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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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외모라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상대방을 평가하기 가장 쉬운 것 중 하나, 상대방을 판단하기에 가장 좋은 척도 등. 이런 것이 아무래도 외모가 가지는 가장 보편적인 특징이 아닐까.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라면 첫 만남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사람은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 테고, 못생긴 사람들이라면 첫 만남에서 좀 아닌데, 별로다,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아니라고 부정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 백 퍼센트가 전부 첫 만남에서 이런 기준으로 상대방을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이어 대화를 나누어보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면서 올바르게 생각을 가지고 나갈 것이다. 외모라는 것은 이 정도로 처음 만난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내리는 중요한 수단이다. 여기,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인 <그대의 차가운 손>에서도 ‘외모’로 얽혀있는 사람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들이 등장한다. 뚱뚱한 여자와 모든 면에서 잘난 여자.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남자와, 그 남자가 써낸 글을 읽는 작가인 또 다른 여자. 이렇게 보면 무척이나 복잡하지만,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간단한 구조이다. 얽혀있는 구조라고는 보기 힘든 작품이다. 아무튼 첫 만남에서 손을 보고 빠져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제목만큼 ‘손’이 주제가 되는 소설. 여기서는 ‘손’이 외모가 되어 판단의 척도가 되곤 한다.


이야기는 액자형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인 여자는 후배의 연극 공연을 보고 거기서 석고 작품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석고 작품의 작가인 미술가 남자를 만나게 되고, 회식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진다. 그리고 훗날 작가인 여자에게 미술가 남자의 동생이 찾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오빠가 쓴 원고를 보여준다. 그것을 읽고 오빠의 행방불명에 대해 얘기를 해달라고 말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스토리는 이제 미술가 남자의 글 속으로 이어진다. 그의 유년시절부터, 두 명의 여자를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들이 그 안에 들어있다.


살과 함께 파묻혀 버릴 것만 같았던 L, 완벽주의자였지만, 육손이었던 E.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연민이라고 해야 할까. 가끔씩 나는 연민을 느낀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노점상을 하는 아줌마가 커피체인점에서 주는 커피와 케이크 조각을 먹으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볼 때도 그렇고, 민망할 상황을 당한 사람을 볼 때도 그렇고, 뚱뚱한 사람을 볼 때도, 날씬한 사람을 볼 때도 나는 연민을 느낀다. 그리곤 곧 혐오한다. 이런 나한테 말이다. 그런 연민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나는 죄를 지은 듯 고개를 젓곤 한다. 이 작품을 읽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두 인물들을 보면서,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이 인물들이 내 머릿속에 유난히 선명히 남았던 것은, 아무래도 연민,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책장을 덮은 뒤로, 나는 이 인물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운형(미술가 남자)의 작품을 모조리 깨부수고 몇 번이나 작업실을 뛰쳐나갔던 L, 언제나 메말라 있던 E, 이 두 여자의 모습은 언제고 그 모습을 툭툭, 드러냈다. 그 인물들이 있었기에 장편소설인데도 호흡을 유지하며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생생하다고 느꼈다. 인물들이. 그리고 그들의 행동도, 심지어 충동적인 행동들도 모조리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라도 그 상황에서라면 이랬을 것 같아. 그랬을 거야. 이렇게 인물들을 이해하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는지 모른다. 이것도 연민으로 연결 지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또 다시 한강 작가에게 빠져들었다. 읽으면서 계속 몰입했고, 읽은 뒤에도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곧잘 까먹는 내가 유일하게, 물론 뚜렷하게까지는 아니지만,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휘몰아치듯 읽어 내려갔고, 읽은 뒤에는 그 잔상에 사로잡혀 며칠 동안 다른 책을 읽어도 계속 이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는 작품의 이야기들이, 분위기들이, 인물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나에게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곧잘 일어났던 것이다. 갑작스럽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행복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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