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당시 왕양명에 의해 주창된 사상으로, 유학의 한 계보이면서 성리학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명학에 대한 배척 기운이 높았고, 영조 때 정제두 정도가 수용했을 뿐이다. 정제두는 강화도에 유배된 기간 동안 양명학에 대한 이해를 심화했고, 이를 일가친척에게 전파하여 가학(家學) 형태로 발전한다. 구한말 박은식 등이 양명학을 계승했다.
이후 왕양명은 성리학의 주지주의적인 기풍을 비판하면서 심즉리와 지행합일설 등을 주장한다. 마음이 곧 이치이며, 마음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는 간명한 논리를 제안한 것이다. 성리학은 우주의 본질, 인간의 본질 그리고 인간 안의 도덕과 마음의 관계 등 복잡한 사변적 논리를 강화시켜나갔는데, 왕양명이 보기에 이런 것들은 잘못된 태도였다. 그가 보기에 마음은 언제나 진리로 나아갈 단초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이를 따르지 않을 뿐이었다. 누군가 사고를 당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고,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함께 슬퍼하고 애통하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있는 기본적인 심성이다. 따라서 왕양명은 그러한 마음의 이치에 따라 직접 행동에 옮기는 삶을 군자의 삶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