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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와플가게
고솜이 지음 / 돌풍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정말 달콤한 스트로베리 파이가 먹고 싶어졌다. <자전거 와플가게>는 고솜이의 감성단편들을 모은 책이다. ‘고솜이’라는 작가의 따뜻한 이름에, 그리고 감성단편이라는 장르에 순간 매료되어 나도 모르게 동글동글한 이야기들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전거 와플가게, 나 혼자 식사, 카스텔라 오븐, 스트로베리 파이, 에스프레소 자동차’, 이렇게 다섯 가지의 부드러운 이야기가 한 데 녹아들어 있었다. 어떤 커다란 자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과는 조금 다른, 아주 아주 소소한 기쁨과 행복과 마음들을 공감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아늑한 방이 하나 저절로 그려진다. 달콤한 딸기향이 방을 가득 채우고, 한 가운데에는 린넨 식탁보로 덮인 테이블이 있다. 그리고 깨끗한 접시 위에는 달콤한 와플과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딸기 파이가, 바로 옆에는 따뜻한 연기를 뿜어내는 에스프레소 커피가 놓여 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띤다. 이게 바로 행복이라는 건데...
그들은 변변한 직업 따위는 갖고 있지 않은 지 오래다.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매일 우울에 싸여 사는 것도 아니다. 미치도록 살고 싶어 한다는 의지를 찾아볼 순 없었지만, 반대로 세상을 비관하며 살고 있지도 않았다. 자의로 혹은 타의로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난 뒤, 그리움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떨 땐 자기 안에 숨어버리기도 하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밀쳐내기도 하면서 아웃사이더를 자초하기도 한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상이라고 한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그저 숨 막히는 매일매일 속에서 아주 조금, 살짝 옆으로 비켜선 정도랄까. 그 순간 ‘자유’가, ‘행복’이 날아든다. 이것도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그야말로 소소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임을. 그리고 느끼는 것임을 말이다. 무엇보다 바로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말로는 뭐든지 쉽다.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내 삶 속으로 들어와 생각을 해보면, 나는 그렇게 매일매일 행복을 느끼고 산다고, 정말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 같다. 작가 고솜이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조그맣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감성을 울리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내가 스스로 작은 방을 머릿속에, 마음속에 그릴 수 있도록 조심스레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것 같다. 그렇게 그린 방 안에 앉아있는 나는, 와플과 파이를 먹으면서, 그리고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면서 이게 바로 행복임을 느낀다.
토마토 1킬로그램과 샐러리 한 다발,
버섯 300그램, 밀가루 한 봉지, 계란, 싱싱한 동태 한 마리를 샀다.
단골 수입식품가게에서 스페인산 와인 한 병과 올리브 오일, 통후추도 샀다.
식료품이 든 꾸러미를 트렁크에 싣고 운전대를 잡았을 때,
나는 옆자리의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매우 쾌활하게 외쳤다.
“정말 행복하다, 그렇지? 이 정도면 됐어,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