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p. 올해 학교에 들어간 ①민수는 만 한 살 때 처음으로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세 살 때부터는 글자를 읽었고 자기가 본 비디오를 송두리 째 외우고 다녀서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주변의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네 살이 되면서는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민수는 특히 기억력이 뛰어나서 네 살 때부터는 50권이 넘는 전집 그림책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책을 정확하게 찾아냈다. 다섯 살부터는 디즈니에서 제작한 비디오를 보고 혼자 영어를 익히면서 간단한 영어 문장으로 회화도 할 수 있었다. 민수의 인지 발달은 또래에 비해 꽤 뛰어난 편이다.
②진우(만 4세)는 두 살 때 숫자를 익히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스스로 읽기를 시작해서 현재 글자와 숫자를 모두 읽고 쓴다. 진우는 특히 숫자를 아주 잘 알아본다. 달력의 숫자를 정확하게 읽어낼 뿐만 아니라 "○월 ○일 ○요일입니다"라는 문장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서 엄마, 아빠를 매우 기쁘게 한다. 자동차 번호판 읽기에도 푹 빠져서 한 시간이 넘도록 지겨워하지도 않고 계속할 때도 있다. 진우는 기억력도 매우 뛰어나다. 자기가 시청한 비디오의 내용을 완전히 복사하듯이 외울 뿐만 아니라 기억나는 장면을 그대로 따라한다. 또 많은 노래를 정확하게 따라 불러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곤 한다.
③은서(만3세)는 숫자, 한글, 영어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아이다. 두 살 때부터 글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혼자서 한글을 깨우쳤다. 은서는 동요를 듣고 외워서 따라 부르곤 하는데 엄마, 아빠는 생후 5개월 무렵부터 하루에 3~4시간씩 보여준 교육용 비디오와 만화 채널 등의 효과라고 믿고 있다. 만 두 살 이후부터는 광고 문구를 몽땅 외우고 다녔고 지금도 글자 쓰기 놀이를 가장 좋아한다 하루 종일 이 놀이를 반복해서 할 때도 있다.
이 아이들은 모두 자폐 진단을 받았다. 정확하게는 자폐 증상의 하나인 과잉언어증 또는 광범위성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17p. ①민수는 평소 지나치게 책에 몰두해서 친구가 없고 혼자 놀기만을 좋아한다. 또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자주 한다. 집중을 잘하지 못하고 주의도 산만하다. 또한 글자를 잘 읽기는 하지만 언어 이해력은 또래보다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②진우 역시 혼자서 숫자와 글자를 익힌 똑똑한 아이였음에도 자폐 진단을 받았다. 특히 진우는 언어 표현이 자연스럽지 못해서 누구와 있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증상이 있었다. 부모와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과도 의사소통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③은서는 엄마의 요구에 별로 반응이 없다는 점이다. 부모의 말에 무표정하며 사람들과 눈도 맞추지 않는다. 또 스스로 먼저 말을 건네는 경우가 거의 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혼자 노래하는 등의 행동을 자주 모인다. 언어 발달과 인지 발달은 빨랐을지 몰라도 다른 부분은 또래들에 비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19p. 과잉언어증 (하이퍼렉시아). 의미를 전혀 모른면서 한글이나 영어를 기계적으로 발음하는 것으로 과거에는 자폐아들이 보이는 여러 증상 가운데 하나로 분류되었지만 최근에는 뇌가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한글이나 영어 등 문자나 숫자를 조건반사 식으로 가르치는 인지 중심의 과도한 조기교육에 따른 유아 정신 질환으로 보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0p.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1500여 명의 어린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 임상 연구에 의하면 부모가 자폐아라고 생각한 아이들 7명 중 1명 정도만이 선천적 자폐아였고 나머지 6명은 실제로 모두 하이퍼렉시아, 즉 과잉언어증 등 후천성 자폐로 분류되었다.
20p. 유럽과 미국 등 서구에서는 하이퍼렉시아의 원인이 부모의 무관심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극성인 부모와 과도한 조기교육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21p. 한국건강증진재단은 2012년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하는 78개월 미만 어린이 530여 명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10명 중에 3명이 고위험 수준의 언어 발달 장애, 정서 발달 장애, 사회성 발달 장애 그리고 자폐 증상을 보였고 이 연구팀 역시 문자와 숫자 중심의 과도한 조기 교육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암으로 사망하는 비율 10명중 2.76명)
24p. 40개월 은서의 하루 8시 30분 어린이집 출발. 9시 30분 어린이집 시작. 영어 연극, 한글 놀이, 숫자 놀이 점심 – 낮잠 오후 EQ 감성 발달 프로그램 15시 30분 문화센터 발레 스쿨 17시 TV 시청 - 저녁 식사 엄마와 학습지. 한글 또는 영어 엄마는 잠자기 전 30분간 책을 읽어줌. 22시 취침. 즉, 하루 6시간 인지 학습. 이른바 공부 중.
32p. 초등학교 5학년 진우. 각종 영어 말하기 대회 1등. 동생 9살 승우는 같은 대회 2~3등 임심 기간 – 영어 CD 매일 들음 생후 18개월 - 베이비 아인슈타인, 세서미 스트리트 영상물 (영어로 옹알이 엄마는 기뻐함, 36개월 이전에 영어를 익히면 이중 언어 구사자가 될 수 있다는 엄마의 신념) 영어 어린이집, 영어 유치원 진학, 각종 영어 말하기 대회 1등 석권 초등 5학년 소아 정신과 검사 결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뇌 부위(편도체와 기저핵)가 비활성화. 빈번하게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쉽게 포기하고, 학습 자체를 거부.
48p.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의사소통 지수가 높아야 영어를 잘 하는데, 조기 교육으로 감정의 뇌가 손상되어서 공감 능력도 떨어져서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주장을 앞세우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 되다 보면 능동적인 학습 자체를 거부하는 무기력에 빠진다.
45p. 사이코패스들의 공통점은 감정의 뇌가 크게 손상되어 있었다.
49p. 2003년 하버드대의 하워드 리스드슨 교수팀은 1960년대 TV와 함께 등장한 만 6세 미만 어린이 대상의 교육용 영상물의 교육 효과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효과 없음"의 결론에 이르렀다.
57p. 한두 사람이 빠졌을 때는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손을 뻗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빠져 있으면 아예 함정 자체가 보이지 않게 된다. 어느덧 깊고 넓은 함정은 수렁으로 바뀌어버렸다.
74p. 2013년 기준 서울 강남에는 전국 261개 소아정신과 병원의 약 10%인 27개의 소아정신과가 몰려있다.
81p.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 십대 자살은 약 8%, 2010년대 자살은 28%.
78p. 자살 충동의 원인 중 약 37%가 학교 성적과 진학 문제다. 공부 때문에 아이들이 자살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등에서만 발견되는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을 정도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에 정점을 찍었고, 우리는 지금 그 추세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시점이다.
103p.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영유아 보육 선진화’ 방안 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선진화’의 핵심은 가정에서 돌보던 아이들을 기관에서 돌보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결과 어린이집 등이 크게 늘었다. 1995년 약 9천개였던 어린이집은 2000년 1만 9천여 개로 늘었고, 2010년에는 약 3만 8천개에 이르렀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 숫자 1995년 약 30만 명에서 2010년 약 130만 명으로 4배 이상 크게 늘었다. 109p. 수돗물, 생수, 정수기 물을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물맛을 품평하는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차이가 없었다. 미국의 어떤 지역에서도 수돗물과 생수 두 가지만을 놓고 비슷한 조사를 실시했는데 무려 80% 가까운 사람들이 더 맛있는 물로 수돗물을 선택했다. 수돗물은 더러운 물이니 생수나 정수기를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생수업체와 음료 자본의 발명품이다. 1990년대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돈을 주고 물을 사먹는 것을 보며 신기해하던 기억이 있다. 당시만 해도 불과 20여년 사이에 우리도 그렇게 바뀔 것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조작된 수요란 바로 이런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112p. 2000년대 중반 주요 신문사들은 날로 하락하는 종이 신문의 영향력, 점점 심각해지는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특화된 면을 기획하는 방식으로 증면 경쟁에 나섰다. 이 무렵 각 신문의 교육 센션이 등장했다. 독자들은 교육 섹션을 신문의 일부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 제작과 운영은 모母 신문사와는 별도로 운영되는 외주업체가 담당하는 경우도 많다. 독자들이 기사라고 여기는 교육 관련 내용이 실은 기사라기보다는 학원 운영자 등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광고와 다름없는 경우도 있다.
119p. 우뇌 관련 전문가들을 찾아보았다. 사교육시장에는 적지 않은 분들이 있었고 아이들 교육과 관련된 칼럼을 쓰는 분들도 있었다. ... 대학 교수가 아닌, 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의 책임교수였다. ... 전공을 살펴봤다. 전공은 뇌 분야나 교육 분야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 국회도서관 자료 검색 시스템에 들어가서 이분의 이름을 키워드로 관련 논문, 기고문, 서적 등을 찾아봤다. 단 한 건도 검색되지 않았다.
137p. 모차르트 이펙트(뱃속의 태아에게 모차르트 등 바로크 시대의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것)는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한 연구실에서 시작됐다. ...독일 교육통계부는 효과를 입증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연구팀이 제시한 점수는 순간적인 반응이었으며, 그 효과도 20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40p. 외국어 조기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태아가 청각을 가장 먼저 발달시킨다는 과학적 사실을 인용하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과장이다. 청각이 발달하는 것과 소리를 ‘듣고’ 인지하는 것은 별개의 과정이다. 우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뇌로 듣는다.
143p. 선조들은 ‘세 살 공부 여든까지 간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170p.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의 제이 기드(Jay Giedd)박사 뇌과학 분야의 전문가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 지금 일어나고 있어요. 뇌과학의 성과들이 지나치게 서둘러 교육에 적용되고 있지요. 우리가 봐온 수많은 교재, 교구, 학습법 등이 정말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어떠한 과학적인 근거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 가장 좋은 조언은 우리 할머니들이 수세대 전부터 들려주셨던 말씀입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어라. 아이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라.’ 어떤 분들은 실망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미디어에 등장하는 과학적 근거가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기사들보다는 그게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171p. 우리나라 역시 인증받은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 적용하고 있는 ‘누리과정’을 보면 (외국과 마찬가지로) 문자 교육 등 인지 학습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173p. 미국 터프츠대 교수이자 ‘읽기와 언어 연구 센터’의 책임자인 메리언 울프(Maryanne Wolf)는 <<책 읽는 뇌>>에서 "독서는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 영역과 청각, 언어, 개념 영역을 연결하고 통합할 수 있는 뇌의 능력에 의존한다. 네 살이나 다섯 살이 되기 전 아이들이게 독서(문자를 통한 책 읽기)를 가르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매우 경솔한 일이며 많은 경우 역효과를 낼 수 있다."
174p.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유샤 고스와미(Usha Goswami) 교수 연구팀은 세 가지 문자를 대상으로 다섯 살 무렵부터 글자를 익혀 책을 읽은 아이들과 일곱 살 무렵부터 글자를 익힌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글자를 일찍 배운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훨씬 낮았다. 너무 빨리 시작되는 문자 교육은 오히려 아이의 뇌 발달에 독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196p. 베일러 의과대학 교수 스튜어트 브라운(Stuart Brown)은 찰스 휘트먼(교내 총기 난사자)을 포함해 26명의 살인범을 인터뷰 했다. 모든 살인범들은 첫째, 어린 시절 가정에서 학대 당한 경험을 갖고 있었고 둘째, 어린아이답게 놀아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후 42년 동안 6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 대해 심층 면접 연구를 수행했다. 마음껏 놀기, 즉 짜여 있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한 놀이를 충분하게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228p. 다마지오 박사가 재발견한 인간의 뇌, 감정과 정서의 느낌 그리고 생각과 이성의 관계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감정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방향타와 같다. 감정이 이성을 코치한다.’ ... 감정과 정서는 마음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인생의 초반부, 즉 만 12세를 전후한 어린 시기에 감정의 뇌가 먼저 자라는 것은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다. 감정이 이성을 코치하므로, 감정과 정서와 느낌이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정해주므로 감정의 뇌가 먼저 발달해야만 한다. ... 이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면 감정의 뇌에는 치명적인 구조적 손상이 생길 수도 있으며 이 결함은 평생을 두고 지속될 수 있다.
229p.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눈 맞춤을 진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 ... 234p.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기만 해도 아이의 뇌가 만들어집니다.
250p. 250만년 인류 출현. 몸짓 언어(gestural language), 3만년 전 언어 등장. 5천년 전 문자 등장. => 글을 읽는 건 아이가 커서 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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