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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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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의 기관사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갈래길 한쪽에 다섯 명의 인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한 명의 인부가 공사 중일 때 당신은 어느 쪽으로 기차를 몰까? 아마 각 사람의 목숨 값을 동일하다 가정하고 재빨리 계산해 한 명이 희생당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이런 판단은 제레미 벤담이나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한 ‘공리주의’자에 가깝다. 만약 한 명의 인부가 자기 아들이기 때문에 다섯 명의 인부를 희생하자는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 또는 그 한 명이 훌륭하거나 애틋한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상황을 바꿔서 내 앞에 덩치 큰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을 철로로 밀어서 기차를 막을 수 있다고 해보자. 똑같이 한 사람이 희생당하기 때문에 목숨 값은 똑같지만 뭔가 꺼림직하다. 그런데 확신은 없지만 이 덩치 큰 사람이 기차를 고장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자. 마음이 가벼워진다. 게다가 내가 직접 밀지 않고 단추 하나로 해결 할 수 있다면 더더욱 내 마음은 가벼워진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꺼림직하다. 왜 그럴까? 칸트는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했기 때문이라 한다. 남편을 자신의 현금 지급 도구로 생각할 때, 아내를 성욕 해결 도구로 생각 할 때, 타인이 나의 특정 목적을 위해 제작된 도구로 여길 때 우린 급격히 기분이 나빠진다. 여기에서 우린 덩치 큰 사람을 철로 막는 ‘바리케이트’라는 ‘도구’로만 여기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건 아닐까?


 하버드 대학교 정치철학 교수였던 존 롤스(1921~2002)는 여기에 ‘무지의 장막’을 쳐보자고 제안한다. 당신은 덩치 큰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섯명의 인부가 될 수도 있고, 승객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덩치 큰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공리주의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범위를 좀 더 넓혀 당신이 가난하며, 운동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며, 머리도 안좋고, 용모가 추하고, 뚱뚱하며 심지어 장애인이고, 소수 인종에, 형제 중 막내 여자로 태어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상위 1%인 300만명의 재산이 나머지 하위 90%인 2억7천만명의 재산을 합친것 보다 더 많고, 당신이 가난하게 태어날 확률은 그만큼 압도적이다. (비 올 확률이 90%면 우리는 당연히 우산을 준비한다.) ‘무지의 장막’이 벗겨지고 난 후에도 각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게 ‘차등원칙’에 입각한 사회 정치적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출생이라는 임의적 요소에 의해 사회적 부가 결정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우리가 “정의”를 고민하는 이유는 “정의”로운 사회여야지 공동체가 안정되고, 안정된 공동체여야지 기득권의 재산을 보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기득권층은 어차피 가진게 없기 때문에 외국에 의해 식민지가 되어도 잃을게 없다. 이런 경우 '민족주의' 외에는 특별히 피기득권층의 협조를 얻을 방법도 없다. 대한민국에 1㎡ 땅도 없는 우리에게 군대를 가라 하고, 정작 지킬게 많은 대통령, 총리, 여당 대표와 그들의 자식들은 군대를 안간다. 미국이 베트남에 파병 했을때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했을때 누구의 자식이 군대를 갔느냐에 따라 정치인들의 행동은 여실히 달라졌다.  
 논어 계씨 편 ‘불환과이환불균 불환빈이환불안(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백성이 평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고, 백성의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백성이 불안한 것을 걱정해라.’라는 대목이 떠오른다. 유럽이나 중국이 200년 안팎에서 왕조가 끝나는 것에 비해 조선, 고려, 고구려, 백제, 신라가 500년 이상을 유지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이 정신을 비교적 충실히 지켰기 때문이다. 출생률 저하를 걱정하지 말고, 부모의 재력에 의해 자식들의 삶이 결정되는 불평등을 걱정하고, 대기업 회장님들과 권력자들의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내외부의 적을 이용해 백성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사회를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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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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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고발자라는 시선으로 김용철 변호사를 욕하는 사람이 있다. 죄와 비리를 눈감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사는 사람을 사마천은 사기에서 ‘개’라 표현했다. 유교 사회에서도 충성은 백성에게 하는 것이었다. 근대 세계를 연 데카르트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통해 사유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 말했다.

 삼성에 있을 때 고발했어야지 왜 이제야 고백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매일 3번 반성하며 사는 사람은 귀감이 되는 사람이지 결코 우리 대다수의 사람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덕목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제껏 자신이 쌓아온 인간관계와 사회적 위치를 포기하는 그의 용기는 큰 감동을 준다.




 “삼성을 생각한다”의 핵심은 인맥사회다. 인맥사회이기 때문에 연구 계발을 통해 실력을 쌓기보다 룸살롱 접대와 뇌물에 치중한다. 이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저해한다. 기업은 이윤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법을 지키는데 드는 비용보다 인맥을 유지하는 비용이 싸다면 당연히 인맥을 유지하는 쪽으로 간다. 인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기업은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계 부정을 한다. 회계 부정은 주식 시장을 교란한다. 투명하지 못한 회계와 인맥으로 커온 기업은 해외 시장이 열릴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고, 힘 없는 노동자는 제일 먼저 짤린다.

부시 대통령의 친구가 CEO로 있던 미국의 7대 대기업 엔론은 회계부정으로 24년형을 선고 받았다. 국가의료보험조차도 없이 시장의 경쟁을 강조하던 미국에서 회계부정은 국가 경제에 기여한 점을 참작할 수 없고, 사면도 받을 수 없는 큰 범죄이기 때문이다.




 양심을 속여 가며 회사에 매달리는 이유는 해고되면 먹고 살길이 없는 사회 구조 때문이다. 노조가 강성인 이유도 회사에서 해고되면 먹고 살 길이 없기 때문이고, 경영자들이 야비하게 구는 이유도 이윤이 줄어들면 자신의 가족들이 먹고 살 길이 없기 때문이다. 경영이 안 좋으면 회사를 포기해야하는데,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무리하게 빌려서 부도가 날때는 친척, 친구, 은행까지 모두 망한다. 사회안전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큰 병이라도 최대 1년 300만원 까지만 지불하고, 노후, 퇴직 연금으로 일 자리가 없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면 어떨까? 국방의 의무를 위해 군대에 갈 때 총을 준비하지 않듯이 의무 교육을 받는 학생은 수업료는 물론 학용품, 교통비, 급식비도 국가가 지불해야한다. 대학등록금도 핀란드처럼 공짜도 아니고 프랑스 수준으로 한 학기에 50만원이면 어떨까?

그래도 OECD 최고의 자살율일까? 최저의 출산율일까? 아이의 어린 시절 추억을 영어로 날리고, 24시간 학원에 보내며 극성을 부릴까? 상사는 부하를,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피를 빨아댈까?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만들지 않으니 청년들은 모두 공무원 공부다. 구글이 10년 전에도 있었는가? 애플과 MS는 CEO들이 몇 살에 창업했는가? 천성적으로 객기를 부려야 할 청년이 도전과 모험을 못하게 만들어진 사회가 좋은 정치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람이 착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짜야지 훌륭한 정치라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고 국민이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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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 2010-05-22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짜피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사회구성원 개개인마다 다르니 그걸 전부 충족할 방법은 없겠죠. 뭔갈 바란다면 누가 해주길 바라지말고 자신이 나서야 변하기 마련입니다.

풀먹는사자 2010-05-25 17:01   좋아요 0 | URL
넵, 그래서 대한민국의 주인인 저는 투표를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정치, 사회 각지에서 의미있는 운동 하시는 분들에게는 기회 될 때마다 소액이나마 후원도 합니다.
그리고 기회 될 때마다 언론 출판 결사 집회의 자유를 활용합니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 - 독일을 알면 행복한 교육이 보인다 알면 보인다
박성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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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교육은 성공했다. 획일화 교육, 창의력 말살, 암기식 교육, 서열화, 경쟁 심화, 군대식 교육, 교사에 의한 독재 교육이 문제라면서 흥분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교육의 목적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교육의 목적은 현 체제의 유지다.

 서울대 출신 고위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이 서울대 교수들에게 교육 제도 개선에 대해 연구 용역을 준다. 이들은 자신들이나 자신들의 자녀가 유리하도록 교육 제도를 개선(?)한다. 잘 안돼도 괜찮다. 자신들의 자녀들은 조기 유학이나 해외 유학의 선택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공교육에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독일 대학생들이 한 학기 수업료가 80만원이 비싸다며 시위하고 있을 때,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한 달 80만원이라도 벌자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대학을 거부하겠다는 대학생이 나타나자 나중에 국회의원 되보려는 운동권 학생의 쑈라며 비아냥거린다.

 미국에서는 빅사이즈 옷이 있다. 빅사이즈 옷만 있는게 아니라 빅사이즈 패션 모델도 활성화 되어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여성 옷이 66사이즈만 되도 예쁜 디자인이 안 나온다. 점원이 비웃는건 그렇다치고 본인은 대단한 상처를 받는다. 친구라는 것들은 살 빼라며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다.

 프랑스에서 최초고용계약제(CPE)라며 26세 미만의 청년을 2년동안 고용하되 2년안에는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려했었다. 시위 때문에 법안은 철회되었다. 헌데 우리나라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눈높이의 문제라며 대통령님께서 충고하신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주인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왜 우리는 노비처럼 살아갈까? 돈 없고 뚱뚱하며, 산업 재해로 다치거나 죽기 싫어하는 니가 문제야라며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버티지 못하고 패배한 사람은 자살한다. OECD국가 1위의 자살율과 최저 출산율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렇다면 1945년 2차세계대전 후 잿더미에서 출발한 독일은 어떨까?




 독일은 학교에서 정당운동 사회운동 하는 법을 가르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인으로서 사는 법을 가르친다. “공부 못하면 정치나 해.”라는 말이 잘 쓰이는 농담이라 한다. 불우이웃 돕기를 위해 바자회를 직접 기획 해본다. 직업 체험을 위해 이력서 쓰는 법도 배우고 실습도 나간다. 초 ․ 중등학교에서 단편적인 암기 보다는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더욱 중요한 교육의 목표로 정한다.

 대학을 평준화했으며, 실업계 고등학교만 나온 마이스터(명장 明匠)가 의사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도 있다. 자살율은 우리보다 낮고, 1인당 GDP등 각종 경제수치는 당연히 우리보다 훨씬 앞선다. 15세 대상 PISA 국제학력평가 점수가 대한민국보다 나쁘지만 100위권 대학 500위권 대학의 성적은 대한민국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20년 전에는 통일까지 해냈다.




 일제고사 성적을 높이기 위해 어린 학생들 상대로 유치한 방법을 쓰는 우리나라 교장 선생님과 “단순한 지식교육과 인간 교육, 둘 중 하나를 버리라면 나는 지식교육을 버릴 것이다(241p)”라고 말하는 독일 교장 선생님의 대비는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리지 못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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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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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우파를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이렇게 정의했다. "우는 세계를 약육강식 정글로 본다. 그 두려움, 스스로 포식자가 되어 해결하려 한다. 더 많은 자원 독점해 자기는, 살아남는 게다. 세계를 약육강식 정글로 본다. ․․․․․․ 반면 좌는 정글 자체를 문제 삼는다. 개인이 아니라 결국 정글 탓인 게라. 정글의 공포는 잘게 나눠 각자가 감당할 공포의 규모를 줄여 대처하려 한다." 여기까지는 현명한 사람이 알기 쉽게 정의 내려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그 소설은 개연성과 필연성을 가지고 적절한 은유를 통해 적절한 구성과 문체를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펼쳐 낼 수 있을까?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작품을 만난다 해도 독자인 내가 내공이 딸릴 수도 있다.  


 타워는 가로 세로 5km 높이 2408m에 인구 50만명이 살고 있는 건물로 “빈스토크”라 불리운다. 잭과 콩나무에 나왔던 콩나무 이름이다. 빈스토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수직주의자와 수평주의자로 나눌 수 있다. 부자 일수록 타워의 높은 곳에 살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으로 다닌다. 수평주의자들은 낮은 곳에 살며, 주로 해당 층 안에서 수평으로 짐을 옮기는 육체노동자다. 이 둘은 투쟁한다. 게다가 정적들끼리 경쟁도 하고, 외국과 전쟁도 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만드는 “블로거 문학 대상”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3위에 올라간 “타워”의 배경이다. 두바이가 채무 상환 유예를 요청하면서 겨우 겨우 지은 버즈두바이가 828m인데, 빈스토크는 높이가 무려 2408m이다. 좌파 우파라고 해서 어려운 정치소설은 아니다. 문체도 사뿐사뿐하고 가독성도 좋다. 일명 2시간 만에 읽을 수 있는 책이며, 2~3페이지에 한 번씩 유머도 빵빵 터진다. 읽다보면 사회적 이슈들과 부합되는 장면이 있고, 이 이슈들을 경쾌하게 표현했다. 


 [동원박사 3사람]을 읽을 때 KBS 1박2일의 상근이 -연봉이 5천만원 쯤 된다고 한다.- 보다 돈을 못 버는 내 자신을 볼 수 있고, [자연예찬]에는 정부에게 쓴소리는 안하고 자연만 예찬하는 지식인이 나온다.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는 외교부가 외면했지만 네티즌들이 살려준 온두라스의 한지수씨가 연상되고,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에서는 기동 연습 도중 인력의 절반 만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해내자 나머지 절반의 직원을 짤라 버린 얘기가 나온다. [광장의 아미타불]에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코끼리까지 도입된다. [샤리아에 부합하는]에는 테러자금을 통해 명품녀가 된 테러리스트가 나온다. 이 소설의 절정은 6째 이야기 [샤리아에 부합하는]이 아니라 부록이다. 마을의 입소문 창구인 동네 커피점이 대형 프랜차이즈 테이크 아웃 커피점에 무너지고, 사람들은 각자 테이크 아웃해서 집에 틀어박혀 커피를 마신다. 그러자 TV의 영향력이 커지고, 수평주의자들은 선거에서 지고, 수직주의자들은 승리한다. 


 1300만부를 넘게 판매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는 “1978년 쓰여진 자신의 책이 지금도 이렇게 읽히고 있는 것이 비극”이라 했다. 30년 후에도 타워 안에서 수직주의자들과 수평주의자들은 계속 싸울 것이다. 말로 비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대안을 가지고 정책을 짜보라고 하면 어렵다. 역학관계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점은 말처럼 쉽지 않다. 왕에서 중산층 시민의 자유까지 자유의 영역이 점점 넓혀졌듯이 미래에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유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2010년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박민규는 [타워]의 추천사에 “100년 후, 한국 문단은 배명훈에게 감사할 것이다.”라고 하였지만 100년 후까지 갈 것도 없이 10년 후 미래인들은 [타워]가 뭘 꼬집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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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실 혁명 핀란드 교육 시리즈 1
후쿠타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 비아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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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육의 성공

 

 

북위 60도 영하 40도의 핀란드는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가장 가난 한 나라였다. 수출의 20%를 소련에 의존하며 살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식량 배급제를 선택해야 할 만큼 사회가 혼란에 빠졌다. 이런 혼란을 핀란드는 "사람" 즉 교육에 투자함으로서 추락 10년만에 미국을 따라잡는다. 핀란드 인들은 어떻게 공부하길래 하루 6시간 공부하고서는 하루 9시간 공부하고도 2~3위 하는 우리나라 학생을 이겼는지 궁금했다.

"아이의 사생활"을 읽다보면 남자와 여자아이는 발달 순서가 다르기 때문에 따로 분리해서 교육을 시키는게 좋다라는 생각이 든다. 헌데, 아이들을 성적이든, 성별이든 "분리"하는 것보다는 어려서부터 서로 다른 처지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더욱 좋다라는 나의 생각과 충돌을 일으켰다. 어떻게 해결을 봐야하나를 생각하다가 이 책 "핀란드 교실혁명"에서 해답을 얻게 됐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고, 선생님이 수업을 이끌고 아이들이 따라가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이다.


냇물로 말을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공부는 결국 학생이 한다. 그런데 왜 선생님이 가르치고 학생이 따라가는 걸까? 왜 학기초 첫 시간 선생님이 자기 스타일을 말하고 학생들이 그에 맞춰갈까? 만일 아이들의 학습 스타일에 따라 선생님이 변화한다면 분리형 수업은 상당 부분 필요없어 진다. 아이가 빨리 배운다면 빨리 배우는 만큼 가르쳐주고, 늦게 배우면 학습 속도에 맞춰 선생님이 가르쳐 주면 된다. 문제를 많이 풀면서 원리를 도출해 내는 아이가 있을 수 있고, 원리를 한참 들여다보고 문제를 푸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선생님의 스타일이 아니라 학생의 스타일이 더더욱 중요하다.  

PISA 국제학력 평가에서 각 과목별로 우리나라는 1~5위 쯤 한다. 그런데 좀 불안한 구석이 있다. 일단 많이 인용되는 2000년 PISA 자료. 2000년은 헌법재판소에서 과외교습 금지를 위반이라고 판결한 해이다. 음지에서 뛰놀던 사교육이 양지로 나온 영향인지, 2004년 선출된 공정택 교육감의 영향인지, 외국어고의 영향인지 2006년 성적을 보면 예전만 못하다. 과학 7~13위, 국어(읽기) 1위, 수학 1~4위 수준이다. 상위 5% 아이들의 성적을 비교해봐도 과학 17위, 국어(읽기) 1위, 수학 2위다. 상위권 아이들은 오히려 평균 점수를 깎아먹고 있다.  


"아웃라이어"를 보면 동아시아 사람들이 수학을 잘한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영어나 프랑스어에 비해 숫자 체계가 상당히 논리적이라 한다. 1,2,11,12,20을 영어로 읽어보고 우리나라 말로 읽어보면 우리나라가 훨씬 합리적이다. 게다가 모든 숫자가 일 음절로 읽혀서 순간기억 저장소에 넣기도 쉽다. 그래서 수학 1~4위 나라는 핀란드를 제외하고는 대만, 홍콩, 한국 이렇게 동아시아 국가들의 독주다.

국어(읽기)의 경우 한글이라는 기가막힌 문자로 인하여 문맹률이 낮아서 점수가 높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에 유학 온 일본인들도 문자 메세지를 이용할 때 한글로 일본어를 표기한다고 한다. 

이런 잇점은 중3, 고1 레벨의 학업 성취에서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 이상의 학문에서는 한국 시스템은 힘이 다한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수준별 학습 60년은 세계 수준에 근접한 대학하나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문맹률은 낮은데 문서해독능력 즉, 구직원서나 월급 명세서 등의 문서를 이해하는 능력은 OECD 국가 중 꼴찌가 되었다. (아마 독서를 하지 않고 살며, 서울대 출신들이 문서 해석해 주는걸 금과옥조로 여기며 살아서 그런가보다.)

선생님 위주의 교육을 막으려면 한 반에 20명 이상이 되면 안된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2~3명의 선생님이 같이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강바닥에 시멘트 바른다고 22조 날리고, 3년 후에 시멘트 없앤다고 50조 날리며 쓸 돈으로 교육에 투자하자. 조상의 빛나는 유산으로 생겨난 학문의 잇점과 타고난 재능을 어리석은 정치로 망쳐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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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이야기 2009-11-21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군요.

저는 지금 프랑스 여행 중입니다. 파리에서 자란 여섯 살짜리 한국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수준이 높아, '설마 아이가 그린 건 아니죠?' 하고 물었어요. 그런데 1, 2년 전쯤에 아이가 직접 그린 거라고 하더군요. 구성이며 소재 사용방법이 아주 훌륭했거든요. 마치 파울 클레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달까요.

아이 어머니에게 아이가 재능이 있다고 말을 건넸더니 '프랑스 아이들은 그림을 다 잘 그려요'라고 대답합니다. 탁아소에 보낸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다나요. 도화지를 주고 사인펜, 붓, 색연필 등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온갖 도구를 주고는 무작정 그리게 한답니다. 아무리 못 그려도 타박을 주지 않고 칭찬을 해주니 아이는 자신감에 차서 그림들을 그리게 된대요. 원래 이 아이도 세 살쯤에는 그림을 엄청 못 그렸는데 일이 년 지나고 나서는 꽤 그리더라고, 그저 많이 해보고 (그림 그리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칭찬 많이 해주었더니 일정 수준 이상의 솜씨는 갖게 된 거지요. 현재는 유치원에 다니는데, 다른 아이들 그림을 보아도 그런 수준은 된다는 거예요.

이런 아이들이 예술을 누릴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거겠죠. 저처럼 아예 미술 분야에 대해서는 몸서리를 치며 '난 그림 그리는 재능이 없어'라고 좌절하지 않고요.

그중에서도 특별히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있겠지만, 어지간한 아이들도 일정수준은 된다니, 왜 파리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그렇게도 아이든 어른이든 사람이 많은지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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