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내가 느낀 이 순간의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마음속 감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말을 찾아낼 수가 없어 답답한 적도 있었고, 겨우겨우 말을 만들어도 결국은 감정과는 또 다른 의미가 되어 결국 마음속에다가만 담아두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언어를 맘대로, 정말 맘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연수는 참 좋겠다.

책을 읽다보면, 마음을 울리는 글귀들이 참 많은 이야기 또한 종종 있다.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는 동안, 정말이지 내 마음은 울리고 또 울리고, 끊임없이 울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책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스며들어 온전히 이해하기가 좀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더 진한 느낌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 단순하게. 제목에 이끌리거나 표지에 반해서 책을 골랐다. 하필 단편소설이라니. 읽을 만하다 싶으면 툭툭 끊어지고 마는 짧은 소설은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던 건 그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읽고 싶은 열망을 만들어내는 제목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끝까지 읽게 됐던 건 그보다도 훨씬 더 이야기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단편소설들로 이루어진 책임에 분명하지만 마치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처럼 커다란 세계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아, ‘세계의 끝 여자친구’라니, 이유도 모르지만 멋지게만 느껴졌다.

김연수의 글은 종종 매체를 통해서 접해본 적은 있지만 직접 읽어보기는 어쩌면 처음이다. 원래 김연수의 글이 이런 것인지, 이 책에서만 유독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뭔가 신선하고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설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 한 가운데에 놓인 기분. 그런데 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들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자기 세계에 갇혀있는 것도 같아 보였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기억할 만한 지나침, 세계의 끝 여자친구,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 내겐 휴가가 필요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달로 간 코미디언.

이 사람들 모두 뭔가를 가슴에 품고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슬픔을 엿볼 수 있었고, 그들의 어깨를 꼬옥 가만히 감싸 안아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에서만일 뿐, 막상 그들이 실제로 나타나 바로 내 눈 앞에 서있다 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이미 내가 제일 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타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뜨끔했다. 작가는 내게 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 해. 다른 사람들을 잘 안다고 착각하지 마. 어떻게 잘 알 수 있겠어, 넌 그 사람이 아닌 걸. 그러네, 정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이야기다.

이 우주의 90%가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것들로 이뤄져 있다면,

결국 케이케이의 어린 몸도,

그 몸을 사랑했던 내 세포들도 달리 갈 곳은 없을 것이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그걸 보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