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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빵순이’인 내게는 가히 완벽한 책이었다. 빵을 주제로 한 아름다운 ‘성장소설’이고 ‘마법이 가득한’ 소설이다. 책을 읽는 내내 환상 속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유치하지는 절대 않은, 순수한 한 편의 동화랄까. 이것 역시 하나의 마법 같았다. 독자로 하여금 책 읽기를 그만두게 할 수 없는 그런 마법. 순식간에 책 속에 빠져들어 달콤한 환상 이야기를 실컷 맛볼 수 있었다. 책에서조차 달콤한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여기 많은 빵들이 있다. 푸딩, 스콘, 마들렌, 쇼꼴라, 머핀, 만주, 피낭시에 등. 이름만 들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런데 아무 때나 만나볼 수 있는 빵들은 절대 아니다. 제빵 마법사가 특이한 기운을 불어넣어 만든 특이한 빵이니까. wizardbakery.com에 가면 원하는 옵션을 골라 맛있는 빵을 주문할 수 있다.
마인드 컨트롤이 힘들 때는 마인드 커스터드 푸팅을,
사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는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을,
실연의 상처를 잊고 싶을 때는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을,
떨쳐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는 노 땡큐 사브레 쇼꼴라를,
성공을 빌어주고 싶을 때는 비즈니스 에그 머핀을,
오래 묻어둔 기억을 꺼내어보고 싶을 때는 메모리얼 아몬드 스틱을,
멀리 떠나는 벗에게는 에버 앤 에버 모카 만주를,
단 하루만 나의 복제인간을 만들고 싶을 때는 도플갱어 피낭시에를
자유로이 접속해 주문만 하면 된다. 그야말로 만능 빵.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라면 조건이 붙는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것이든 결국에는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나’는 말더듬이다. 고등학생인데도 입 밖으로 온전한 단어 하나 내뱉기가 힘이 든다. 어린 시절의, 그리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상처와 아픔 때문에. ‘내’게는 어린 나로서는 견디기 버거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버림받고, 버림받고. 가족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고 아빠의 두 번째 결혼을 봐야했고, 새엄마의 눈치를 봐야했으며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인해 누명을 쓰기까지 했다. 매일 매 끼니를 겨우 빵 한 조각으로 견뎌내야 했으며, 가족의 사랑은커녕 존재감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나’는 집에서조차 이방인이었다. 지겨운 빵. 지겨운 삶. ‘나’는 가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것도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에서 뛰쳐나온 내게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새로운 세계가 찾아온다. 마법의 기운을 빵에 불어넣는 점장, 낮에는 인간의 모습이 되고 밤에는 새가 되는 파랑새, 오븐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넓고 아늑한 공간. 자, 이제부터는 환상 세계다. 점장과 파랑새와 ‘나’는 그곳에서 서로의 잘못과 상처와 아픔을 쓰다듬어준다. 마법과는 별개로 서로를 치유해주고 마음을 공유한다. 여기에 어눌한 말은 그다지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책을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우의 수. 그것을 생각해본다면, 나는 ‘N의 경우’가 참 마음에 든다. N 속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으로 ‘내’가 진정한 ‘나’를 계속해서 찾아갔으면 좋겠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만나고 싶은 이들, 가보고 싶은 세상이 가득한 동화 속 이야기였다.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그 선택의 결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너의 선택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란 말을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