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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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기척이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라는 문구가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희랍어 시간>이라는 제목 역시 흔하게 접할 수 없는 것이라 더욱 읽고 싶어졌다. 무언가를 잃어가는 두 사람이 만나 어떤 사랑을 만들 것이라 예상해보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직접 지켜보고 싶었다.

 

 

 

한 여자가 있다. 어려서부터 언어의 구조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어떤 원인도 모른 채 말을 잃었다. 말을 잃어버렸고 이혼을 하게 됐고, 아홉 살 난 아이의 양육권도 빼앗겼다. 삶에 어떤 이유도 의미도 없어져버렸다. 그러다 선택한 것이 희랍어였다. 그리고 한 남자가 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반비례하여 볼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든다. 가족들을 독일에 남겨둔 채 홀로 모국인 한국에 돌아온 그 남자는 희랍어 강의를 시작한다. 이 두 사람은 한쪽은 가르치는 쪽에, 그리고 다른 한쪽은 수업을 듣는 쪽에 서 있다. 그러나 같이 희랍어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단 한 번도 의사소통을 해본 적이 없다.

 

 

 

끝까지 그렇게 그들은 평행선을 달릴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우연한 사고로 인해 여자가 남자를 도와주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한 방 안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 놓는다.

 

 

 

많은 기대를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금세 당황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점점 더 책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때로는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섬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빠져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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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이드 파크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1
블레이크 넬슨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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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구원에 관한 시리도록 아름다운 청춘의 기록, 현대판 <죄와 벌>이라는 글귀가 책을 읽기 전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성장소설을 좋아하는데 주인공들의 또 어떤 성장기가 담겨있을지 궁금했다.


이 책은 형식으로 치면 날짜와 장소, 때가 쓰여 있고, 빈칸으로 남겨진 누군가에게 쓰는 글처럼 보인다. 그리고 내용은 일기 같았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불법으로 세워진 스케이트 파크에 붙여진 이름이다. 불법이기 때문에 부랑자들도 판을 친다. 스케이트보드에 열정적인 소년이 홀로 파라노이드 파크에 들렀다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피를 보았고 사람이 죽었다. 그것은 어린 주인공 소년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분명 커다랗고 심각한 문제였다. 아빠는 짐을 싸 집을 나갔고, 그 때문에 엄마는 극도로 예민하고, 하나 있는 동생은 스트레스로 매일 토하기를 반복한다. 고민을,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마땅한 상대가 없었다. 부모님께 털어놓는다고 해도 이렇다 할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소년은 철저히 고립되어갔고, 무너져 내렸다. 사건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경찰이 사건 조사를 위해 학교를 찾아오기에 이르니 소년은 극도의 긴장을 하게 된다. 소년에게는 정말 지옥 같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소년이 답답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고, 그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조금 짐작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 어떤 방향으로도 나가지 않았다. 소년이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고, 실제로 소년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경비원에 대한 어떤 언급도 다시 이어지지 않아 궁금증만을 낳았다. 나는 이 책에 완벽하게 빠져들어 함께 긴장하고 함께 불안해하지 않았다. 좀처럼 몰입이 되지 않았다. 그저 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판단만 했을 뿐, 어떤 행동이 잘한 행동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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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삭 놀 청소년문학 10
시몬 스트레인저 지음, 손화수 옮김 / 놀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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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가 고민인 소녀와 먹고 살기 위해 밀입국을 감행한 소년, 그들이 만났다.


그들이 만나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했다. 다이어트가 고민인 소녀 에밀리에는 올해 열다섯 살이다. 거구를 자랑했으나 심한 놀림을 당한 후 무서운 다이어트로 체중을 줄였다. 그런데 체중 줄이기에 대한 욕심이 과한 탓에, 샐러드만 찾아 먹는, 그러고는 몇 km씩을 뛰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여름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유럽의 휴양지 그란카나리아 섬으로 여행을 왔다. 거기에서도 에밀리에의 칼로리 계산과 다이어트는 멈출 줄 몰랐다. 그로부터 수십 일 전, 열여덟 살 소년 사무엘은 밀입국선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 굶주려야 했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엘은 불법 노동자라도 되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과 배에 올라탔다.


어김없이 조깅을 하던 에밀리에의 눈에 사무엘이 탄 난파된 밀입국선이 보였다. 그 우연을 계기로 에밀리에와 사무엘이 만나게 되었다. 전혀 상반된 현실에서 살았던 그들은 피부색부터 모든 것들이 정반대였다. 에밀리에가 사무엘에게 갖는 동정심, 그리고 사무엘이 에밀리에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은 우정으로 자라났고, 그 둘의 우정을 여과 없이 지켜볼 수 있었다.


밀입국선에 올랐다고 해도 언제든 발각되면 다시 추방될 수 있다. 그런데도 불법 노동자라도 하겠다는 꿈 하나에 온 재산을 걸고 목숨을 건 사람들을 이 책 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바르삭>은 이슬람 세계에서 죽음 뒤 찾아오는 또 다른 세상, 즉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동안 머무르는 곳으로 천국과 지옥 사이 그 어디쯤이라고 한다. 사무엘에게는 분명 벅찬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자꾸만 먹먹해져갔다. 아마 에밀리에 역시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사무엘을 도와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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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데이 - 개정판
데이비드 니콜스 지음, 박유안 옮김 / 리즈앤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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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의 로맨스. 아름다운 영화 포스터와 아름다운 책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앤 해서웨이가 주연을 맡은 영화 <원 데이One Day>의 원작소설이라고 했다. 생각만으로도 초콜릿이 혀에 닿은 듯 달콤해지는 것 같았다.


이 책 <원 데이>는 1988년부터 2007년까지, 20년간 두 주인공 덱스터와 엠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매 해 7월 15일 하루의 스토리를 보여준다. 1988년 7월 15일 덱스터와 엠마는 대학 졸업 파티가 있던 날, 엠마의 침대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함께 자지는 않았지만 덱스터를 짝사랑하던 엠마에게 그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그리고 덱스터는 그저 그런 흥미를 갖고 있던 그녀에게 조금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 날이기도 했다.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이 묘한 감정은 덱스터와 엠마 사이에서 끊어질 듯 말듯 이어져 나간다. 각자의 삶을 살고 위기를 맞고 무너지고 위로해주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지켜보고 무너지고 또 위로해주고.


그 둘의 이야기는 경적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달달하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그저 뜨뜻미지근한 사랑의 감정과 알 수 없는 우정이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을 뿐이었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뭔가 이제 좀 시작하겠다 싶었다가도 둘은 금세 멀어졌다. 답답하기도 했고, 속이 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들 사이에서 애틋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년간의 그 둘의 모습은 소울메이트임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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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여인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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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뉴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작가 이문열의 인터뷰를 보았다. <리투아니아 여인>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음악감독이자 교수, 그리고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박칼린을 모델로 하여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라고 했다. 그리고 책을 쓸 당시에는 그녀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지만 텔레비전 방송 이후 점점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며 그 때문에 책의 출간이 조금 부담스럽다고 언급했던 것 같다. 덧붙여 영감만 받았을 뿐, 대부분은 픽션이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그녀가 게스트로 나온 편을 보고 굉장히 인상깊었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인터뷰를 보고나서 <리투아니아 여인>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일보에서 연재 중이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 책 속의 ‘리투아니아 여인’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뮤지컬 음악 감독이다. 한국 이름은 김혜련. 혼혈인으로서 한국에서 펼치는 그녀의 예술과 그녀의 보통적이지 않은 삶이, 그리고 그녀의 사랑이 이 책 속에 펼쳐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박칼린을 떠올리면서 읽게 되었다.


‘나’는 동네에서 어린 김혜련을 보았다. 동네에서 자주 눈에 띄던 흔치 않은 외국인 용모는 ‘나’의 눈길을 끌었다. 기가 막힌 사투리로 친구들과 노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혼혈인에 대한 편견과 따돌림을 겪어야 했고, 그 꼬마의 가족은 쉽지 않은 한국 생활을 접고 그곳을 떠났다. 그렇게 ‘나’도 그 아이를 잊어갔다. 그러다 한참이 흐른 후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디션 장에서. 그렇게 다시금 김혜련과의 인연을 맺고 오랜 동안 지인으로, 동료로, 때로는 애틋한 감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다국적 정체성으로 한국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그러나 아름답다기보다는 뭔가가 처연하게 느껴졌다. 운명 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이혼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그리고 또 뉴욕에서 다시 만나 한국으로 돌아와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김혜련은 순식간에 유명해지지만 스캔들이 터지고 사람들의 언어 폭력과 마주하게 된다.


김혜련의 부모님의 삶, 리투아니아, 그리고 미국, 그리고 한국. 그녀에게는 이 땅들이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그녀의 사랑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궁금했다. 실제의 박칼린과 겹치는 부분들이 많아선지 이미 김혜련과 박칼린을 동일시하고 책을 읽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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