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법
Carl Larsson
칼 라르손

영명 축일의 날
A Day Celebration, 1895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큰 벽난로에 따뜻한 온기를 채워 집안 가득 가족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가족 사랑은 몹시 비참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라르손은 1853년 스톡홀름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에서 태어났다. 술과 도박으로 집을 떠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와 그는 거리로 내몰려 노숙자 생활을 해야 했다. 이때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어린 남동생을 잃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는 가난했지만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스웨덴 왕립예술 아카데미에 다니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윽고 장학금을 받고 파리 유학을 떠났다.이 젊은 화가에게 파리 유학은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의 빛이었지만, 1883년 살롱전에 입선하기까지 9년 동안 그는 가난한 이방인의 삶을 견뎌야 했다.

"아내와 함께 꾸민 집,
내 가족에 대한 추억,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그림들이
내 인생 최대의 작품입니다.

칼 라르손

나를 미움에서 해방시키는 홀가분함
William Turner
윌리엄 터너

눈보라
Snow Storm, 1842

터너는 1775년 런던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일찍부터 이발소에 걸어둔 터너의 그림은 꽤 인기였고, 15세에 런던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26세에 최연소로 왕립 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된 그는, 31세에 영국 최고 미술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천재적인 재능으로 일찍 성공한 터너는 당시 저평가 받던 풍경화에 목숨을 건 열정가였다. 그러나 후기 시대로 갈수록 풍경은 없고 색채만 가득한 그림을 그려 사람들을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풍경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윌리엄 터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픈 당신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Pierre Bonnard
피에르 보나르

펄꿈치를 괴고 있는 여인
Woman Leaning with Dog and Still Life, 1917

팔꿈치를 괴고 있는 여인은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주요 예술가인 보나르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의 스타일과 주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여가를 보내는 인물들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는데, 이는 보나르 자신의 고요한 일상에서 기인한다.

"우리들의 인생에는
화가의 팔레트에 놓인 것 같이,
인생과 예술의 의미를 보여주는 유일한 색채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이라는 색이죠.

마르크 샤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65.사건/조선물산공진회

일제가 1915년 9월 11일부터 약 두 달간 경복궁에서 실시했던 대규모 박람회다. 박물관과 박람회는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각지에서 문화재를 약탈했고, 한편에서는 자동차, 비행기 같은 근대 문물과 각종 신기술을 자랑하기 위한 행사를 열었는데 이런 문화가 박물관과 박람회로 정착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64.명문장/8호 감방의 노래

진중이 일곱이 진흙 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3.1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유관순, 심명철,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임명애, 김향화 등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돼 있었는데, 서대문형무소 여 옥사 8호에서 함께 불렀던 노래다. 이 가사는 심명철의 아들에 의해 2019년에 공개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63.학문•철학/양명학

명나라 당시 왕양명에 의해 주창된 사상으로, 유학의 한 계보이면서 성리학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명학에 대한 배척 기운이 높았고, 영조 때 정제두 정도가 수용했을 뿐이다. 정제두는 강화도에 유배된 기간 동안 양명학에 대한 이해를 심화했고, 이를 일가친척에게 전파하여 가학(家學) 형태로 발전한다. 구한말 박은식 등이 양명학을 계승했다.

이후 왕양명은 성리학의 주지주의적인 기풍을 비판하면서 심즉리와 지행합일설 등을 주장한다. 마음이 곧 이치이며, 마음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는 간명한 논리를 제안한 것이다. 성리학은 우주의 본질, 인간의 본질 그리고 인간 안의 도덕과 마음의 관계 등 복잡한 사변적 논리를 강화시켜나갔는데, 왕양명이 보기에 이런 것들은 잘못된 태도였다. 그가 보기에 마음은 언제나 진리로 나아갈 단초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이를 따르지 않을 뿐이었다. 누군가 사고를 당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고,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함께 슬퍼하고 애통하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있는 기본적인 심성이다. 따라서 왕양명은 그러한 마음의 이치에 따라 직접 행동에 옮기는 삶을 군자의 삶으로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