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문화/도깨비

도깨비에 대한 믿음이나 신앙은 고대사회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는데 악귀를 쫓는 신‘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전통 기와 건물에서 지붕의 끝을 덮는 망와에 도깨비 문양을 새기는 이유도 그래서다. 경주 불국사의 대웅전 문 앞이나 창덕궁 금천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깨비에 관한 현대 이미지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일본 요괴와 관련된 것들이다. 머리에 뿔이 달려 있거나 이빨이 무시무시하게 나 있으면서 괴상하게나 짓궂은 행동을 하는 것들은 도깨비가 아닌 일본의 요괴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 도깨비는 원혼이 아니다. 사람이 억울하게 죽으면 귀신이 되지만 도깨비와는 무관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35. 유적•유물/낙안읍성

전라남도 순천시에 현존하는 읍성. 읍성은 평지에 만들어진 성인데 지방 행정에서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북쪽에는 산이 있고 성의 중앙에는 관아가 있다. 낙안읍성의 경우 동문으로 출입을 하는데 쭉 걷다보면 오른편에 관아를 비롯한 각종 지방행정 기관이 들어서 있고 왼편으로는 민가가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읍성은 도성의 구조를 고스란히 따른다. 수도 한양의 북쪽에는 궁궐이 있고 국왕이 남쪽을 바라보며 앉는다. 그리고 남쪽으로 마을이 분포하는데 읍성은 이러한 도성의 모양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34.장소/부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도시이자 무역항으로,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과 관련이 깊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이곳에 쳐들어왔고 광해군은 이후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복원하면서 초량에 왜관을 두었다. 일본과 가깝기 때문에 구한말 일본 상인들은 서울이나 인천뿐 아니라 부산에 몰려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33.인물/신채호

신채호(1880년~1936년)는 《조선상고사》를 쓴 민족주의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신채호의 어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민족주의자로 분류되는 신채호는 통념에 비해 훨씬 복합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는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에서 언론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고,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등을 썼다. 한국 최초의 위인전 저술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또 만주 일대를 답사하며 고조선, 삼국 시대 등 고대사 연구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고, 민족주의 역사학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했다. 한국 근대 역사학이 시작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상의 조건에서조차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부모라는 역할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복잡하며, 걱정도 많이 따르고, 땀과 피를 쏟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궁극의 인내, 상식, 헌신, 유머, 기교, 사랑, 지혜, 인식력, 지식이 필요하다. 동시에 부모는 새롭고 특별한 한 인간에게 따르고 싶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보람 있고 기쁜 역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자신만큼 괜찮은 인생 또는 자신보다 나은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또 그럴 수 있도록 기꺼이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

어린 시절에 접한 모델을 성인이 되어 바꾸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마치 오래된 습관을 버리는 일과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 밤낮으로 몇 년 동안 경험했던 것들은 편하든 편치 않든 이제 생활의 기초적인 부분이 되어버렸다.

사과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 데도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데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부부가 의외로 많다. 가족을 일구는 일이 본능과 의지로만 된다고 믿는 것이다. 단지 희망하기만 하면, 또는 남녀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만 거치면 누구라도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일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에게는 도움, 지식, 지원이 아낌없이 제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들에게 요구되는 것들은 너무나 많은 반면, 주어지는 지원은 턱없이 적다.
아기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이끄는 과정에는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다. 가족은 부부가 아이를 가지면서 시작된다. 한때 두 사람이 있었던 곳에 세 사람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저것 노력을 기울이다가 아무런 효과가 없으면 낙담하곤 한다. 하지만 효과가 없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 자체가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래 일이 잘못되어왔든, 우리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정말로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하면 당장이라도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런 다음 그걸 배울 방법을 찾는다. 가정에서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면, 차 계기판에 빨간불이 들어왔을 때처럼 대처하라. 일단 멈춰 상태를 살핀 다음, 관찰한 내용을 공유하고,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판단하라는 뜻이다. 당신이 직접 고칠 수 없다면 믿을 만한 사람 중 고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라.

자랄 때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있는 성인들은 종종 자녀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부모가 전가한 만족감을 자녀들이 고맙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과거에 해소되지 못하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부모의 욕구는 비이성적인 육아의 요인이 되곤 한다. 나는 이것을 ‘과거의 오염된 그림자’라고 부르는데, 많은 부모가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재미있게 즐기거나 유머 감각을 발휘한다고 해서 유능하거나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유능한 사람은 자기 자신도 즐기면서 함께 일하는 상대방까지 즐겁게 해주고, 자신의 일을 즐긴다.

자신의 허점을 웃어넘기고 그걸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런 여유를 갖는다면 장차 직장을 구할 때는 물론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정은 우리가 바로 이런 기술을 익히고 연습할 수 있는 곳이다.

인생에 굴곡이 있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부정적인 행동과 감정이 있음을 부인하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다만 그런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다른 쪽을 바라볼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희망과 사랑은 우리를 계속 전진하게 하는 힘이다. 우리가 ‘옳은’ 행동을 하고 목표를 완수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 서로 사랑하고 즐길 시간이 너무 적어진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너무 늦어버린 다음에야, 심지어 죽음에 임박해서야 알게 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부모와 자녀가 처음 만날 때, 자녀는 정말 조그맣고 힘이 없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 대해 작고 힘이 없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기 쉬우며, 그 이미지는 자녀가 다 자란 뒤까지 지속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들이나 딸이 열여덟 살이 되어도 부모의 눈에는 아직 작고 힘없는 아이로 비치는 것이다. 자녀가 실제로는 몸집이 크고 힘도 세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성인이 됐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마찬가지로, 성인이 된 자녀 역시 스스로 힘센 존재가 된 뒤에도 전능한 부모의 이미지를 간직하기 쉽다.
이런 가능성을 알고 있는 부모들은 자녀가 되도록 빨리 자신의 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은 강해지는 방법을 자녀에게 보여주고, 그 힘에 어떤 한계가 존재하는지도 알려준다. 이런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아이는 타인에게 의지해 살거나 지배하거나 등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중요한 건 좋은 부모가 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당신에 대한 자녀의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완벽함이 아닌 진실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부모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춘 사람에게는 정직함, 진심 어림, 창의성, 사랑, 관심, 활력, 능력, 건설적인 문제 해결 같은 보상이 뒤따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런 요소들을 갖춘 사람은 자녀들에게 필요한 인생의 필수 정보들을 훨씬 수월하게 전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어차피 ‘사람’일 뿐임을 인정하고 나면, 부모라는 역할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듯, 아이들 역시 모든 걸 느끼며 자라난다.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희망, 두려움, 실수, 불완전함, 성공의 세계를 부모도 잘 알고 그 심정에 공감한다는 사실을 알 때 더욱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때때로 무력감, 두려움, 실망감을 느끼거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성인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많은 부모는 이런 감정을 표현하면 부모로서의 권위에 흠집이 난다고 믿는다. 당신이 만약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면 자녀에게 당신의 모습은 위선적으로 비칠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있다면 부디 지금부터라도 달라지려고 노력하기 바란다. 아이들은 성자처럼 완벽한 모습의 부모보다 인간다운 모습의 부모를 훨씬 더 신뢰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다. 항상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감정은 거기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 내면에 감정이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의 행동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반응할 때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감정이 있다는 절대적인 확신은 효과적인 부모가 되는 데 꼭 필요하다.
바로 이 때문에 고유성에 대한 인식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측면에서 동일성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나인 이유는 바로 고유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인식하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길이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부모들이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자녀에게 신체적 힘을 가르치는 한편, 새로운 노력이 성공할 때마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나는 이것이 다른 영역들의 힘을 가르치는 데도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인내심을 갖되 아이가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할 때마다 기쁨과 칭찬으로 대응해주라는 뜻이다. 개발되어야 할 다른 영역의 힘이란 감정적·사회적·지적·물리적·영적 힘을 이야기한다.

모든 인간은 두 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남자들도 여성적인 특징을, 여자들도 남성적인 특징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사실 신체적인 부분에서만 차이가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 밖의 차이점들은 문화적으로 부여된 것이어서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본질적인 부분이지만 간과되기 쉬운 청사진의 한 요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다름 아닌 죽음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어떤 사람도 죽음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솔직하고 공공연한 태도는 고사하고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사람에게는 껄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보지 않는다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죽음은 질병도 아니고, 나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며, 모든 인간에게 그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일부다. 나는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생이 현실적이고 보람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것들을 죽음으로 오인하고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다. 삶의 다른 어떤 것도 죽음과 같지 않다. 이렇게 구분해두면,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이 삶이 된다. 이와 다른 식으로 죽음을 취급하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실제로 자녀들을 보호해야 할 때는 언제이고, 조용히 지켜봐야 할 때는 언제일까? 자녀가 새로운 위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부모로서 우리는 그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가정에서도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기업을 이끌어가듯 가정도 경영을 해야 한다. 가정 경영이라고 해서 여타 경영과 다를 건 없다.

좀 더 어린 나이 때부터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자녀들을 격려한다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정신없는 부모들이 훨씬 적어질 것이다. 인간으로서 가장 보람 있는 경험 중 하나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순간이다. 아이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아이가 얼마나 생산적인지 또는 생산적일 수 있는지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어떤 가족은 큰 집에서 살고 어떤 가족은 작은 집에서 살며, 장비가 많은 집도 있고 아주 적은 집도 있다. 소득 수준에서도 차이가 나고 식구 수도 다양하다. 비슷한 크기의 집, 똑같은 식구 수, 비슷한 소득 수준의 가정에 집안일을 도와주는 비슷한 가전제품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필요가 충족됐다고 느끼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특정 시점에 자원을 활용하는 모습도 그 자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고 가족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가정 경영의 성과는 개인의 자존감, 가족의 규칙, 의사소통 방식, 가족 시스템에 좌우된다.

우선 집안일을 살펴보자. 흔히 허드렛일이라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꼭 필요하긴 하지만 중요한 일은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집안일은 가정이라는 조직에서 주된 부분을 차지하기에 그만큼 중요하다.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건 특정 시점, 특정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가족 모두가 자기 소임을 다할 것으로 기대하라. 책임감을 습득하는 훌륭한 훈련 기회가 될 것이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단어는 ‘항상’이다. 항상 명령만 하거나 모든 일에 투표를 하는 가족들을 자주 봐서 하는 얘기다. 가정 경영에 ‘항상’이 도사리고 있으면 누군가는 분명 숨이 막힐 것이고, 공공연한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때에 따라 부모가 자녀에게 "넌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묻는 요령도 필요하다. 또 가끔은 "이건 네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것 같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 통찰력도 필요하다.

유연성을 발휘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당부하고 싶다. 가정 경영은 각 가족 구성원에게 자신이 가치 있다는 느낌을 부여해주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다. 각자가 집안에서 현재 진행되는 일에 기여한다는 느낌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런 일을 함께한 아이는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가족의 시간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 각자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자기 시간)
• 각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짝 시간)
•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그룹 시간)

모든 가족 구성원이 이 세 종류의 시간을 매일 가질 수 있다면 완벽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게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는 실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외적인 압박이 있기 때문에 세 종류의 시간을 날마다 마련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모든 가족 구성원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자신만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공간을 가져야 한다. 크든 작든 크기는 중요치 않으며 자신만의 공간이면 된다. 당신이 내 공간을 존중해주고 가치를 알아준다면, 나도 당신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나만의 장소가 있다는 사실은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말해준다.

분명하고 확실한 소유의 경험은 나눔으로 이어진다. 자존감이 높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베풀고 싶어지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이런 감정이 무척 중요하다. ‘이건 내 것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심어주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눔이란 한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 시간, 생각, 공간 속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것은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가르침 중 하나다. 사람들은 신뢰를 느껴야만 나눌 수 있다. 부모들은 소유의 경험도 미처 쌓지 못한 자녀들에게 뭔가를 공유하라고 강요하고는, 나쁜 결과가 나타나면 꾸짖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