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상실을 표시하는 의식들을 통해 모호함을 수용하는 문화의 지표를 엿볼 수 있다
미국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주류의 견해가 사회 지배적인 경향을 보인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노력과 결과가 일치하는 공정하고 논리적인 장소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운명까지 스스로 지배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좋은 일은 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반대로 나쁜 일은 우리가 잘못했거나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만 일어날 것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사람들이 모호한 상실과 같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과중한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되돌릴 수 없는 상실과 직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결국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람들이 직면하는 상실 가운데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이 모호한 상실이다.
그들의 정체성, 역할, 그리고 관계성은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보다 분명하고 확실한 게 좋다고 한다. 그들은 가족 간에 지켜야 할 규칙이나 의식들이 명확하기를 갈망한다.
가족 스트레스 관점 연구는 모호한 상실 속에서도 삶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가족들을 위해 예방 차원의 모델이 된다.
첫째, 스트레스는 단순히 변화 또는 변화의 위협으로 가족 안에서 발생한다. 이 변화는 평범할 수도 있고 치명적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대부분의 개인과 가족들은 자신들이 놓인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아 대처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를 관리하거나 심지어 위기에서 회복할 수도 있다.
전문 심리상담사들은 가족들이 아픈 게 아니라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반드시 말해주어야 한다.
둘째,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개인이나 가족 모두에게 당연히 좋지 않지만, 모호함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배운다면 누구나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세 번째로 가정하는 것은, 모호한 상실을 겪고 있는 가족과 상담할 때에는 서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정보가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할지라도 서로 알고 있어야 한다
넷째, 모호한 상실은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런 해석은 해결되지 않은 슬픔의 증상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매우 흡사하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모호한 상실은 일반적으로 장기적인 상황이고 정신적 충격을 주며 그 상태로 굳어지는 것이지, 플래시백 효과가 있는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을 줄 누군가에게 말함으로써, 애도의 과정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얻는다. 그들의 믿음이나 가치 또는 선호하는 이론과 상관없이 그들에게 적절한 소통의 방식을 취한다면, 모호한 상실로 고통받더라도 잘 이겨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은 몸을 눈으로 직접 봐야 상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실종자 가족들은 죽음에 대한 그러한 검증을 통과한 적이 없으므로 부재나 존재에 대한 그들의 인식 변화 과정에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한다.
해결되지 않은 상실의 원인?이민, 전쟁, 이혼, 재혼, 입양?이 무엇이든 상실의 증상들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불안, 우울, 육체 질병, 가족 갈등은 종종 적응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어떤 식의 종결이 없다면, 부재하는 자는 현재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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