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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좌파와 우파를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이렇게 정의했다. "우는 세계를 약육강식 정글로 본다. 그 두려움, 스스로 포식자가 되어 해결하려 한다. 더 많은 자원 독점해 자기는, 살아남는 게다. 세계를 약육강식 정글로 본다. ․․․․․․ 반면 좌는 정글 자체를 문제 삼는다. 개인이 아니라 결국 정글 탓인 게라. 정글의 공포는 잘게 나눠 각자가 감당할 공포의 규모를 줄여 대처하려 한다." 여기까지는 현명한 사람이 알기 쉽게 정의 내려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그 소설은 개연성과 필연성을 가지고 적절한 은유를 통해 적절한 구성과 문체를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펼쳐 낼 수 있을까?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작품을 만난다 해도 독자인 내가 내공이 딸릴 수도 있다.
타워는 가로 세로 5km 높이 2408m에 인구 50만명이 살고 있는 건물로 “빈스토크”라 불리운다. 잭과 콩나무에 나왔던 콩나무 이름이다. 빈스토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수직주의자와 수평주의자로 나눌 수 있다. 부자 일수록 타워의 높은 곳에 살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으로 다닌다. 수평주의자들은 낮은 곳에 살며, 주로 해당 층 안에서 수평으로 짐을 옮기는 육체노동자다. 이 둘은 투쟁한다. 게다가 정적들끼리 경쟁도 하고, 외국과 전쟁도 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만드는 “블로거 문학 대상”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3위에 올라간 “타워”의 배경이다. 두바이가 채무 상환 유예를 요청하면서 겨우 겨우 지은 버즈두바이가 828m인데, 빈스토크는 높이가 무려 2408m이다. 좌파 우파라고 해서 어려운 정치소설은 아니다. 문체도 사뿐사뿐하고 가독성도 좋다. 일명 2시간 만에 읽을 수 있는 책이며, 2~3페이지에 한 번씩 유머도 빵빵 터진다. 읽다보면 사회적 이슈들과 부합되는 장면이 있고, 이 이슈들을 경쾌하게 표현했다.
[동원박사 3사람]을 읽을 때 KBS 1박2일의 상근이 -연봉이 5천만원 쯤 된다고 한다.- 보다 돈을 못 버는 내 자신을 볼 수 있고, [자연예찬]에는 정부에게 쓴소리는 안하고 자연만 예찬하는 지식인이 나온다.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는 외교부가 외면했지만 네티즌들이 살려준 온두라스의 한지수씨가 연상되고,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에서는 기동 연습 도중 인력의 절반 만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해내자 나머지 절반의 직원을 짤라 버린 얘기가 나온다. [광장의 아미타불]에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코끼리까지 도입된다. [샤리아에 부합하는]에는 테러자금을 통해 명품녀가 된 테러리스트가 나온다. 이 소설의 절정은 6째 이야기 [샤리아에 부합하는]이 아니라 부록이다. 마을의 입소문 창구인 동네 커피점이 대형 프랜차이즈 테이크 아웃 커피점에 무너지고, 사람들은 각자 테이크 아웃해서 집에 틀어박혀 커피를 마신다. 그러자 TV의 영향력이 커지고, 수평주의자들은 선거에서 지고, 수직주의자들은 승리한다.
1300만부를 넘게 판매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는 “1978년 쓰여진 자신의 책이 지금도 이렇게 읽히고 있는 것이 비극”이라 했다. 30년 후에도 타워 안에서 수직주의자들과 수평주의자들은 계속 싸울 것이다. 말로 비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대안을 가지고 정책을 짜보라고 하면 어렵다. 역학관계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점은 말처럼 쉽지 않다. 왕에서 중산층 시민의 자유까지 자유의 영역이 점점 넓혀졌듯이 미래에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유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2010년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박민규는 [타워]의 추천사에 “100년 후, 한국 문단은 배명훈에게 감사할 것이다.”라고 하였지만 100년 후까지 갈 것도 없이 10년 후 미래인들은 [타워]가 뭘 꼬집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