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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때리는 스물다섯 - 조장은의 그림일기
조장은 지음 / 에디션더블유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리포트의 압박에서 아주 잠시 벗어나 오랜만에 가졌던 서점구경 속에서 곧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표지를 보았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림을 보면서 왠지 작가가 되게 짓궂고 얄궂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 때리는 스물다섯>이라는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의 스물다섯 살도 기가 막히게 골 때릴 것 같았으니까. 왠지 스물다섯을 참 잘 수식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 때리는 스물다섯>은 작가 조장은의 ‘그림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림일기는 어린 꼬맹이들이나 쓰고 그리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나갔는데, 읽을수록 정말 재미있었다. 그림‘일기’니까 이 책은 정말 순수하고 솔직하게 작가의 일상을, 내면을, 꿈을, 생각을 담고 있었다. 그림일기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말 그대로 익살맞고 해학적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표지 속에 찍혀 있는 작가의 모습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만큼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대가 그리고 있는 이십대의 모습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작가의 그림일기는 읽을수록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나의 이십대에 위안이 되어주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는 순간이 되면, 그리고 나의 직업을 갖게 되면, 경제적인 독립이라는 걸 해야 할까,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럴듯한 직업을 갖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만한 딸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대학교 졸업을 향해 나아가면서 문득문득 든다. 그리고 나면 답답해지기도 하도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머릿속도 마음속도 엉망진창 복잡해진다. 그럴 때면 친구들과 한 잔 하러 나가기도 한다. 사실 술이 약은 아니다. 내게 술이라는 것은, 아직은, 현실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친구이기보다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놀이의 일종이다. 때로는 한없이 움츠러만 들고 종일 숨을 곳만을 찾아 헤매지만 아직은 걱정 없이 신나게 놀고만 싶고, 즐기고만 싶은 나는 아직도 어린앤가 보다.
그런 내게,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작가는 ‘괜찮다!’고 말해준다. ‘즐겨도 돼, 아직은. 이십대잖아.’라고 말이다. 공감할 거리들을 선사해주고, 그 속에서 웃을 수 있게, 용기를 가질 수 있게 손을 내밀고는 꼬옥 잡아주는 것 같았다. 작가의 그림일기들을 마음껏 훔쳐보고 나서 그림들만 다시 넘겨보았다. 큭큭.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무슨 그림이 이렇게 웃긴 거야! 캐릭터가 정말 개성이 넘치고 게다가 못생기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눈길이 그림에 머물렀던 이유는, 아마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그리고 보기 힘든 느낌을 안겨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익살맞지만 위로가 되고 따뜻해 보이는, 그리고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그런 그림들이었다.
그리고 나의 스무 살, 정말 미쳤다 싶을 만큼 신나게 놀았었다. 그리고 스물한 살이 되던 날, 나의 이십대는 이미 다 끝나버리고 세상이 종말해버릴 것만 같았던 우울함 가득했던 그때 그 느낌이 되살아나 한참을 추억에, 기억에 잠겨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이런 말 하면 우습겠지만
나처럼 베짱이 같은 인생이 어디 있겠나 싶지만
뒤에서 누가 바짝 쫓아와 걸음을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기분이 들었다.
이제 그저 어리다고 용서해 주지 않는
조금은 무거워져 버린 나이
혼자라는 두려움과 조급함
홀로 운영해야 하는 나의 그림과 인생이
외롭고 쓸쓸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으로 잡이 오지 않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