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시간 노리코 3부작
다나베 세이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사적인 시간>이라는 참 맘에 드는 제목 때문에 읽게 된 책.




  연애도 결혼도 일종의 연극이다. 필요할 때 발휘해야 하는 연기가 깃들어 있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소위 서민으로 불리는 여인과 재벌 2세, 그것도 연하남과의 사랑 이야기다. 아니, 결혼 이야기라고 해야 옳을까. 서른한 살 노리코는 과거에 수많은 남자들과 자유롭게 사랑을 나눈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평소에 화장을 잘 하고 다니는 편도 아니고, 옷차림이 섹시하다거나 여성스럽지도 않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매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당찬 여성이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그림을 그리고, 개인전을 여는 것을 낙으로 삼고 나름 소박하게 살아오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화려한 고가 나타난다. 그녀의 눈앞에 초호화 맨션을 들이밀며 결혼하자고 말하던 고. 현물에 약한 노리코는 이를 뿌리칠 수 없었고, 그녀 역시 사치의 세계에 슬며시 발을 담그게 된다. 




  그녀가 들어간 ‘고의 세상’은 별천지다. 원하면 얼마든지 옷을 사재기할 수 있다. 옷뿐 아니라 액세서리, 자동차, 가구 등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다. 무엇보다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고가 있다. 바람기 다분한 고였지만,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노리코 뿐이라며 달콤한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노리코도 싫지 않다. 그렇지만 그녀의 생각을 읽어나갈수록 그녀가 정말로 고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가 없었다. 그저 함께 하면서 싫지 않은 사람 정도로만 고를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단지 사랑하는 척 하는 것 뿐. 게다가 연상의 남자에게라면 마구 달려들 것 같은 그녀의 호기심 역시 참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둘의 이야기는 좀처럼 내게서 공감을 자아내지는 못했다. 다분히 일본적인 이야기다,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그런 면에서 둘이 천생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역시 사랑이라는 것은 영원할 수 없는 걸까.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은 역시 힘든 일일까. 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라는데, 사랑이 변하는 사람이 변하든 그 결과는 역시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아닐까. 읽어나갈수록 참 마음을 무겁게도 하는 것 같고 또 한 편으로는 허무하게도 만드는 것 같았다.




  조금보다 조금 더 ‘변태스러운’ 고. 그리고 그런 고의 기분을 언제나 한껏 맞추어주는 노리코. 고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노리코를 ‘괴롭히고’, 구속한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사적인 공간과 사적인 시간을 침해한다. 정말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만큼. 그럼에도 노리코는 이내 화를 푼다. 아니 화를 푼 척 하는 거겠지. 이들의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그리고 지속되는 이런 관계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았고, 결국 누군가는 얇은 줄 위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 편의 연극을 끝내버리고자 하는 사람과, 그것이 연극이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 과연 누가 불쌍하고 누가 더 안타까운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