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완벽함. 어디하나 모자랄 것 없이 완벽한 생활. 책 표지 속에서 읽은 하페 케르켈링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보고 느낀 점이다. 내게는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그는 독일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을 잠시 놓아두고 한 달여의 시간을 순례 길에 올랐다고 하니 처음에는 그의 생각을,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는 독일의 한 유명스타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600km에 달하는 야고보 길을 도보 여행하며 쓴 책이다. 스스로를 게으름의 대명사라고 인정할 만큼 소파에 누워 TV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11kg이나 되는 배낭을 메고 걷기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고된 행군 속에서 고통도 느끼고 외로움과 고독을 느낀다. 대화의 상대를 그리워하며 사람을 그리며 인정을 그린다. 그렇게 혼자만의 싸움에서 버텨가며 순례 길을 마치는 순간까지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갔다.

  처음 ‘순례’라는 말을 접했을 때, 그 단어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려는 것, 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혹독하게 치루어야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거였다. 물론 스스로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우선 고친 생각은 꼭 가톨릭 신자만이 순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순례를 위해 꼭 독실한 종교인이 될 필요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그의 여정 속에서 신의 존재를 좇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좇음의 시선은 곧 “나”라는 내면으로 옮아간다. 자신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신이 누구인지 안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고 그는 말한다. 그래, 그럼 나는 누구지? 막연히 꿈을 그리는 사람, 하루빨리 졸업을 바라는 학생, 아직은 노는 것을 더 즐기는 학생, 엄마아빠의 딸, 하나뿐인 동생의 누나,,,, 이런 걸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누구일까? 아니, 나는 뭘까? 이런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조차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없다니. 이 책은 가볍게 읽어 넘기려고 생각했던 나를 조심스럽게 생각의 길로 이끌어준 것 같다.




  얼마 전 신문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던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 그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이 신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이 바로 자신을 지켜준다고 여기고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막연하게나마 혹은 무의식적으로 신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페 케르켈링은 순례의 길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짧거나 길거나 여행이라는 것은 사람의 시야를 넓혀준다. 꼭 무언가 배움을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그것 자체는 주체에게 뭔가를 남겨준다. 그런 것들을 모아 모아 하나씩 또 하나씩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행 수필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여행하고서 쓴 글이 뭐 그리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왔었는데,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이 책을 통해 그런 내 생각이 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감동은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 왔다. 이런 이야기는 간접적으로나마 저자의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좋은 점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책 속에는 저자가 여정 속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이 흑백으로 담겨져 있었는데, 흑백사진만의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수필로써 이렇게 멋들어지고 재미있게 그리고 뭔가를 남겨줄 수 있는 재주야말로 신이 그, 하페 케르켈링을 위해 내려준 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깨닫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그 완전한 반대를 경험해야 한다.

      암흑. 나는 나의 어두운 부분을 정확히 관찰해야 한다.

      나의 밤은 어떤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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