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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에 대한 잡음을 알았기에 내 스스로 꼬투리를 잡겠다는 심사로 읽어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아주 재밌게 읽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때가 고등학교 때였던것 같다. 그 당시 세계고전은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읽었지만 단순히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이방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해설에 따라 학습하며, 다들 좋다고 하니 나도 좋다는 느낌을 받았던것 같다.
같은 비유가 될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마치 뫼르소가 레몽의 친구가 되고, 마리의 청혼에 대해 사랑하진 않지만 그녀가 원한다며 결혼해도 무방하다고 말하는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 대한 나의 기억은 어머니의 장례식 바로 다음날 여자친구와 잠을 잤다거나, 어머니 나이를 몰랐다는것, 그리고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쏘았다는 단편적 기억, 즉 학습된 이방인에 대한 평가만 기억된 편이었다.
두번째 읽은 이방인이기 때문인지, 번역이 어렵지 않아서인지, 논란의 중심이 된 책이라 집중하고 읽어서인지 잘 모르고 읽기시작하고 하루만에 정말 푹 빠져 읽은 이방인은 옳곧이 다 내것이 되는것 처럼 잘 읽혔다.
그리고 읽은 후 역자노트를 훑어보며 느낀 점은 그가 말한 전작과 지금의 번역에서 내용상 크게 벗어나는 것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단지 첫 부분에서 엄마라는 단어보다 차라리 어머니라는 표현이 더 뫼르소 답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신부가 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씨라고 부르는가를 묻는 것에서는 이번 번역이 더 이해가 잘 되었다.
결국 이책이 잘 읽힌 이유는 번역의 문제라기 보다 카뮈의 능력이었다는 내 나름의 결론에 다다랐다.
누구나 다 똑같은 표현법으로 사람을 대해아 하고, 확실한 설명이 불가능한 행동에 대해 지탄받아야 하는 사회. 개인의 성격과 특징은 인정되지 못하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규율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 저도 모르게 반기를 든 뫼르소는 진정 이방인이어야 하는지, 그 답을 2부의 마지막에서 발견했다.
'다른 이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내게 뭐가 중요하며, 그의 하나님이나 우리가 택하는 삶, 우리가 정하는 운명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단 하나의 운명만이 나를, 나 자신을, 그리고 나와 함께 무수한 특권자를 택해야 했는데, 그리고 이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형제라고 스스로 말하는데. '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