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인물/여운형

여운형(1886년~1947년)은 독립운동가로, 1918년 신한청년당을 조직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1945년 해방 이후 1947년 암살당할 때까지 이승만, 김구와 더불어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정치가이기도 했다. 여운형의 이력은 다소 독특한데, 기독교 전도사 출신으로 사회주의자가 되기도 했고 체육계 인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여운형은 1990년대 이후 역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으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다. 분단체제를 거부하고 좌우의 대화와 타협을 모색했던 그의 선구적인 태도가 뒤늦게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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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사건/무신 정권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으로 이어지다 최충헌이 권력을 잡은 후 최씨 무신정권이 지속됐다. 고려는 문벌귀족사회였다. 경주 최씨, 경원 이씨 등 소수의 특정가문이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한 것이다. 오죽하면 귀족이 죄를 지으면 귀향형을 내혔다. 유배형을 의미하는 귀양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려보낸다는 뜻의 귀향형으로, 그만큼 소수 가문이 개경에서 나라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문벌귀족은 과거제와 음서제 등을 통해 문신이 돼 국정을 주도했다.

무신 정권은 특별한 국가 운영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충헌이 <봉사10조>를 제시하며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이 또한 말뿐이었다. 이의민은 아버지가 소금장수, 어머니가 절의 노비 출신인 하층 계급 출신인데 최고 권력자가 됐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각종 민란이 집중된다. 사회 혼란과 신분 해방의 욕구가 겹친 것이다.
망이 망소이의 난, 효심과 김사미의 난, 만적의 난 나아가 신라부흥운동, 고구려부흥운동, 백제부흥운동까지 전개됐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회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결국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는 주권을 침탈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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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 공부법으로만 하면 돼‘ 같은 획일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학 최상위권들에게 ‘어떤 문제집을 풀고, 어떤 수업을 듣고, 어떤 유명 선생님의 공부법을 따르고, 선행은 어디까지 나가야 한다‘ 같은 공통된 특징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놀랍게도 그들은 똑같은 잠재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수학 공부를 어떤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그리고 수학 공부를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라는 목표에 대한 인식이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100%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방법은 어떤 공부법을 단순히 따른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수학을 접근하는 올바른 관점과 목표의식을 정확하게 갖추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공부한다면 어떤 공부법이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성향과 장단점에 맞춰 자신만의 공부법을 제각각 발전시켰습니다.

대부분 수학머리라고 하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수학 재능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수학 공부를 바라보는 관점과 목표의식을 무의식중에 깨닫고 터득한 순간 바로 수학머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선천적 재능의 차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재능의 차이는 오직 처음 10점뿐입니다.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지는 시점은 그들이 수학 공부에 대한 관점과 목표의식을 탑재한 이후입니다. 그들은 조금 좋게 타고난 재능으로 수학 공부를 하다가 남들보다 빠르게 깨달아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깨달은 건 공부 방법이 아니라, 수학을 잘하려면 무엇이중요한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어내야 하는지, 입니다.

수학 최상위권들은 모두 제각각의 공부법을 갖고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무의식중에 공유하고 있던 수학 공부에 대한 관점과 목표의식을 여러분들 머리에 이식시키려고 합니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공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공부를 통해서 정확히 무엇을 얻어내야 하는지 깨닫는 것입니다. 그 순간 여러분의 수학머리는 번뜩 깨어날 것이고, 그수학머리를 통해 각자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 스스로 발전시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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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명문장/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강보에 싸인 두 병에게
— 두 아들 모순(淳)과 담(淡)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

윤봉길 의사가 자녀들에게 남긴 글이다. 이봉창, 윤봉길은 독립운동사에 손에 꼽는 의사들이다. 천황 폭살시도, 홍커우공원 의거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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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이전에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대학원생 조교로 일했었다. 그리고 그만두었다. 그만둔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절망과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이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저자는 몇 번의 ‘퀴팅(그만두기)’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왔다. 이를 통해 인생에서 다음 단계의 문을 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의 단계를 끝맺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그만두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저자는 이러한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찾기 시작했다.

무작정 버티는 건 기본값이다. 인생에 또 다른 옵션을 추가하려면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퀴팅의 기술’이다. 이 책을 통해 그만두기의 본질적 가치를 깨닫고 버티지 않는 삶에서 얻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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