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기 전에 ‘가고일’이라는 단어의 뜻부터 찾아보았다. ‘불멸의 사랑’이라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라고 소개되어 있어서 ‘가고일’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느낌보다는 밝은 뜻을 갖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내 짐작은 사전을 찾은 순간 크게 빗나갔음을 알았다.




  큰 사원의 지붕 등에 날개가 있는 괴물의 상이 놓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가고일이다. 원래 악마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상이다. 기독교가 서양에 확산되자 그 때까지 믿고 있던 신들은 사신(邪神)이 되어 버렸다. 이 사신들이 건물 바깥에서 망을 보는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조각상들이다.






  괴물이었다. 가고일. 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해하며 책을 펼쳤고, 뜻밖에도 이 책은 ‘나’의 끔찍한 사고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상상하기도 힘든, 아니 상상조차 하기 싫은 교통사고 장면과 그로인한 화재로 온몸이 타들어가는 화상을 경험하게 되는 모습. 저자는 이를 사실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 소름이 돋을 만큼 끔찍함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으면서도 책을 덮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사고와 화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이 세상에 더는 미련이 없을 만큼 모든 것을 잃었다. 누구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고통과 고독과 괴로움을 한 순간에 맛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자살을 결심한다. 이 때 ‘나’를 더욱 나락으로 빠뜨릴 수도, 혹은 삶에의 희망을 갖게 할 수도 있는 운명의 여인, 마리안네 엥겔이 나타난다. 정신병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정신병자 마리안네 엥겔은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와 부탁도 하지 않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

  무엇하나 예상하기 힘든 각기 다른 소재들이 아주 절묘한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내’게 무엇 하나 바라는 바 없이, 그녀는 사랑을 보여주고, 베풀어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조건 거부만 해대던 ‘나’도 차츰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그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 즉 외면보다는 그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나’로 변화해나간다. 물론 아주 조금씩이었지만.

  그렇게 ‘나’에게 들려주는 마리안네 엥겔의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무궁한 과거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으며, 신비로웠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비극적이고 슬펐다. 당장 이야기 속의 ‘나’도 나지만 <가고일>을 읽고 있는 ‘나’ 또한 무척이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졌다. 하지만 마리안네 엥겔은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물이 흐르듯이 시간에, 그리고 마음에 모든 것을 맡기고 때가 되면, 때가 되면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그 이야기들은 하나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와 마리안네 엥겔의 사랑에 종착했고 하나의 완벽한 스토리를 이루었다. 각각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있었지만, 하나의 사랑으로 이어지면서 모든 것을 초월해 본질적인 사랑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아간 것이다.

  마리안네 엥겔이 ‘나’와의 첫만남 이야기를 해주는 부분에서 책읽기를 잠시 멈추고 표지 안쪽의 작가소개를 읽었다.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단테의 신곡, 그리고 중세라는 배경 위에서 마리안네 엥겔과 ‘나’의 사랑을 ‘화염’처럼 태우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노력했을까. 또 신체적인 물리적인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했을까. 작가가 애쓴 그 7년의 시간은 <가고일>이 조각상에서 나와 독자들에게 읽힌 그 순간 바로 빛을 발한 것 같다.

  저자의 의도처럼 그들의 사랑이 700년을 넘어서 다시 합쳐지리라 믿는다.







      포물선의 정점에 완벽하게 매달린

      무중력 상태의 순간이 있었다.

      이 아름다운 한 순간 동안은

      내가 영원히 하늘로 가고 있다고 상상했다. ..... p. 2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