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노력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발명왕 에디슨이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으며 괴테는 "천재라는 것은 노력의 발명"이라고 하였음이 근거로 제시된다. 그렇다면 범재들도 죽어라고 주식에 대해 공부하고 노력하면 1년에 2000%가량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어렸을 때는 정말 노력만 하면 그렇게 천재 비슷하게 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니 그런 말들은 주로 "이미 1%의 영감을 타고난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고 그저 천재가 둔재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당신들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보내는 격려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국어사전에서조차 천재를 "타고난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러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할 뿐 "노력의 결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천재 같은 사람들을 보았을 때 ‘나는 나, 너는 너’라고 생각하며 살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시기심도 있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기도 하다. 특히 천재가 저 먼 나라에 있다면 그저 찬사나 보낼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 보면 우리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듯한 느낌에 빠지고 만다. ‘왜 나는 이 사람처럼 되지 못하고 저 사람처럼 하지 못할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그래서 공상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천재가 되고 은행도 털고 슈퍼맨도 되고 억만장자도 되고 투명인간도 되어 이 세상을 누비고 다닌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그 돈으로 뭘 하겠다는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공상은 즐겁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리고 그 공상에서 깨어나면 현실이 싫어진다. 내가 그랬다.

핵심은 천재들의 이야기에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번다는 것은 다른 보통 사람들과의 게임이지 당신보다 크게 잘난 사람들과의 게임이 아니다.

부자가 되는 데는 신이 내린 어떤 재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학벌도, 배경도, 자격증도 큰 도움이 안 된다. 부자가 되는 길을 걷고자 한다면 그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결국 그것은 다른 보통 사람들과의 게임일 뿐이다. 보통 사람들과의 게임이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가 속한 분야에서 다른 보통 사람들과 경쟁하여 이기면 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이 놀 때 놀지 말고 그들이 잠잘 때 잠을 덜 자고 그들이 쓸 때 덜 씀으로써 목돈을 준비하고 기회를 찾으면 된다.

부자가 되는 데 있어서의 경쟁자는 천재가 아니라 결국은 자신의 의지라고 하는 이 지극히 간단한 사실이 독자들 마음속에 각인되기를 바란다.

대원칙: 자기가 얼마나 부자인지 보여 주려고 과시하는 연놈들은 절대 믿지 마라. 부동산 고수로 알려진 연놈이 임장(현장 답사) 비용으로 수십, 수백만 원 내라고 하는 거, 그 연놈이 당신 돈으로 부자 되고 싶어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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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장소/서울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관습법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다는 것이 당시 헌법재판소의 주요 논지였다. 그만큼 서울이 대한민국의 중심지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서울은 두 나라의 수도를 품고 있다. 조선 시대 한양 그리고 백제의 한성이 모두 서울의 범주에 들어간다. 조선 시대 한양이 사대문 안 즉, 오늘날 종로구 일대라면 백제의 한성은 오늘날 송파구를 중심으로 강남구와 강동구 일부를 포함한다. 서울은 천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사는 세계적인 대도시로, 지역의 문화유산과 도시 확장의 과정이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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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에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이라는 수식이 자주 붙는다. ‘맑은 바람에 밝은 달’이라는 이 청명한 이미지는 산은 아름답고 물은 맑다는 산자수명(山紫水明)과 함께 어우러진다. 충청북도의 상징적인 대처(大處)는 청주와 충주이고, 유명한 명산대찰은 보은의 속리산 법주사이고, 대표적인 서원(書院)은 괴산의 화양동구곡에 있는 화양서원이지만, 충북이 내세우는 청풍명월의 고장은 제천과 단양이다.

청풍이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서 깊은 고을로서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 한벽루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사군산수 답사의 첫 번째 고장으로 청풍을 찾은 것도 이 한벽루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벽루 하나만을 보기 위해 청풍에 온다 해도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누정을 수리하는 것은 한 고을의 수령 된 자의 마지막 일거리〔末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잘되고 못됨은 실로 다스림, 즉 세도(世道)와 관계가 깊은 것이다. 세도가 일어나고 기욺이 있으매 민생의 편안함과 곤궁함이 같지 않고 누정의 잘되고 못됨이 이에 따르니, 하나의 누정이 제대로 세워졌는가 쓰러져가는가를 보면 그 고을이 편안한가 곤궁한가를 알 수 있고 한 고을의 상태를 보면 세도가 일어나는가 기우는가를 알 수 있을지니 어찌 서로 관계됨이 깊지 않겠는가.

우리나라는 정자(亭子)의 나라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자가 있어 그저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정자 문화와는 완연히 다르다.

한국의 산천은 부드러운 곡선의 산자락이나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 한쪽에 정자가 하나 있음으로 해서 문화적 가치가 살아난다며 이처럼 자연과 친숙하게 어울리는 문화적 경관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표정이라고 했다.

정자는 누마루가 있는 열린 공간으로 2층이면 누각, 단층이면 정자라 불리며 이를 합쳐 누정(樓亭)이라 하는데 흔히 정자로 통한다. 정자는 사찰·서원·저택·마을마다 세워졌지만 그중에서도 관아에서 고을의 랜드마크로 세운 것이 규모도 제법 당당하고 생기기도 잘생겼다. 정자는 생김새보다 자리앉음새가 중요하다. 그래서 강변에 세운 관아의 정자에 명작이 많다.

우리나라 정자의 미학은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비교할 때 확연히 드러난다. 중국의 정자는 유럽의 성채처럼 위풍당당하여 대단히 권위적이고, 일본의 정자는 정원의 다실로서 건축적 장식성이 강한 데에 반하여 한국의 정자는 삶과 유리되지 않은 생활 속의 공간으로 세워졌다. 그 친숙함이야말로 우리나라 정자의 미학이자 한국미의 특질이기도 하다.

일찍이 일본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한·중·일 3국의 미술적 특성을 비교하면서 중국미술은 형태미가 강하고, 일본미술은 색채 감각이 뛰어나며, 한국미술은 선이 아름답다며 중국 도자기는 권위적이고, 일본 도자기는 명랑하고, 한국 도자기는 친숙감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래서 중국 도자기는 멀리서 감상하고 싶어지고, 일본 도자기는 곁에 놓고 사용하고 싶어지는데 한국 도자기는 손으로 어루만져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런 친숙감이 우리나라 정자에도 그대로 어려 있다.

권위적이지도 않고, 뽐내지도 않는 평범한 형식 속에 깊은 정감이 서려 있는 친숙감과 생활 속에서 은은히 일어나는 미감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미의 특질이다. 이런 우리 도자기의 미적 특질은 우리나라 정자 건축에도 그대로 대입된다. 확실히 정자는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할 만한 우리 문화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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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 인물/정조

정조(1752년~1800년)는 조선의 22대 군주로, 1776년부터 1800년까지 재위했다. 할아버지 영조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을 어린 시절 경험했고, 붕당 간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영조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적극적인 지지로 국왕이 될 수 있었다.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활쏘기에 힘썼던 것으로 유명하다. 대단한 독서가였고 사신을 중국에 파견할 때면 큰돈을 들여 중요한 서적을 다량으로 구매하게 했다.
그는 조선 후기의 어떤 군주보다 개혁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쳤던 인물이다. 초계문신 제도와 규장각 제도로 개혁 인사들을 길렀다. 초계문신 제도는 젊은 관료들의 재교육 과정, 규장각은 원래 왕실 도서관 정도의 기능이었으나 이곳에서 정조와 뜻을 같이하는 여러 개혁 인사들과 교류하며 정력적인 활동을 벌여나갔다.
규장각 검서관에 서얼 출신인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을 등용하여 서얼들에게도 일정 정도 기회를 줬다.

적극적인 탕평 정책을 통해 붕당 간 대화를 모색했고 신해통정책을 통해 무허가 상인으로 불리던 난전 상인들의 자유로운 상행위를 허락했다. 또 문체반정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인 남인에 대한 노론의 공세를 막아내기도 했다. 천주교에대한 정책은 대부분 온건하게 처리했지만 제사를 부정하는 등 유교 질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 엄격하게 대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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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느껴질 때

내가 말한다. 경제적으로 실패하였다면 저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그 체면에 "흠집을 내라scratch". 출발점을 저 낮은 곳에 다시 "그어라scratch". 당신이 놓치려고 하지 않는 생활수준이라는 것을 "지워 버리고scratch" 새로운 "출발점scratch"에서, "무에서from scratch", "근근이 살아가면서scratch along" "돈을 모아라scratch up". 그러면 "돈scratch"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실패로부터 탈출하는 비결이다. 스크래치하라!

-실패하면 제로 점으로 내려가라 中에서

삶이 그대를 속이면 분노하라

서진규. 그녀는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읽어라―에서 ‘이만큼 성공하기까지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반항심과 복수심이다.’라고 쓰고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벌레처럼 나는 먹고 싸고 먹고 싸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었으며 내일은 다시 어제였다. 조그마한 차이도 없었다. 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내가 분노하여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나는 혐오스러운 나의 삶이 너무나도 한심하였고 끝내는 저주스러웠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분노하였다. 내가 나를 죽이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그런 혐오감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절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5월의 찬란한 햇살 밑에서 향긋한 꽃 내음을 그대로 들이마시며 어깨를 펴고 살고 싶었다.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 뒷바퀴를 돌리는 것은 당신의 발이지만 앞바퀴를 돌려 방향을 잡는 것은 당신의 손이며 눈이고 의지이며 정신이다. 당신의 발이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움직여는 주지만 정작 당신의 손은 호주머니 속에 깊이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정작 당신의 눈은 당신 앞에 놓인 길을 바라보지 않고 옆에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오토바이들과 스포츠카만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때문에 비록 열심히 페달을 밟고는 있지만 당신이 탄 자전거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그렇게 삶에 질질 끌려다니며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들이여. 이제는 그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아라. 비겁하게 외면하지 말라. 그 삶이 자랑스러운가? 이제는 그 삶에 대해 분노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파충류와 포유류의 차이 중 하나는 파충류는 본질적으로 화를 내거나 기쁨을 내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뇌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변연계가 퇴화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이 분노할 대상임에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미 당신의 뇌는 썩어 버린 것이다. 차라리 강물에 빠져 죽어 버려라. 하지만 이제라도 삶이 당신을 속인다고 생각되면 그 삶을 던져 버려라. 내동댕이쳐라. 삶은 한 번뿐이다. 삶에 비굴하게 질질 끌려가지 마라. 명심해라. 당신이 분노하여야 할 대상은 이 세상이 아니다. 당신의 현재 삶에 먼저 슬퍼하고 분노하면서 ‘No!’라고 말하라. Say No! 그리고 당신의 삶을 스스로 끌고 나가라. 당신이 주인이다.

현재의 삶이 절망스럽고 괴롭고 암흑에 싸여 있는 것같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이제 분노하라. 분노를 느끼는 사람만이 닫힌 문을 세게 쾅쾅쾅 두드릴 수 있다. 용수철처럼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신의 삶을 이 거친 세상에서 우뚝 홀로 세울 수 있도록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피 튀기듯 노력하라. 그리고 이제는 자전거 손잡이를 제대로 잡고 정면을 바라보고 페달을 밟아라. 그렇게 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당신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돈이 당신의 노예가 되어 당신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인생역전은 당신 스스로 현재의 삶에 분노하여 그 삶을 뒤집어 버릴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수백억짜리 복권에 이번에는 내가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달콤한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돈독이 올라야 부자가 되는 줄 아는가? 투자 기법을 몰라서 부자가 못 되는 줄 아는가? 절대 아니다. 일확천금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꿈 깨라. 쇠고랑을 찰 기회만 있을 뿐이다. 인터넷에서 광고만 보아도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여. 메일만 보내면 수억 원을 벌 수 있다고 떠드는 자들이여. 편안하게 빨리 돈 벌고 싶어서 애를 태우는 자들이여. 평생 가난의 괴로운 숯불이 이마 위에 올려지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는 그대들이 한시라도 빨리 그 허황된 몽상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피와 땀과 눈물과 시간 없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굳은 것이라고 다 불변의 것"은 아니며 "출렁인다고 해서 다 부질없는 것"도 아님을 깨닫고 "굳은 땅에서 패이고 갈라진 것들"과 "슬픔으로 허물어진 상처들"로 가득 찬 "잘못 살아온 세월"을 지우고 "다시 출발하고 싶은 세월"을 시작하여라.
종종 자기혐오에 빠져 죽고 싶다고 말하는 독자 메일을 받는다.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물어보는 독자들도 있다. 이런 독자들에게는 언제나 이렇게 답장하곤 하였다: "너 자신을 죽이고 싶다면 그 죽이고 싶은 인간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제삼자 입장에서 살펴보아라.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이 아마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길거리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치자.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칼로 찔러 죽이겠냐? 아니면 이런 사람도 있구나, 불쌍하구나, 생각하면서 뭔가 이끌어 주고 도와주고 싶어질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바로 그 마음을 너 자신에게 가져라. 너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보살펴라."
"난 내가 혐오하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면제를 먹었죠. 하지만 내 안에 내가 사랑할 수도 있는 다른 베로니카가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어요."―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정신병원에 갇힌 베로니카가 간호사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믿는다. 누구에게나 그 내면에는 그 육체의 주인이 사랑할 수도 있는 그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다. 당신 자신을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씩 바꿔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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