 나와 독자들에게 읽힌 그 순간 바로 빛을 발한 것 같다.

  저자의 의도처럼 그들의 사랑이 700년을 넘어서 다시 합쳐지리라 믿는다.







      포물선의 정점에 완벽하게 매달린

      무중력 상태의 순간이 있었다.

      이 아름다운 한 순간 동안은

      내가 영원히 하늘로 가고 있다고 상상했다. ..... p.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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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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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완벽함. 어디하나 모자랄 것 없이 완벽한 생활. 책 표지 속에서 읽은 하페 케르켈링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보고 느낀 점이다. 내게는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그는 독일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을 잠시 놓아두고 한 달여의 시간을 순례 길에 올랐다고 하니 처음에는 그의 생각을,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는 독일의 한 유명스타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600km에 달하는 야고보 길을 도보 여행하며 쓴 책이다. 스스로를 게으름의 대명사라고 인정할 만큼 소파에 누워 TV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11kg이나 되는 배낭을 메고 걷기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고된 행군 속에서 고통도 느끼고 외로움과 고독을 느낀다. 대화의 상대를 그리워하며 사람을 그리며 인정을 그린다. 그렇게 혼자만의 싸움에서 버텨가며 순례 길을 마치는 순간까지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갔다.

  처음 ‘순례’라는 말을 접했을 때, 그 단어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려는 것, 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혹독하게 치루어야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거였다. 물론 스스로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우선 고친 생각은 꼭 가톨릭 신자만이 순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순례를 위해 꼭 독실한 종교인이 될 필요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그의 여정 속에서 신의 존재를 좇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좇음의 시선은 곧 “나”라는 내면으로 옮아간다. 자신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신이 누구인지 안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고 그는 말한다. 그래, 그럼 나는 누구지? 막연히 꿈을 그리는 사람, 하루빨리 졸업을 바라는 학생, 아직은 노는 것을 더 즐기는 학생, 엄마아빠의 딸, 하나뿐인 동생의 누나,,,, 이런 걸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누구일까? 아니, 나는 뭘까? 이런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조차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없다니. 이 책은 가볍게 읽어 넘기려고 생각했던 나를 조심스럽게 생각의 길로 이끌어준 것 같다.




  얼마 전 신문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던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 그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이 신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이 바로 자신을 지켜준다고 여기고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막연하게나마 혹은 무의식적으로 신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페 케르켈링은 순례의 길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짧거나 길거나 여행이라는 것은 사람의 시야를 넓혀준다. 꼭 무언가 배움을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그것 자체는 주체에게 뭔가를 남겨준다. 그런 것들을 모아 모아 하나씩 또 하나씩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행 수필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여행하고서 쓴 글이 뭐 그리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왔었는데,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이 책을 통해 그런 내 생각이 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감동은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 왔다. 이런 이야기는 간접적으로나마 저자의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좋은 점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책 속에는 저자가 여정 속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이 흑백으로 담겨져 있었는데, 흑백사진만의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수필로써 이렇게 멋들어지고 재미있게 그리고 뭔가를 남겨줄 수 있는 재주야말로 신이 그, 하페 케르켈링을 위해 내려준 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깨닫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그 완전한 반대를 경험해야 한다.

      암흑. 나는 나의 어두운 부분을 정확히 관찰해야 한다.

      나의 밤은 어떤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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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력 -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 문제해결 능력
호소야 이사오 지음, 홍성민 옮김 / 이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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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에 몇 줄 안 되는 글을 읽었다. 한 남자와 관련된 일화였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남자는 말한다.

  “나는 많은 쓸데없는 사실들을 쌓아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하기 위해 머리를 씁니다.” 라고. 이 이야기는 바로 포드 자동차를 설립한 헨리 포드의 어린 시절 일화였다. 헨리 포드는 생각하는 법을 아는 것이 사실들을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 호소야 이사오 역시 지식보다 생각하는 힘, 바꾸어 말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더 중요시했다. 많은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갖추어야 할 능력이 바로 문제해결 능력이 아닐까 싶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내게는 뭔가 새로움을 주었던 것 같다. 보통 책제목을 보면 대충이라도 뭔지 알게 마련인데, ‘지두력’이라는 단어는 부끄럽지만 처음 접해보는 단어였다. 쉬운 한자어임에도 정확하게 그 뜻을 유추하려니 어렵게 느껴졌다. 맨손으로 생각하는 힘. 참 멋진 말이고 힘 있는 뜻이 아닐까.

  지두력과 더불어 ‘페르미 추정’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로지 논리적인 사고로 정확한 답만을 유추해내야 하는 문제들도 중요하지만, 최근에는 생각하는 능력을 파악하는 문제들, 논리적인 사고를 토대로 하여 직관력과 통찰력까지도 요하는 그런 문제들도 여기저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페르미 추정은 지두력에 앞서 그런 능력들을 기르는데 발판을 마련해줄 것처럼 보였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대화에서처럼 나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눈이 번쩍 하고 떠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무슨 문제든 전체적으로 크게 볼 것을, 처음보다는 결말을 중요시할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하게 바라볼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현상 전체를 바라보는 것은 항상 중요하게 여겨왔던 것이었지만, 항상 시작이 반이라고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내게 결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결론을 목적으로 강하게 의식하고 전체적으로 단순하게 접근해 나간다는 게 말로는 이렇게 쉽게 느껴질지 몰라도 막연하고 추상적으로만 다가왔다. 아마 지두력을 요하는 문제 자체들이 딱 떨어지는 정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정답만을 맞추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에 어떻게 접근해서 어떤 방법을 찾아 또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가 관건이다. 모르거나 대답이 곤란한 문제 앞에 봉착했을 때 자동적으로, 자연스럽게 컴퓨터 인터넷을 향하는 내게, 그리고 같은 사람들에게 지두력은, 페르미 추정은 꼭 연마해야만 하는 힘인 것 같다. 정답만을 찾아 수동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 풀어나가고 헤쳐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주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주 유용하다. 물론 가볍게 한 번 읽고 넘어갈 수 있는 유의 책은 아니었다. 글을 마치고 나면 몇 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페르미 추정의 유래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이 책은 그런 사고 과정을 나열하고 어떻게 문제에 접근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다. 지두력을 향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종 그림이나 도표들도 이용하고 있으며, 대화도 삽입하여 좀 더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 연습문제들도 중간 중간 담고 있어서 책을 읽어나가면서 스스로를 체크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지두력 향상을 위한 여러 단계들과 방법들도 제시되어 있어서 효율적이었다. 처음에는 황당하기 짝이 없던 문제들이었다. 전국에 있는 골프공은 모두 몇 개일까? ‘대체 그런 질문의 답을 내가 알 게 뭐람.’하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당황스럽고 쓸데없는 문제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는 점점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치하지만 평소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호기심들이 내 속에서 일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은 생소한 단어들과 전문 용어들도 있어 한 번 읽는 것 가지고는 지두력이나 페르미 추정에 대해서 완벽히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 책을 읽는 데서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자기 계발을 위해서도 좀 더 자신을 다잡고 다스려야겠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보다 생각하고 나아갈 줄 아는 사람,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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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온 2008-12-29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제는 생각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

사람마다 자신만의 사고회로가 제각기다르다고 하던데. 지두력에 기반한 사고회로를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인상적인 책이었던 걸로 저도 기억해요.

헤르네 2009-01-1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 트렌드온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