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10월, 농구부 입단 테스트를 받아보지 않겠냐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나는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테스트장으로 향했다. 그것도 잠시, 하늘 위로 한껏 치솟았던 설렘은 이내 깊은 실망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키가 작다고 했다. 5cm가 부족하단다. 실력은 얼마든지 길러줄수 있고 점프력도 꽤 좋은데 키가 작다고 했다. 손가락 두 마디를 가리키며 딱 이만큼만 커서 다시 찾아오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부모님, 친척들, 사촌들의 키를 물었다. 그들 중 내가 제일크다는 말을 듣자 그분은 입으로 ‘안 되겠네‘라는 말을 소리 없이 내뱉었다. 눈물 가득한 나의 두 눈을 본 그분은 아직 희망이 있으니 성장판검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물었다. 이틀 뒤 병원에서는 여기서 더 커봤자 1cm 정도일 거라는 판정이 나왔다.
그 이튿날, 꿈을 포기해야 했지만 별 수 없었다. 학교 농구장으로 향하는 발길은 여전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퉁~’하고 공을 튕기는 순간 지난 2년간 느낀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행복이 밀려오는 게 아닌가. 여전히 농구가 너무 좋았다. ‘프로 농구선수‘라는 꿈은 분명 꺾였지만 농구하는 순간은 여전히 너무 행복했다. 이상했다. ‘분명 나는 꿈이 꺾였는데………. 지금까지 나를 달리게 한건 프로농구 선수라는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데서 오는 행복이었어. 이꿈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아야 마땅할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여전히 농구공을 튀길 때 지난 2년 동안 느꼈던 것과 티끌만큼도 다르지 않게 행복한 거지?‘
이런 이상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은 내게 두 가지 고민거리를 주었다. 첫째는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어떻게 지금 행복한 거지?" 였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그 사실조차 잊은 채 달려올 수있던 것은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데서 오는 행복‘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꿈이 꺾인 뒤에도 다리가 후들거려 한 발도 더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농구하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그러자 두번째 의문이 들었다. "지난 2년 동안이나 지금이나, 농구를 대하는 나의 마음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똑같이 행복한데, 왜 ‘꿈이 꺾인 사람‘이 되어야 하지?‘ 그리고 이 질문은 꼬리를 물어 "내 진정한 꿈이 과연 프로농구 선수였는가?"라는 고민을 불러왔다. 이 의문은 "꿈이란 것은 꼭 직업이어야 하는가?"로 이어지면서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프로 농구 선수‘는 ‘꿈‘이 아니라 단지 ‘희망 직업 ‘명‘일 뿐이었다. 그런데 꿈의 본질은 단순히 희망 직업명 따위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꿈이라는 것의 정체가 단지 희망직업명이라면, 그 직업을 갖게 되기만 하면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든 행복해야 마땅할 것이다. 꿈을 이룬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프로농구 선수라는 직업을 가지기만 한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든 정말 행복할까? 아닐 것이다. 또, 꿈이 단지 희망직업이라면 그 직업을 갖지 못한 자들은 전부 ‘꿈에 실패한 사람‘이 되어 불행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농구하는 모든 순간이 진실로 행복했다. 즉 꿈은 희망 직업명 따위가 아니었다. 꿈은 명사형의 희망 직업이 아니라, 빛나는 지느러미를 달고 힘차게 헤엄치는 동사형의 행위였다. 이렇게 두 가지 의문에 대해 답을 내리고 지난 시간을 되새겨보니, 나의 생각이 여러가지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프로 농구 선수라는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데서 오는 행복‘ 이 장작이 되어 달려올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행복의 근원‘은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구라는 행위 자체‘에 있었다. 나의 꿈은 명사형의 ’프로 농구 선수‘가 아니라 동사형의 ’신나게 농구공을 튕기며 몸을 부대끼는 행위‘였다.
농구를 접으면서 나는 다시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왔다. 끝끝내 답을 찾지 못했던 "왜 공부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또 마주보게 된 거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언저리, 새로운 꿈이 예기치 않은순간 불현듯 다가왔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20분쯤 전, 가만히 밖을 보고 있는데 한 문장이 머리에 박혔다. ‘아프리카에서는 3초에 한 명씩 기아와 질병으로 죽고 있습니다.‘ 국제구호단체의 이런 외침은 지하철이나 인터넷, 텔레비전 광고에서 수도 없이 들어봐 온 얘기였다.
그들을 살리고 싶었다. 적어도 그들의 세상이 이토록 쉽고 허무하게 막을 내리지 않도록, 그들이 빛나는 지느러미를 힘차게 휘저으며 그들만의 바다를 헤엄칠 수 있도록. "나는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싶어." 새로운 꿈을 찾은 순간이었다.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를 제일 괴롭혔던 건,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바라는 만큼 성적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었다. 후에 알았는데 이걸 ‘자기불구화의 함정‘이라고 한다. 한번 의심이 들자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가 실패하면 완전한 패배자가 될 것 같아 노력을 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의심이 섞이니 공부하는 와중에도 불안했다.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라는 곰팡이가 싹트자 곧 온 마음이 다 불안으로 뒤덮였다. 겉으로는 집중하는 척했지만 "그만큼 공부하고도 이 정도밖에 안돼? 의대는 못 가겠네."라는 평가를 받을까봐 노심초사였다.
공부를 다시 시작한 날 이후, 나는 밤마다 불을 끄고 누워서 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오늘 하루를 100번 다시 산다고 해도 오늘 산 것보다 단 1초라도 더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아니."라고 답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윤동주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도록, 나는 늘 내가 할 수 있는만큼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때의 2년을 돌이켜봐도 여전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시절로 100번, 1000번을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보다 단 1초라도 더 열심히 살 수 없어."
2학년이 돼서 두 번째 모의고사를 보던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간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던지 문제가 특별히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만 봤을 뿐인데 성적이 잘 나올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온 날, 나는 그날의 자신감을 웃도는 점수를 받아들게 되었다. 성적표에 적힌 숫자는 백분위 100,00, 그러니까 ‘전국 1등‘이었다. 나는 밥 먹듯 1등 하고,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전국 1등을 하리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워낙 운동에 몰두했던 터라, 공부를 시작하던 때의 성적도 썩 좋지 않았다. 아무리 공부해도 1등은 남의 일이었다.
그 후로 나는 성적에 관심을 뚝 끊었다. 공부를 하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니 등수는 그저 시험 보면 나눠주는 종이 쪽지에 그쳤다. 등수에 연연했다면 오히려 1등을 사수하려고 홀로 고군분투하다가 방전돼서 쓰러졌을 거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공부 자체가 좋아졌다. 1등에서 미끄러져서 갑작스럽게 100등, 1000등, 10000등을 한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자 성적표가 두렵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적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이후 내 성적은 줄곧 1등을 기록했다. ‘깜짝 1등, 언제까지 1등하나 보자‘하고 벼르던 사람도 있었고 ‘김규민 이러다 진짜 의대 가는거 아냐?‘ 하고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성적에 관심을 갖지 않으니 그들의 흥미도 곧 사그라들었다.
공부는 내 인생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부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주는 것 같았다.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이 더는 불가능한 꿈이 아니었다. 모두가 비웃던 꿈은 점차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꿈이 되어갔다.
2018년 11월 15일.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다가왔다. 어릴 적부터 ‘실전은 연습처럼, 연습은 실전처럼‘이라는 어머니의말씀을 많이 들어와서 그랬는지, 내 실력에 대한 ‘차고 넘치는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공부하는 또 다른 시간‘정도로 여겨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시험 당일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수능 당일은 내게 ’평범한‘ 날이었다.
후에 듣게 된 이야기지만, 나에 대한 소문이 순식간에 우리 지역 전체에 퍼져 내가 졸업한 다음 해에는 우리 고등학교에 지원한 중학생 수가 엄청났다고 한다. 나를 보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게되어 진학한 거라면, 그들의 꿈을 한껏 응원해주고 싶다. 내가 그랬듯, 너희들도 할 수 있다고, 안양시의 첫 번째 서울대 의대 합격자수는 나지만, 두번째, 세번째, 네 번째는 너희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학생들에게 ‘꿈‘은 어른들이 남발해서 식상해진 단어, 혹은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인 거 같다. 하긴 내가 학교 다닐 때도 "내 꿈은 농구 선수야."라고 진지하게 얘기하기 조금 부끄러운 분위기이긴했다. 하지만 내가 근질거리는 분위기를 무릅쓰고 꿈 얘기를 꼭 꺼내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꿈이 공부의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이란 이런 것이다.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살짝 미치게‘ 만든다.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게 해주고, 심지어 그 과정까지 즐기게 해주는 것. 그러니 우선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지 스스로 고민해봤으면 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꿈의 조각을 찾아 맞춰나가는 소중한 시간을, 지금 당장이라도 가져보기 바란다. 어렴풋한 잔상이라도 좋다. 아직 꿈이 없어도 괜찮다. 무언가가 하고 싶다,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를 떠올려본 것만으로도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니까. 꿈이 확실해지면 확실해질수록 점점 더 공부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거다.
우리의 자아는 남을 의식하는 ‘사회적인 나‘, 그리고 ‘내면의 진실된 나‘로 나뉜다. 나는 후자를 ‘내면 자아‘라 부른다. 꿈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바로 이 내면 자아다. 그만이 진실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소 내면 자아가내는 소리를 무시하다 보니, 너무 깊이 숨어버려 나 자신도 찾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거다.
꿈을 찾는다는 것은 무언가 거창해 보이는 말과는 달리 별 게 아닐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귀를 기울일 것. 타인이 원하는 것을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인 양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것. 내면 자아에게 진실된 관심과 사랑을 쏟고, 그와 대화하는 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 이것이 핵심이다. 가슴이 시키는 일, 내면에서 행복감이 샘솟는 일을 마침내 찾아내면 그 벅참과 뿌듯함에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행복한 꿈의 지점에 가 닿을지 골똘히 고민하게 된다. 당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 질문에 당연히 들우봤다고 자신 있게 답하면 좋겠다. 꼭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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