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달달한 초콜릿의 느낌. 바로 이 달콤한 초콜릿의 향에 이끌려 바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제목 그대로 쌉쌀한 초콜릿도 느낄 수 있었다. 한 동안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하다가 읽게 된 책이니만큼 조금은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것 같다. 남미 소설을 읽다보면, 뭔가 매콤한 맛을 느끼게 되곤 하는데, 이 책 역시 달콤하면서도 매콤함을 맛보게 해주었다. 이 책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첫 소설로 이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이 책에는 멕시코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한 여인의 사랑과 절망과 성장, 그리고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 년 열두 달의 이야기로 독특하게 구성된 이 책은 마치 한 권의 요리 레시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요리는 ‘크리스마스 파이’에서부터 시작되어 벌써부터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게 만든다. 조금은 낯익은 요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소한 요리들과 재료들이다. 그럼에도 요리과정의 세세한 묘사 덕분에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게까지 그 향과 맛이 오롯이 전해진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눈앞에 티타가 만들어내는 요리들의 향연이 펼쳐지기도 하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했다.

티타. 막내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소녀다. 얄궂은 운명에도 불구하고, 티타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평생을 함께 하고픈 남자, 페드로를 만난다. 찌릿찌릿 전기가 느껴질 만큼 강력한 마법 같은 힘으로 엮여버린 둘 사이를, 티타의 엄마는 갈라놓으려고만 한다. 그리고 티타는 갈수록 더욱 가혹한 운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삶에 대한 어떠한 의욕도, 의지도 이제는 그녀의 삶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마치 기계처럼 시키는 일을 하고, 숨을 쉬고 살아갈 뿐이었다. 이제는 그녀의 요리에서도 이전에 느낄 수 있었던 마법과 같은 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야기에서 현실성을 찾아보라면, 그렇다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렇게 비현실적임에도 무언가 끊임없이 티타를 동정하고 등장인물들에 공감을 형성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들을 맛 좋은 요리에 담아 저자는 우리에게 전달해주고자 했던 것 같다. 티타는 자신이 처한, 그러나 결코 받아들일 수는 없는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많은 갈등이 있었으며, 마음고생도 심했지만 결국 티타는 해내었다. 바로 거기에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요리방법에 대해 오랜 시간을 두고 전수받은 것과 한편으로 그녀 스스로 알아가는 요리과정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요리에 영혼을 불어넣을 줄을 알고 있었다. 진심어린 마음이 담긴 요리는 만든 사람의 감정과 기분을 담고 있었고, 신기하게도 그것은 요리를 먹는 사람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그녀의 내면이 점점 자라고 성숙해질수록 그녀의 요리 역시 맛과 깊이를 더해갔다. 그녀의 요리는 점점 더 달콤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티타의 삶 자체에 공감하고 즐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만큼은 정말 의미 있고 멋진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티타가 밟은 길을 그대로 따라 걷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에게서는 정말 배울 점이 많았다는 것만은 인정하고 싶다.

용기를 내어 자신을 되찾은 티타에게 박수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