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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경우 이제까지 출간되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책들과 비교해보면, 그 크기와 두께 면에서 남다르다 할 수 있다.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께의 책들을 자주 만나보지는 못했기에, 조금 놀라기도 했고, 책을 펼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제목까지 “최악”이다.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대략 예상이 되는 관계로 그리고 이제까지 읽어왔던 오쿠다 히데오의 책들과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 걱정이 되기도 했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최악의 기준은 무엇일까. 구체적인 기준은 없지만, 대략 절대적인 기준보다는 상대적인 기준들이 더 많을 것 같기는 하다. 보통의 경우, 누구보다는 괜찮으니까 최악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누구보다 어떤 상황보다 나쁘니까 최악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절대적인 기준을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대충 최악의 상황이다 라고 판단되는 부분은 혹은 시점은 분명 존재하는 듯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황, 분명 좋지는 않다. 시작이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삶은 진창으로 수렁으로 빠져들어 점점 최악의 상황들을 초래하게 된다.
여러 차례의 고비를 넘겨가며 가와타니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는 기와타니 신지로, 그리 즐겁지 않은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갈매기 은행 직원 후지사키 미도리, 특별한 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량 노무라 가즈야, 이들이 최악의 등장인물들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한두명쯤은 찾을 수 있는 어쩌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이다. 삶이라는 굴레에 지쳐가고 있으며, 특별한 행복의 조각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견뎌가고 있는 하루가 조금씩 힘겨워지고 있는 그들의 삶을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좋아지길 바라는 상황들을 오히려 꼬여만 가고,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만 변해간다.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화를 내고 싶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들, 늘 머리를 숙여야만 하는 상황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잘못한 일들도 아닌데,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상황들임에도 그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단지 또다시 계속되고 반복되는 하루를 견뎌나가고 있을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암담한 혹은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 안쓰러움이 더해지기도 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똑같지는 않더라도 유사한 상황들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억울하고, 화도 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상황들, 분명 하고 싶은 말들은 많은데 큰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속으로 삭혀야 했던 순간들... 어쩌면 정말 현실적인 모습들이 담겨 있어서, 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더 짜증이 나고, 더 안쓰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무슨 일이라도 해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상황은 결코 나아지는 법이 없다. 오히려 엉켜만 가고, 그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들이 없어 보이기만 한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조금은 씁쓸한지 모르겠다. 오쿠다 히데오의 이전의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혹은 다른 결말들로 인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씁쓸하기는 하지만...
최악을 읽다 보면, 현재의 상황이 절대 최악은 아니구나 라는 약간의 위안을 얻게 된다. 그들보다는 훨씬 살만하고 행복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상대적인 만족감을 잠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최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조금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씁쓸하고 안타까운 감정들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마주 하고 있는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은 듯 하다. 최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소설 속에서 꺼내어 좀 더 행복한 세상에 옮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들이 아닌, 나의 바램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